20대의 내가 아르바이트 대신에 했던 것은 봉사였다. 의료봉사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큰 종합병원에서 어르신들의 접수와 안내, 수납을 돕는 봉사였다. 의료와는 전혀 관련 없었지만 병원에서 봉사를 했으니 의료봉사였나 보다.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봉사를 했다. 꾸준히 오랜 시간 봉사했다고 학교에서 봉사 우수상도 받았던 것 같은데 상장은 어디에 있는지 몇 시간이라서 받았던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힐을 신고 단상으로 나가다가 삐끗해서 웃음거리가 될뻔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다. 대략 300시간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다른 봉사로 바꿨다.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아름다운 가게(가게로 기부받은 물품을 판매하여 수익금으로 재기부를 하는 단체)였다. 물건을 기부받는 것부터 물건에 매겨진 가격을 찍어 택을 달고 진열하는 것, 판매를 하며 포스기를 관리하는 일, 손님들을 응대하는 것, 재고를 세는 것 등등 많은 일을 했다. 모두 다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니 일을 더하거나 덜하려고 괜히 눈치를 보고 여우짓을 하지 않아도 되어 너무 좋았다. 모두가 열심히 하려고 해서 나도 열심히 하고 싶었던 때였다.
봉사자 아주머니들과 얘기하는 게 즐거웠고 활동적으로 지내며 행사 때마다 봉사자들의 활동 사진을 찍어 가게에 재능기부를 하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3개월간 작은 지점의 관리자로 일하며 아주 적지만 봉사에서 벗어난 페이를 받기도 했다. 물류 트럭에서 내려온 수많은 기부품을 나르고 진열하다 보니 잠시나마 잔근육들이 생기기도 했고 가게문을 열고 닫다 보니 오픈하는 법과 마감하는 법을 자연스레 익히기도 했다.
애드 시런의 shivers 노래를 들으니 자연히 그때의 나, 그리고 그 시간들의 전율과 떨림과 사람들이 생각났다. 많은 봉사자 아주머니들의 따뜻한 마음이 그렇게 생각났다. 가슴 떨리게 한다는 그 노래 가사가 그리운 그날을 생각나게 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코로나 같은 건 없었던 활발하고 신났던 그날을 떠오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