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고 별 수 없었다. 외식은커녕 카페에서 단 둘이 잠시 커피를 마시는 것도, 부모님과 밥을 함께 먹는 것도, 친구들과 여럿 모여 놀러 가는 것도 모두 다 마다하던 우리에게도 코로나는 왔다. 어디서 걸린 것인지 도통 알 수 조차 없는 게 억울했고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심했던 시간이 무용지물이 된 것 같아 속상했다. 우리는 하라는 대로 잘 참고 조심했는데, 그렇지 않았을 누군가로 인해 피해를 고스란히 전달받은 것 같아 화가 났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의 예민함을 잘 받아주며 함께 조심해주던 남편이 확진이라서 더 속상했다.
10명 중 1명은 확진이라는 지금 이 시점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고 넘어가야 끝이 보일 거라는 오미크론이 우리만은 피해 가기를 바랐던 것 같다. 좀처럼 아프지도 않고 웬만큼 아파서는 아프다 하지 않는 남편이 회사에 가자마자 머리가 너무 아프고 몸살인 것 같다며 반차를 쓰고 집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밤늦게 퇴근한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아픈 몸을 이끌고 직접 운전해서 PCR 검사를 받으러 갔다. 그 다음날 오후 4시에나 결과가 나왔는데 그때까지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양성, 나는 음성이었다.
그때부터 서로 간의 격리가 시작됐다.
남편은 안방, 나는 거실. 화장실이 1개라서 남편이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온 곳을 소독했다. 소독을 하면서도 사람을 바이러스 취급하는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 말은 안 했지만, 당연한 것이라는 걸 알겠지만, 그래도 방 안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남편은 내심 서운했을 거다. 행동을 하는 나도 속상한데 그걸 지켜보는 남편은 얼마나 서운했을까. 하루는 두통과 근육통, 하루는 고열, 하루는 인후통과 기침, 가래. 매일마다 새로운 곳이 아프고 나았다가 또 아프다는 너를 보면서 바로 들어먹는 약을 가져다줄 수 없어서 미안했다. 물론 비대면 진료로 받은 병원 약이지만 먹는다고 증상이 나아질 리 만무했다. 하루 종일 뭘 하는지 자고 있는지 기분은 어떤지 몸은 어떤지 전화와 카톡으로만 주고받아야 해서 답답했다. 핸드폰을 통한 소통에 정신이 쉽게 피로해지는 나라는 사람에게 이런 소통 방식은 독이었다.
나는 별다른 취미가 없다. 남편의 취미도 못하게 하면서까지 내 옆에 앉혀두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는 게 다였다. 나의 평일과 주말은 모두 그랬다. 각자 다른 일을 하더라도 최소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만큼은 함께 있어야 마음이 놓였는데 어쩔 수 없이 10일간 따로 있어야 했다. 유난이라고들 할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캄캄한 거실에 덜렁 혼자 남겨져 잠드는 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무섭고 불안한 것이 첫 번째, 외로운 것이 두 번째 이유다. 몇 시간에 한 번씩 깨고 쉽게 다시 잠들 수도 없었다. 깨면 무서웠고 잠들면 꿈을 꿨다. 결국 불을 킨 채로 자고 있는데, 숙면이 있을 리 없다.
이런 감정들이 며칠 새 쌓여 어느샌가 나는 남편에게 툴툴거리고 있었다. 내 감정을 알아달라 호소할 사람이 남편밖에 없어서 그랬을 것이지만, 방 안에 갇혀 답답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 남편에게 내비칠 감정은 또 아니었다. 방문을 빼꼼 열고 식사를 받으면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남편은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비 맞은 강아지마냥 나를 올려다보면서 내 감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게 또 너무 속상했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우울해지는 내가 싫었고 자꾸만 티 내는 내가 싫었다. 그로 인해 덩달아 눈칫밥을 먹는 남편의 모습이 속상했고, 남편의 모습을 그렇게 만드는 나 자신이 또 싫었다. 나는 항상 내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서 극을 달린다.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서야 추스러지는 감정은 꼴사납기 그지없다. 남들은 다 행복한데 나와 내 사람들은 힘겨운 것 같아 자꾸 질투가 나고 화가 난다. 둘러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데 있는 욕심 없는 욕심 다 부리면서 사는 내가 나도 피곤하다.
코로나가 정말 여럿 울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