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싫어. 내가 싫어. 너무

by 일삼삼팔

거의 육 년 가까이 천당과 지옥을 넘나드는 감정을 가지고 살자니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물론 안다고 해서 바뀌지 않고 노력한다고 노력이 되지 않아 매번 또다시 불지옥을 왔다 갔다 하며 살지만 그래도 알긴 안다. 남들보다 조금, 아니 조금 많이 더 예민한 성격과 완벽에 가까운 만족을 추구하느라 어느 정도의 행복은 행복으로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다. 평범한 게 가장 큰 행복이라는데 나는 평범하다. 그런데 매일 불안함과 함께 살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불안을 잠시나마 해소시킬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헤맸다. 가만히 있는 시간을 없애보려 여기저기 싸돌아 다닌 것은 진즉 해보았으나 일시적이었다. 심지어 그곳으로 향하는 그 길목, 그 시간, 그 정적 안에 내 생각은 더 많아졌다. 생각이 정리되기는커녕 더 복잡해졌고, 잠시 해소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불안감에 완전히 박살이 났다.


취미를 만들어볼까 아이패드를 사서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안드로이드만 써왔기 때문에 아이패드를 만지는 건 완전히 새로운 일이어서 그것마저 유튜브로 한참을 찾아보았고, 그런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로 내가 만족할만한 그림을 그리는 건 더 오래 걸렸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유튜브를 재생했다 멈췄다를 반복하고 원하는 선을 그릴 때까지 원하는 색을 고를 때까지 원하는 질감을 찾을 때까지, 결국 완성을 해 낼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집중하고 있으려니 즐거움으로 시작해서 지쳐 끝나기 일쑤였는데 중간에 잠시 놓는 게, 쉬는 게 또 쉽게 되지 않았다.


너무 오래 걸리네. 조금 더 짧은 취미를 찾아볼까 해서 찾은 게 '펀치 니들 자수'였다. 너무 금방 끝났다.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너무 금방 너무 단순하게 쉽게 끝나버렸다. 이것도 2-3번 만에 끝났다.


조금 더 오래 걸리는 걸로. 다시 찾은 게 '수세미 뜨기'였다. 수세미를 술술 뜨시는 시어머니에게 배워보고자 어머님과 독대하였으나 실도 코바늘도 처음 잡아보는 초짜가 본다고 따라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어머님마저 나를 답답해하기 전에 그쯤 멈추고 집에 돌아가서 4시간 동안 첫 매듭과 겨우 한 둘레를 떴다. 그리고도 맘에 들 때까지 코를 만들고 다시 풀고 다시 만들고 다시 풀고를 반복했다. 이건 그래도 재미있었다. 적당한 집중과 적당한 뿌듯함, 적당한 성취감이 있었다. 어느 정도 수세미의 모양을 익숙하게 뜰쯤에는 같은 실 색깔이 지루했다. 사고 싶은 색깔을 죄다 사들였다. 그리고 이리저리 잘 만들어댔다. 그나마 지니고 싶은 취미여서 또 유난스러운 내가 이 취미를 질려할까 봐, 아예 물려할까 봐 정말 가끔씩만 뜨고 있다.


결국 내 불안함과 지루함을 못 견디는 유난스러움은 손톱으로까지 넘어갔다. 난생처음 네일샵에서 네일을 받았다. 파스텔톤의 자연스럽고 은은하고 티 나지 않는 것은 싫었다. 화려한 색, 원색, 다양한 파츠를 붙이고서야 햇살에 비치는 손톱이 예쁘다 느껴졌다. 내가 조금은 꾸며진 듯싶었다. 이것도 며칠 못 갔다.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아이도 찾아오고 행복도 느낄 수 있고 여유로움도 느낄 수 있는 건데 나란 사람은 원체 매사에 불안하고 조급하며 질투를 하고 금방 지루해한다. 하필 나이가 나이인지라, 내가 속해 있는 공간이 공간인지라, 아는 사람들이 사람들인지라 이래저래 결혼 소식과 임신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임신이 이기고 지는 게임도 아니고 그리 쉽게 단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너는' '너만큼은' '너에게만은' 뒤로 처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넘게 마음을 졸이며 사니 나는 더 불안해지고 더 조급해지고 더 우울해지고 더 슬퍼진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왜나만' '왜나는' '왜또나만'이라는 생각이 들고, 어째서인지 자꾸 또 진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나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는데 나 스스로가 자꾸 나에게 '졌다' '졌다' '또 졌다'라고 말하며 사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은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위로받아야 한다. 공무원 준비를 하지 말았어야 하고, 이곳에 입사하지 말았어야 한다. 나의 과거를 후회하고 원망한다.


적어도 나만큼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면, 나는 나를 위해 결정했어야 한다. 우울한 마음이 들 때 그만두기를 결정했어야 하고, 비참한 마음이 들 때 뛰어나왔어야 한다. 나의 지지부진함이 결국 이 상황까지 오게 만들었다. 나는 무얼 위해서 이렇게 견디며 이렇게 슬프게 살고 있는 걸까. 싫은 마음을 떨쳐내야 여유가 들어설 텐데 나는 아직도 이곳이, 아직도 남아있는 그때 그 사람들이, 결국은 변한 사람들이 너무 싫어 몸서리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