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강릉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딸아이가 엄마가 좋아할 곳으로 숙소를 정했다고 귀띔을 했다.
장거리 운전으로 지칠 때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를 위안 삼았다.
강릉에 도착해 숙소를 찾아갔다.
강릉 시내를 한참 벗어나 한적한 동네에 다다르니 목적지 부근이라는 안내와 함께
내비게이션의 미시즈 김은 굿바이를 하고 사라진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펜션이나 리조트, 호텔로 보이는 건물은 아니 보인다.
뭐지? 네비가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데리고 왔는가? 하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으니
딸아이가 자기를 따라오라며 길 안내를 자처한다.
넓은 공터에 주차를 하고 각자의 캐리어를 끌고 안내자를 따랐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 낮은 담장을 낀 대문의 도어록 비번을 누른다.
한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낡고 초라한 시골집을 왜 빌렸지 하면서.
그러나 담장이 품은 소담스러운 마당을 보는 순간, 딸아이가 한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를 알 것 같았다.
오래된 감나무 한 그루, 그 곁엔 스산한 바람 소리를 품은 대나무들, 담장을 따라 놓인 장독들, 여기저기 핀 수선화 무더기, 수줍게 움을 틔운 나무들. 그리고 어릴 적 내가 살던 형태의 시골집,
정다움과 반가움에 몸보다 마음이 가닿는다.
노란 개나리 한 다발이 고가구 위에 멋스럽게 놓여 우리를 반기며 아늑한 공간으로 이끌었다.
서까래를 노출시켜 한국의 미를 살렸고, 가구나 오브제들도 분위기에 맞춰 편안하고도 따뜻한 공간이었다.
딸아이 말대로 딱 내 취향이었다. 기특하기도 하지.
그렇게 이 방 저 방 구경을 끝내고 여독을 풀어볼 심산으로 소파에 앉았다.
시선이 마주한 곳에 놓인 스탠드가 놓인 책꽂이.
딱 한 권의 책이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데 책 제목이 나를 일으킨다.
'관촌수필'. 팔을 뻗어 책을 들고는 "정말 관촌수필이네" 하며 혼잣말을 한다.
오래 만나지 못한 어린 시절 동무를, 먼 타향에 와 우연히 만나는 반가움 같달까.
것도 그럴 것이 오랜 시간 가슴에 품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 책을 여기서 만나다니 이것도 인연인가 싶었다.
주인장의 센스와 취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는데, 좋아하는 책까지 보게 되니 동질감이 훅하고 들어왔다.
이 문구 작가의 '관촌수필'.
읽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잔잔히 파고들던 시골의 감성과 통역이 필요할 정도의 충청도 사투리와 고투를 벌였던 기억은 선명하다.
솔직히 충청도 사투리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지역의 말들로 전하는 감성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사투리를 많이 사용하던 나이 든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방송매체의 발달로 전국이 하나가 되었다.
또 표준어를 사용하자는 사회적 캠페인이 있은 이유 등으로, 지방 특유의 방언들이 점차 사라졌다.
나 역시도 시골을 떠나 도시생활을 하면서, 시골에서 사용하던 사투리를 점차 잊고 살았다.
고향 친구들을 만나 그들 중 누군가의 입을 통해 잊혔던 단어를 들을 때면,
우리 모두 낯설어진 그 말에 금세 반가움을 더러 내며 옛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관촌수필은 잊혀가는 충청도 방언을 살려낸 묘미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또 지역의 방언을 잘 살린 책으로는 최 명희 작가의 '혼불'도 있다.
유명한 작품이라 따로 설명이 필요 없지 싶다.
혼불은 전라도 남원이 배경이라 전라도 사투리와 그 지역의 세시풍습 등을 세심하게 묘사했다.
선조들의 생활 모습이 담긴 작품을 통해, 어린 시절 시골에서 비슷한 풍습을 지키고 살았던 기억이 되살아났었다.
여류작가 특유의 세심한 필체로 그려낸 세시풍습과 구성지고 애환을 담은 사투리들로 책 속의 인물이 되기도 했었다.
관촌수필과 혼불은 뛰어난 작품들이다.
스토리뿐만 아니라 그 속에 녹여낸 지방 특유의 말과 생활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감명이 더 컸다.
만약, 두 작품이 표준어로 쓰였다면 느낌과 감동은 정말 달라졌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두 작가 모두 자기가 살았던 곳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적은 글이 위대한 문학이 된 것이다.
문학 속에 글로 남기지 않았다면, 잊히고 사라져 갈 말과 풍습들을 되살린 위대한 작업이라 칭하고 싶다.
사라져 가는 옛것들이 아쉽고 그립고 안타깝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나도 잊혀 가는 고향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졌는지도 모르겠다.
각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역사가 된다.
교과서에 기록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인 우리들 이야기, 그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변해가는 고향 산천의 옛 모습도 글로 그려두고 싶다.
두 분의 위대한 작가가 가진 뛰어난 필력은 없지만, 나만의 필체로 우리들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
담백하고 섬세하며 서정적인 필체로 따뜻함과 다정함, 그리움과 위로를 전하는 글.
잊히는 아쉬움을 글로 남겨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