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 레터' 감상문
영화를 감상하고 난 후 단 한 번도 글을 남겨본 적이 없었다. 딱 그 순간에 몰입하고 잊은 후 몇 차례 더 자세히 보아 기억 속에 넣어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꼭 글로 간직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남겨보고자 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이 조난 사고를 당해 몇 차례 장례를 치러온 히로코는 애써 그를 잊고 지내려 한다. 당연히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았고 우연히 그의 집에 놀러 가 발견한 졸업 앨범에서 이전에 그가 살았던 오타루의 한 주소를 발견한다. 짧은 순간이라도 그를 추억하고자 편지를 써 그 주소로 보내는 일을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 날 우체통을 열어보니 ‘후지이 이츠키’로부터 답장이 왔다.
바로 히로코가 그리워하던 그이였다. 혼란에 빠진 히로코는 이러한 운명적인 상황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며 본격적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근황을 물어보는 것을 시작으로 작은 일상을 나누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히로코는 당연히 누군가 치는 장난일 줄 예상하였지만 그래도 이츠코로부터 계속 글을 받을 수 있어 기뻤다. 하지만 증폭되는 호기심에 그의 정체를 알고자 ‘후지이 이츠코 씨가 맞다면 증거를 보내주세요.’라는 말이 담긴 편지를 보냈고 상대방의 주민등록증과 함께 마지막 글을 받게 되었다. 당연히, 히로코의 연인인 이츠키는 아니었다. 아닌 줄 알면서도 내심의 희망을 품고 위로가 되었던 그 편지가 끊겨 감정이 점차 망가져만 갔다. 좌절의 끝을 달릴 때쯤 문득 오타루에 직접 가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여 여정을 떠난다. 눈이 펑펑 내려 앞이 보이지 않는 오타루에서 많은 이들에게 길을 물어보며 발견한 집 앞에서 마지막으로 죄송하다는 말이 담긴 편지를 주고 돌아간다.
찰나의 순간에 지나간 이츠키는 집에 돌아와 히로코의 편지를 보게 되고 다시금 키보드를 두들겨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알고 보니 이츠키, 지금 오타루에 살고 있는 그녀는 중학교 때 동명이인인 남자아이를 만났고 바로 그 애가 히로코의 옛 연인인 이츠키였다. 이런 복잡한 관계에 얽힌 둘은 더욱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히로코는 이츠키에게 중학교 시절 이야기를 풀어달라고 하였다. 기억의 작은 파편을 주워 담아 글로 열심히 써내려 정성스러운 편지를 또 한 번 보낸 이츠키는 다시금 이츠키와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본다.
이츠키의 추억이 담긴 글을 받은 히로코는 점차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츠키가 알려준 이야기들이 담긴 편지를 하나씩 모아보니 알게 되었다. 전에 보았던 이츠키의 졸업 앨범 속 있던 사진 속 예쁜 이츠키와 닮은 본인의 모습을 보면서부터 느낀 그러한예감.
이제 그만 이츠키를 떠나보내려 그가 조난을 당했던 산을 향해 소리친다.
‘잘 지내십니까?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몇 번이고 그를 향하여 외쳐 본다. 눈물이 흘러나와도 하염없이 소리쳤다. 그리곤 이츠키에게 받았던 편지를 보아 다시 오타루로 보낸다. 편지를 받은 이츠키는 의아하였다. 바로 히로코가 쓴 글의 마지막 문장 때문이었다.
‘이츠키 씨가 이츠키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보내드립니다. 영원히 간직해 주세요. 저는 이제야 알게 된 것 같네요.’ 그 순간 집 밖에 자신의 도서부 후배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이츠키가 나가자 아이들은 들뜬 목소리로 책을 건네며 ‘앞 페이지를 보세요.’라고 하였다. 사실 두 이츠키는 중학교에서 동명이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날들을 엮여왔고 그중 도서부 일도 같이 맡게 된 일도 있었다. 여자 이츠키는 도서부 일에 충실하였으나 남자 이츠키는 늘 창문 한편에서 특이한 책만 꺼내 자신의 이름을 적어놓는 이상한 일들을 펼쳤다. 예나 지금이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종지부를 이츠키는 보게 된다. 여느 때나 후배들이 건네준 책에는 이츠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런데 뒷면을 보니 자신의 어렸을 때의 모습이 그려져 있던 것.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히로코가 편지를 모두 되돌려주었던 것도
먼 과거의 책에 쓰인 ‘이츠키’라는 이름을 쓴 것도
전학 가기 전 마지막 날 학교를 빠지고 자신을 보러 와주었다는 것도
그녀와 닮은 히로코를 연인으로 만났던 것도
모두 이츠키를 향한 이츠키의 마음의 조각들이었다는 것을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누군가에게 첫사랑이란 정말 짧은 순간의 만남이기에 기억 저편에 두고 살지만 또 다른 이에겐 일생을 거쳐 간직할 소중한 추억이 된다. 이 영화는 첫사랑을 기억하는 한 남자 이츠코의 이야기, 첫사랑을 이제 그만 보내려는 히로코의 이야기, 비로소 자신의 첫사랑을 알게 된 또 다른 이츠코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녹여놓은 것 같다. 이츠키를 앗아간 산을 향해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 장면은 첫사랑을 떠나보내는 히로코의 수도 없이 바뀌는 감정선을 잘 묘사하여 유달리 가슴에 와닿았다.
아직 열아홉이라는 나이를 두고 살아가고 있지만 영화를 통해 그간 정을 나눴던 이들이 떠올랐다. 이츠코와 똑같이 중학교 때 만났었던 덮은 머리에 안경을 썼고, 밝은 미소와 깊은 눈을 가진 아이였다. 1년을 넘게 만나며 행복한 순간, 슬픈 순간 매 순간을 함께 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갔던 것도 잠시였다. 여느 연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이별을 하였고 히로코처럼 몇 년을 기억하고 수많은 감정을 쏟아내었다. 친구들에게 털어놓기도 하고 편지는 아니지만 그와의 추억이 담긴 글을 기록하여 저장해 두었다. 아직도 친구들이 이상형을 물어보면 나도 모르게 모든 내용이 그를 묘사한 듯 대답하곤 하였다. 이츠키도 이처럼 어른이 되어 수많은 이들을 마주쳤다 하더라도 가슴 한편엔 이츠키를 품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영화를 통해 잊고 있었던 첫사랑에 대한 기억들을 잠시나마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와중 마주한 러브레터는 마음속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사랑했던 순간의 나를 떠올리게 해 주었다. 앞으로 어떤 누군가를 만나 어떤 사랑을 할지 모르지만, 또 어느새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해 준 사람이 바뀌어갈 정도로의 깊은 사랑을 하고 있을지라도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가슴 저 한편에 자리 잡은 ‘첫사랑’의 모양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만 같은 옅은 추측을 해보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