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說) 대한심(閑心)국 22회

코로나 시대(21)

by 조작가Join

코로나 걸린 목사(2)


광복절은 일제의 억압에서 우리 민족이 해방된 날이다. 광복은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고, 자유를 상징하며, 민족, 민중의 감격스러운 날이다. 좀 더 확대해서 해석하면, 가진 자의 날이 아니라, 가진 게 없는 자들의 날이며, 나이 든 과거의 날이 아니라 젊은 내일의 날이기도 하다.


“광복절을 기념해서 집회를 준비해야겠어요. 원래 계획은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우리 몫을 단단히 챙길 생각이었는데, 저 머저리 같은 소인배들이 일을 그르쳤어요. 원래 초짜들이랑은 대사를 함께 하는 게 아닌데…….”


목사는 지난날 야당의 대표와 손잡은 걸 후회하는 척했다. 사실, 속으로는 목표 이상을 달성해서 자신의 영향력이 치솟았음을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역시 나는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알량한 잔꾀를 자찬하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 이름 석 자가 전국에 알려지고 이래저래 후원 부대도 늘어나고 있다는 보고를 받으면 미소를 감추기 힘들었다.


이 모든 게 다급했던 야당 대표가 앞뒤 재지 않고, 자신의 손을 잡아 주었기에 챙길 수 있었던 이득이었다. 물론, 야당이 선거에서 이겼다면 자신이 원하는 걸 더 만족스럽게 얻을 수 있었겠지만, 당장 돈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이름이 알려졌다는 게 목사를 만족스럽게 해 주었다. 인간의 명예욕과 부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이지만, 당장 한쪽만 얻어도 그의 얼굴에 드러나는 흥분은 제어할 수 없었다.


“현재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서 정부나 시의 방해가 심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환자가 확산하면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도 힘들 거고요.”


모든 종교인이 우매한 것은 아니다. 종교집단에서도 합리적인 생각이 있는 사람이 있다. 간신이 넘쳤던 백제 시대에도 충신이 있었고 가족을 모두 참하고 전장으로 뛰어간 계백 같은 인물이 있었다. 북한의 3대 세습 가운데 의로운 자는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정(情)’이라는 게 있어서 민중을 거두려 했던 사람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 변호사,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가 하는 일은 구국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 성전(聖戰) 임을 모르신단 말이오? 그깟 우한 병이 무서웠다면, 내가 이렇게 일어서지도 않았어요.”

“목사님의 애국심과 신앙심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를 보십시오. 종교와 관계없이 모두 걸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중심으로 전파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어허, 이 양반, 같이 일 못 하겠네. 거사를 앞두고 이렇게 딴지를 걸면, 우리 조직이 와해되는 길 밖에 없다는 걸 몰라요?”


목사는 김 변호사의 합리적인, 응당 한 번은 지적하고 넘어야 할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김 변호사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자리에서 낙오되면 돌아갈 곳이 없기에 목사가 하는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입은 있되 말하지 못하고, 눈은 있으되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귀는 둘 다 뚫려 있어도 사람의 말을 듣고 해석할 수 있는 머리는 작동하지 않았다.


“목사님, 그렇게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과거라면 모를까, 요즘 국민은 쉽게 선동되지 않습니다. 명확하게 제시할 자료가 없으면, 오히려 역공에 존폐위기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목사는 자신의 말에도 의지를 꺽지 않는 김 변호사를 잠시 응시하다가 눈을 감아 버린다.

“이 일은 하나님의 뜻이오!”


양은 쟁반에 묵직한 돌이 떨어져 ‘쨍’하고 소리가 나듯이 확고한 목사의 거친 음성이 공기를 가른다. 김 변호사도 더는 고개를 들지 않고, 목사를 향했던 시선을 거둔다. 그러고는 자기 앞에 놓인 A4 자료를 쳐다본다. 그리고 펜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끝났다”라는 말을 꾹꾹 눌러 적어본다. 그 힘이 얼마나 셌던지, 튼튼해 보이는 볼펜이 반쯤 꺾일 정도였다. 아마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던 목사는 그런 모습을 봤을 텐데도 일부러 모른척한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광복절 집회를 논의해 봅시다. 콜록, 콜록!”


목사의 기침 소리에 동시에 목사를 쳐다본다. 그런 상황을 알았다는 듯이


“걱정 마세요.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열도 없고, 괜찮아요. 그리고 우리 모두 마스크도 착용했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습니까? 허허.”


그렇게 에둘러댔지만, 사실 그동안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도 않았고, 목사 자신도 평소보다 몸에 열이 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내가 코로나 걸리면, 그게 무슨 망신일까?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


의심을 거두지 못한 주변 사람들은 회의를 빨리 마치고 싶은 마음에 모든 안건에 쉽게 동의하고 회의장을 나선다.


“그런데, 목사님 상태가 안 좋아 보이지 않아요?”

“네. 기침 소리도 그렇고, 얼굴도 좀 상기된 게 열이 있어 보여요.”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혹시 코로나에 감염되기라도 하면 우리 꼴이 참 우스워지겠어요.”

“설마, 그럴 일이 있겠어요. 본인도 그 문제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아니, 코로나가 우리는 피해 간답니까?”

“하기야….”


김 변호사는 자신이 올가미에 스스로 걸렸음을 깨달았다. 이렇게까지 말이 통하지 않을 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배를 타고 큰 바다에 이르렀기에 그 한복판에서 뛰어내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선해봤자, 익사하거나 물고기 밥이 되는 길 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육감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잘 못 걸렸어. 나 스스로 덫에 발을 넣어줬으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회의를 마치고 당회 실에 들어와 앉아있으니 열이 더 오른 거 같아서 목사는 찬물 한 잔을 단숨에 마셨다. 그러고 나서, 어제 사놓은 감기약을 찾아 물과 함께 다시 넘긴다.


‘아무래도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우한 병이 나마저도 잡아먹는 건가?’


몇 시간 지나자 좀 나아진 거 같았으나, 열은 더 오른 듯하고 기침도 줄지 않았다. 목사는 수화기를 들고 행정실이라고 적힌 번호를 누른다.


“네. 목사님!”


행정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30대 여성인데, 목사는 종종 행정직원과 해서는 안 될 밀회를 꿈꾸기도 한다.


‘난 다윗과 같은 사람이지. 그러니 일반 아낙네 하나 품는 게 얼마나 큰 죄겠는가? 하나님의 사람은 여자 문제로 버림받지 않는 법이지.’


그러나 목사의 권위로도 행정직원과의 부정한 밀회는 이룰 수 없었다. 기회를 만들려 해도 직원은 업무 이상 가까워지려 하지도 않았고, 혹여 특별히 안수 기도를 해준다고 해도 행정직원은 정중히 거절했기 때문이다. 못 먹는 감이 더 맛있어 보이는 법이어서 계속 기회를 노렸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재개발 결정이 되고, 선거철이 되자 어쩔 수 없이 잠시 수컷의 본능을 내려놓은 것이다.


열이 나고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보니, 본능을 제어할 이성은 약해지고 음흉한 육체적 본능이 더 커져서 직원의 목소리만 들어도 음탕한 생각이 떠오른다. 이미 여러 여인과 밀회를 가졌지만 다들 나이가 있었고 서로 목적이 있는 만남이었기에 동물적 본능만 해소했지, 이성으로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동물적 본능에 충실했다고 여겼을 뿐이었다. 그리고 행정직원은 목사의 딸보다 어리지만, 그래서 더 갖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목사의 계략에 쉽게 말려들지 않으니 더 애간장을 태울 수밖에. 먹지 못하는 포도를 보는 여우나 넘을 수 없는 산을 오르는 등산객의 마음이 그와 같으리라.


“어. 혹시 행정실에 체온계 있으면 가져와 봐요.”

“네. 목사님.”


곧 전화기에서 “뚜뚜”하고 용건이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고, 채 1분도 되지 않아서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똑”

“들어와요!”


행정직원은 오늘도 평소와 같이 긴 면바지에 카라가 있는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티셔츠 위로 조금 도드라진 가슴 라인을 제외하고는 특별할 게 없는 여인이었다. 외모도 예쁜 편이 아니었고, 키도 평균 키가 좀 안 돼 보였다. 어딜 봐도 매력을 찾기 힘든 여인의 풍모였다. 그러나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목사에게 그녀는 어느 장미보다 아름다운 특별한 꽃이었고, 쉽게 넘어오지 않는 가시 같은 방어가 오히려 정절을 지켜 열녀문을 하사 받은 조선 시대 열녀의 절개로 보여 더 애끓게 했다.


“여기 있습니다.”


체온계를 목사의 책상 위에 놓고 나가려는 직원을 목사는 힐끔 쳐다보더니,


“그런데, 내가 이 기계를 잘 못 다뤄서. 내 체온 좀 재줄 수 있을까?”


목사는 평소에도 잘 웃는 편이지만, 주변인들은 그 미소를 음흉한 미소라 해서 ‘음소’라 부른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목사는 흠모하는 여인 앞에서 더 힘주어지어 본다.


‘오늘따라 더 음흉해 보이네. 아프신가?’


심적으로 더 거부감을 느낀 직원은 체온계의 전원을 누르고 단계를 맞춰서 목사의 귀로 가져간다. 그러다가 귀 청소되지 않아 튀어나온 귀지를 잠시 노려본다. 그렇다고 ‘목사님 알아서 하세요.’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걸 알기에 그대로 체온계를 귓속에 넣는다.


‘이제 이 체온계는 절대 사용하지 않을 거야!’

“37.7”이라는 숫자가 찍힌다.

숫자를 보고 행정직원은 잠시 당황한다. 그녀의 마음속에도 ‘설마’라는 단어가 간절하게 맺혀있다.


“목사님 다른 쪽 귀도 체온을 재볼게요.”


목사는 사태의 심각성은 모르고, 양쪽 모두 재 준다는 말에 복권에라도 맞은 듯 더 음흉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다가 활짝 뿜어본다. 그러든 말든 직원은 얼른 다른 쪽 귀에 이미 버려진 체온계를 꽂아 넣는다.

“37.9”라는 숫자가 찍힌다.


“어때요? 별일 없지?”


목사는 당연히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듯, 여인을 쳐다본다.


“목사님, 열이 있으세요. 병원에 가셔야 할 거 같아요.”


행정직원의 목소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대부분 사람은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한다. 이를 ‘램프 증후군’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통 부정적인 일의 9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머지 10%는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런 경우 불안감이 아니라, 확신에 가깝다.


‘목사님이 코로나에 걸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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