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지역 폐렴
우한지역 폐렴
“중국 우한지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로 인해 폐렴이 확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되도록 공공장소를 피하시고, 청결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명절의 즐거움과 끝 무렵의 아쉬움에 어정쩡한 어색함을 던져준다. 심각하게 전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괜히 나가서 감염돼 고생하지 말라는 멘트 같았다.
‘명절 끝 무렵에 무슨 전염병?’
설날 연휴 끝나기 하루 전에 꽤 보도할 내용이 없었나 보다. 국내 환자도 있다고 하지만, 많은 숫자가 아니어서 크게 염려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중국 놈들이 그렇지. 아무튼, 인구가 많으니 별의별 병이 다 있네.”
역마다 승객들의 따분함을 달래 주기 위해서 허수아비처럼 서 있는 텔레비전 앞에서 한 노인이 지나가다가 한 마디 던진다. 대부분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동의의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중국과의 교역이 끊기면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이 있다는 걸 사드 때 경험했기 때문에 공영 방송에서는 중국 우한지역 폐렴과 관련해서 자세한 보도는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명절 연휴의 마지막을 장식할 쇼핑을 앞두고서 전해진 보도여서 시민들의 반응도 좋을 수 없었다.
“연휴 마지막 날에 참 어색한 뉴스네요.”
“그러게, 말이다.”
지원은 어머니께서 싸주신 김치, 어묵, 두부조림 등 밑반찬을 챙기는 중이었다. 살던 곳을 등지고 대구에 내려간 지 5년째다. 종종 서울을 오가면서 활동하지만, 결혼 전만큼 활발하게 돌아다닐 수 없었다.
‘또 내려가야 하는구나!’
그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겨서 명절이 아니면 본가에 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게 다들 고향으로 내려갈 때 상경하고 다들 귀경할 때, 집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교통지옥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내가 저 반대편의 차량이었다면?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들 과거 같지는 않다고 하지만, 여전히 밀물 들어오듯 수많은 인파와 차량이 움직이고 빠지는 게 우리나라 명절이다. 특히, 전국 60% 이상의 인구가 몰려 사는 수도권은 그야말로 물 빠진 갯벌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갔다가 거짓말처럼 다시 채워진다. 그리고 다시 꽉 채워진 수도권은 쇼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런데, 현재 분위기는 즐겁게 즐기려는 마음에 신중함의 돌을 다리에 채워 준 것이다.
“야, 너희도 내일 코엑스 간다는 거 취소해! 우한 폐렴이 중국에서 유행이라고 하는데, 사망자도 있나 봐! 괜히 아이들 데리고 갔다가 안 좋은 일 생기면 안 되니까.”
명절 연휴 마지막 날에 코엑스에 쇼핑하러 간다는 동생한테 전화를 걸어서 만류했다. 큰 문제야 없겠지만, 아무래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리고 지원 가족도 여의도에 가려던 일정을 취소했다.
“아빠, 저 세종대왕을 보고 싶어요!”
지난달 책을 읽던 딸 아이가 지원한테 한 말이다. 당연히 광화문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지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 어렵지 않지. 이번 명절에 한 번 다녀오자.”
라고 말하고 무심코 책을 보니, 세종대왕 동상이 여의도에 있다는 게 구절이 눈에 띄었다.
‘응? 여의도에 있다고?’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광화문 거리에서 세종대왕 동상을 보지 못한 것 같다. 늘 그렇듯이 세종대왕 동상이 이순신 동상 주변에 있을 거라고 보지도 않고 그렇게 믿었다. 뜻밖의 정보에 지원도 옮겨진 세종대왕 동상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해서 명절 연휴 기간에 여의도에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우한지역 폐렴으로 인해서 부득이하게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여보, 우리도 내일 일찍 내려갑시다. 아무래도 수도권보다 대구가 낫지 않겠어?”
“그래요. 새벽에 출발할 수 있도록 해요.”
아내의 말에 지원도 동의했다.
‘지금은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중국에서 들어 온 우한 폐렴 환자가 수도권에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당연히 수도권과 중국에서 더 떨어진 지역이 안전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지구촌 시대라고 하지만, 전염병이 물리적 거리를 쉽게 극복하지는 못할 거라는 확신이었다.
새벽 4시, 명절 음식과 반찬을 챙겨서 출발한다. 내비게이션을 확인해 보니 전국 고속도로 상태는 온통 초록색 표시다. 막힘 없이 ‘뻥’ 뚫렸다. 물 흐르듯이 쉽게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1월의 겨울 새벽은 고동색같이 고요하고, 이동하는 차량도 거의 없다. 다만, 이런 원활한 흐름에 긴장하라는 듯이 신호등만 제 할 일을 깜박깜박하며 묵묵히 수행할 뿐.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상경하는 차량으로 도로가 바둑알로 가득한 바둑판 같아 보인다. 매번 상경할 때나 하향할 때 지원은 간혹, 사고로 도로가 꽉 막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본인이 겪는 일은 아니지만,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마음을 억누르는 걸 느낀다.
‘고향이 뭐길래? 저리도 이동해야 하나?’
아마도 지원도 고향을 찾아 오가는 인생이기에 다른 운전자들의 답답한 마음이 이입된 것인지도 모른다.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잠시 쉬려고 했지만, 아이들의 체력은 어른들의 작은 바람도 이룰 수 없게 만든다.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소리, 첫째와 둘째가 다투는 소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소리에 “제발 뛰지는 마!”라는 부모의 고함이 잘 버무려져 집에 돌아온 티를 마음껏 표출하고 있었다.
“애들이 쉬질 않으니, 우리도 쉴 수가 없네.”
“그러게. 어쩔 수 없이 밤에 자야 할 거 같아.”
“이렇게 된 거 라면이나 끓여 먹읍시다. 어머니께 받아 온 김치도 있으니.”
“오케이!”
아이들이 커가면 먹는 양도 늘어난다. 신혼에는 라면 두 개면 충분했는데, 요즘에는 3개도 부족하다. 밥까지 말아서 먹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먹는 양이 늘어난다. 그런데도, 항상 2개만 끓이게 된다.
“그나저나 우한 폐렴 환자가 더 생겼대.”
“그래?”
“확진자는 얼마 안 되는데, 전염성이 크고 아직 약도 없나 봐.”
“음. 메르스 꼴 되는 거 아닌지 몰라.”
메르스 당시 확진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치사율이 높아서 공포의 시기를 보냈다. 특히, 대구는 몰지각한 공무원 한 명 때문에 그가 사는 지역 일대 경제가 무너졌고, 주변 시민들을 메르스 공포로 떨게 하지 않았는가?
“나는 메르스 안 걸려! 지난주에도 메르스 때문에 입원한 지인 보고 왔는데, 괜찮잖아!”
그의 무모한 자신감과 선언의 결과는 엄청난 민폐를 양산했다. 오죽하면 시민들이 들고일어나서 해임하라고 항의할 정도였다. 이후 징계위원회에서 해임을 결정했으나, 인간은 어차피 먹고사는 데 연연하는 인간인 고로 공무원은 해임의 부당함을 주장하면서 즉각 항소했다. 이후 비판이 수그러들자, 모든 기억을 과거의 지갑 속에 잘 접어 두는 대중의 특성을 잘 이용해 복직했다고 한다. 종종 그의 얼굴을 아는 시민이 구청에서 그를 마주치면
‘어? 저 사람? 아직도 있네.’
라고 생각하지만, 지난 시간의 증오는 무관심으로 바뀌고 불같은 정의감은 꺼져서 부당함을 따지고 들지 못한다. 지원은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든다.
‘설마?’
불쏘시개에 불붙기 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연기가 눈을 맵게 해서 억울하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처럼 불안감이 조금씩 피어오르는 기분이다.
작가: 조연호, 편집: 안대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