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사회의 발전은 학습 역량에 달려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간에 높은 빌딩마다 예비 후보자들의 얼굴과 성명, 그리고 핵심 공약이 크게 적힌 현수막이 흉물스럽게 붙어 있었다. 필자가 거주하는 지역에도 정말 거대한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한 예비 후보의 현수막에 “명품 교육도시”라는 글씨가 크게 적혀 있었다.
예비 후보자가 생각하는 “명품 교육도시”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과연, 구청장 수준에서 교육제도를 바꿀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그리고 “명품”이라는 용어가 꽤 지난 시절, 유행어처럼 사용됐음을 떠올려보면 예비 후보자의 시각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한 마디로 공약(空約)을 내 건 셈이었다.
‘SKY’를 가도 취업하기 힘든 세상에서 현재 교육 시스템은 종착점에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교육 수준이 향상하고 정보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육체노동을 하는 블루칼라보다는 소위 화이트칼라의 일자리가 아웃소싱(outsourcing) 됐다.
이전에는 주어진 그릇 안의 용액에 개인이 용해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이제는 용해가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그릇을 만드는 창조자가 돼야 한다.
창조자들
코딩하면 떠오르는 스티브 잡스는 리드 대학 철학과를 다니다가 중퇴했다. 대신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으며 재능 또한 있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천재로 인정받고 있지만, 대졸자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립자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 수학과를 중퇴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덕분에 컴퓨터와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유리한 부분도 있었지만, 스스로 컴퓨터와 관련한 학습에 매진했다.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크버그는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중퇴했다.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역시 컴퓨터 관련한 분야를 학습했다.
구글의 창립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대학은 졸업했지만, 박사과정을 마치지 못했다. 이들은 컴퓨터 관련 전공자들이지만, 인재를 선발할 때 인문학 소양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며, 다방면에 능력이 있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테슬라, 스페이스 엑스, 기가 팩토리 등을 대표하는 일론 머스크도 가방끈이 긴 사람은 아니다. 전공은 경제학이지만, 물리학과 컴퓨터와 관련한 지식이 전공자 이상이라고 한다.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현재 만인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의 공통점은 대학교를 포함한 기존 교육으로 만들어진 인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존 교육 시스템은 하나의 전공을 선택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과정이다. 물론, 한 분야에 집중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경우가 많았다. 과거에는 그랬다. “한 우물만 파라!”라는 옛말도 있으며,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양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을 비판하는 “열 가지 재주 있는 놈이 저녁거리가 간 데 없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낳은 『아웃라이어』의 작가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는 그 책에서 “한 분야에서 성공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아웃라이어』에서 말하는 한 우물 파기는 교육이 아니라 학습이다. 그리고 전문가가 될 수준으로 노력하라는 것이지, 다양한 것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다. 최근에는 오히려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멀티포텐셜라이트(multipotentialite 다 능인)’가 주목받기도 한다.
학습은 교육의 수동적인 형태를 벗어나서 스스로 능동적으로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도 학교에 가는 것은 싫어할지 몰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학원에 갈 때는 즐겁게 간다. 물론, 즐겁게 다니는 수준을 넘어서면 슬럼프도 있고, 어려워서 쩔쩔매기도 하지만 동기부여만 제대로 된다면, 역경을 넘어설 수 있다.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규 교육 과정을 온전히 마치고, 일류 대학교에 다니면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대부분 ICT와 관련한 사업을 하는데, 관련한 전공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다. 즉, 교육이 아닌 ‘학습’으로 그들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계발했다.
학습 시대로 가야한다
좋은 교육도시의 기준이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것이라면, 서울을 넘어설 수 있는 교육도시가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점진적으로 지방에서 서울권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수가 줄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아울러 지역의 최고 대학들의 순위는 과거와 비교할 때 계속 떨어지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수도권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모든 자원이 몰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지방분권으로 인한 권력 이양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방분권이 이뤄진다면, 지역교육 수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 대학교의 경쟁력이 높아야 할 텐데, 지금 같은 상황으로는 요원한 일이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는 “이전에는 고등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학생들이 집에서 가까운 주립대학교에 다니는 것이 보편적이었지 만, 이제는 몇몇 소수 정예 사립대에 입학하려는 경향이 커졌다.”라고 말하면서 이런 현상은 비용의 비효율을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이제는 교육의 시대가 아니라, 학습의 시대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중점이 되는 분야를 발견해서 학습 역량을 키워야 한다. 교육(education)과 학습(learning)은 다르다. 영어 단어의 모양새만 봐도 학습은 ~ing형이다.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교육은 고착된 시스템이어서 변화가 힘들지만, 학습은 순발력 있는 변화가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서 정규 교육 시스템을 개선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코딩 하나만 추가해도 사교육 열풍이 부는 상황에서 추가로 새로운 과목을 정규과정에 포함 시킨다면, 사교육 시장만 더 커질 뿐이다.
이런 현실을 타파할 방법은 시민들과 청소년들의 자기주도 학습을 지원해 줄 방법을 공동으로 모색하는 데서 시작한다.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의 『메이커스』에서 말하는 것처럼 미래 1인 기업인들을 키우기 위한 ‘메이커 센터’를 조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분야별로 시민들이 모여서 학습 지원을 요청하면 이를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학습 역량이 커질 때, 지방분권 시대도 성숙한 시민 의식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참여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싱가포르는 1997년부터 “생각하는 학교
(Thinking School)와 배우는 국민(Learning Nation)”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학업 성적보다는 문제 해결 능력과 사고력, 창의력 등을 중심으로 한 개혁을 추진하면서 1999년부터는 초중교의 수업 시간을 10 - 30% 줄이는 대신 미술, 음악, 체육 등 다양한 예체능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2015년에 실시된 4차 산업혁명 지수에서 스위스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데 이어서 최근에는 1위로 올라섰다. 개혁의 성과가 20년 만에 나타난 셈이다.
『최고의 교육』에서는 6C - Collaboration, Communication, Content, Critical Thinking, Creative Innovation, Confidence - 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미래에는 “창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 패턴을 인식하고 의미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예술가, 발명가, 디자이너, 스토리텔러 등이 사회에서 큰 부를 보상받고 큰 기쁨을 누릴 것”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소프트 스킬’(Soft Skill : 사회성, 의사소통 능력, 협상, 팀워크, 리더십 등의 성격 기반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사회적인 역량을 갖추고 남들과 협력할 줄 알았던 아이들이 더 좋은 교육 수준, 더 좋은 직업을 찾을 수 있었다”라는 말을 전 한다.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는 생각은 새로운 시대의 협력과는 거리가 먼 생각이다. 지역 사회의 서울 바라기와 서울대 바라기는 지역 사회가 발전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
협력적이고 사회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학습 여건을 마련하고, 그런 토대에서 지역 시민들이 지역 발전을 위한 창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창조적인 활동을 할 때, 지역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