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상 읽기 : 4차 산업혁명과 지역 사회(10)

정치가 물들인 '그들만의 내 축제'

by 조작가Join

왜 글로벌 축제?


마셜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이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지 30년이 지났고, 세계화라는 말도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언급됐으니, ‘지구촌’이라는 말과 엇비슷하게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단어들은 어느덧 국내에 잘 정착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하는데, 특히 지역 축제나 콘퍼런스 등에 접두어처럼 붙는다.


현재 전국적으로 ‘글로벌’, ‘인터내셔널’, ‘세계화’라는 단어는 대부분 행사에 당연히 따라다니는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행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필자는 다양한 지역 축제와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했는데, ‘국제’라는 접두어가 없는 행사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를 주최하는 공기관 담당자들도 참여하는 외국인 수를 중요하게 여기는 수준이었다.

참고로 필자가 거주하는 대구에도 많은 축제가 있는데, ‘국제’라는 말이 붙지 않은 축제는 찾기 힘들었다.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 ‘국제 오페라 페스티벌’, ‘국제 게임 페스티벌’, ‘국제 무용 페스티벌’, ‘국제 째즈 페스티벌’ 등이 있다.

물론, 국내를 벗어나 우리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린다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얼마나 세계화된 축제를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을까? 그리고 실제로 참여하는 외국인은 얼마나 될까?


국제행사, 특히 국제회의는 법률로 정해놓은 기준이 있고, 한국관광공사의 기준도 있다. 그래서 기준을 맞추기 위해 외국인을 동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행사의 질과 콘텐츠의 특성을 살리기보다는 참여 인원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기획과 좋은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참여 인원이 적으면 당장 다음 해에 예산 감액이 가능하다. 반대로 콘텐츠가 좋지 않아도 참여 인원이 많으면, 행사는 격찬을 받는다. 주객전도(主客顚倒)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동안 언론에서, 축제 참여 인원을 부풀린 사태를 집중적으로 보도한 적도 있다. 사실, 주관하는 ‘위원회’ 등에서 임의로 참여 인원을 산정해서 언론에 제공하기에 각 기관에서 제시한 통계는 신빙성이 없다. 아울러 적지 않은 비용이 행사에 지원되는데, 대부분 행사는 수익도 별로 없다고 하니, 도대체 축제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축제


한 해에도 수많은 축제가 생성됐다가 사라진다. 2016년 기준으로 전국 축제는 1만 6천828개다. 매일 전국에서 46개 축제와 행사가 열린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은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예산 8천291억 원이 투입됐는데, 2014년보다 1천582건(10.4%), 966억 원 (13.2%) 늘었다고 한다.

아울러 국제행사와 관련해서 2017년에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제회의 유치 건수가 세계 1위였다고 한다. 대단한 업적이다. 그러나 행사 규모가 아닌 지속성 기준으로 평가하면, 10위권 밖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997건의 회의 중 서울이 526건이며, 부산이 152건, 제주가 116건, 인천이 53건을 차지해서 상위, 네 개의 도시에 약 85%가 집중됐다.

자료를 분석해 보면, 결국 자체적으로 지원하고 만드는 축제는 계속 늘어나는 상황인데, 지속력 있는 행사는 거의 없으며, 국제적인 경쟁을 통해 행사를 유치하는 경우가 지역에는 거의 없다.

그래서 대부분 축제는 지역의 토산물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축제는 대체로 시작과 끝을 참여자들만 알 뿐 대외적으로 홍보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투명한 예산 집행과 결산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관심 있는 사람이 없으니 자체적으로 정리하면 되는 형편이다.


대표적인 지역 축제 홈페이지는 대부분 축제 기간에 잠시 운영됐다가 사라진다. 혹 관련한 예산과 결산 자료를 훑어보려고 홈페이지에 들어가거나 관공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자체 감사 자료가 있을 텐데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당연히 축제 성과와 관련한 자료도 찾기 힘들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전국 대부분의 축제 성과가 부풀려져 있고, 엄정한 평가도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세금을 지원해서 개최하는 축제인데, 시민들의 참여율은 상당히 저조하다 그래서 담당 공무원들은 동원을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부분은 서울도 마찬가지다. 서울시와 행사를 해도, 담당 공무원들이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 부분이 인원 동원이다. 몇 년 전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다문화와 동영상 콘테스트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기간은 1개월 정도였다. 모든 콘테스트는 마감 며칠 전에 작품이 등록된다는 사실은 일반 상식이다. 그러나 담당자는 이런 상식을 무시했다.

“왜 작품이 올라오지 않죠?”라는 질문을 일주일 후부터는 계속 받아야 했다. 그때마다 “아시겠지만, 마감 날짜가 임박해서 올라오지 않을까요?” 하지만, 한 주가 더 지나가니 다시 독촉했다. “몇 작품이나 올라 올 거로 생각하세요?” “한 서른 작품 예상합니다.” “그러면, 지금쯤은 열 작품은 올라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담당자님 그런 식으로 날짜에 비례해서 작품이 올라오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믿어주세요.”


결국, 담당자의 편안한 마음을 위해서 몇 작품을 직접 촬영해서 올려야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콘테스트에는 오십 작품이 넘게 참여했다.


모든 행사의 성과는 참여자 수가 결정한다. 실제로 유명한 축제들은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즐긴다. 많은 사람이 올 수 있도록 하는 요인을 분석하고 벤치마킹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요인을 따져보는 평가 회의는 거의 없다. 축제만 개최하고 홍보한다고 해서 외지인들이 축제 지역으로 몰려드는 게 아니다. 오히려, 교통체증이나, 인산인해(人山人海)로 인한 부담으로 우회해서 이동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정치가 문화를 흐린다


그렇다면 왜, 동원에 그렇게도 목을 매는 것일까?

우선, 지역 행사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인사말이 있다(자치 시는 시장, 자치구는 구청장 등). 공무원들의 인사고과를 평가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참석해서 인사를 하셔야 하니, 들어 줄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행사 콘텐츠는 다음 순위로 밀린다. 자치단체장이 참석할 경우 “행사의 90%는 개막식에 달려있다”라고 담당자들은 말한다. 그러다 보니, 예산 비중도 시작에 많이 몰려있다. 인기 연예인과 사회자 등의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참여자 수에 따라 축제 지속 여부를 결정하고 예산 증감이 결정되니, 참여자 수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이태원 지구촌 축제는 이틀 동안 진행되는데, 70~80만 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당연히 부풀려진 숫자다. 참가자 수가 아니라, 그 기간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포함된 숫자다. 이태원 근처 녹사평, 이태원역을 경유하는 단순 통근자들도 포함됐을 것이다.


또 다른, 숨겨져 있는 사실은 축제 지원 예산과 참여 기업들로부터 받는 후원금 등이 축제조직위원회의 1년 예산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상인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축제는 이권 다툼도 꽤 크다. 모종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 한 번 조직된 이상, 외부 간섭은 용납하지 않는다. 좋은 콘텐츠보다는 수익이 중요해서 수익이 없다고 판단되면 아이디어는 소멸한다.


요컨대, 지역 행사는 상업적이고, 기획사의 수익을 챙겨주고, 조직위원회의 1년 예산 마련이 목적이다. 이러한 현실을 아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민간이 진행하는 축제에서 발을 빼기도 하지만, 선거는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니, 기존 축제 폐지는 쉽지 않다. 그래서 축제 조직을 쇄신하거나 변화하도록 노력하지만, 기존 조직의 저항이 만만치 않으니 포기하게 된다.


정치가 좌우하는 행사는 항상 불투명하다. 축제마다 형식적인 성과분석 회의는 있다. 그러나 그 분석에 따른 조치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민간 차원에서 재원을 충당하는 행사라도 행정 지원을 받아야만 행사가 진행될 수 있다. 그래서 사후 평가를 제대로 하고 공지할 의무가 있다. 하물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지원받는 행사는 결과 보고서가 투명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축제는 있으나, 진행 과정과 결과는 볼 수 없다.


한 마디로 ‘그들만의 내 축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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