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3)
장날
요즘에는 장날을 쉽게 볼 수 없다. 그러나 과거, 정말 넘어지면 코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과거만 해도 도심을 벗어나면 쉽게 구경할 수 있는 게 장날이었다.
장날은 대개 5일에 한 번씩 열린다. 2라는 숫자가 들어간 날이나 7이 들어간 날에 열리는 식이다. 혹은 5와 0이 들어간 날이 장날이기도 하다. 보통 때는 한산한 거리도 장날만 되면, 온갖 자판상으로 가득하고 어디서 이 많은 사람이 왔는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게 장날이다. 마치 비 오기 전 옹기종기 모이는 개미 떼처럼.
장날은 단순히 매매만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라, 오가는 이야기를 통해서 정보도 얻고, 사람을 만나 정도 나누는 시공간이다. 장에 오는 사람은 평소보다 흥이 난 상태에서 물건을 사고판다. 팔고 싶은 가격은 있으나, 항상 흥정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천 원짜리가 오백 원에 팔리기도 한다. 비싸지 않아도 더 싸게 사려는 사람과 어쨌든 팔려는 사람의 ‘흥(興)’과 ‘정(精)’으로 서로 만족스럽게 넘겨주고 받아 챙긴다. 그러다 보니, 툇마루에 길게 누워 주인을 기다리는 개똥이의 뼈다귀까지는 사서, 빈손으로 왔다가 돌아갈 때는 한 보따리 들고 가는 게 예삿일이다.
과
거 시골에서 자란 지원한테도 어린 시절 장날은 좋은 날이었다. 어리다는 게 무기였던 때 주머니에서 용돈을 탈탈 털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라도 살라치면, 처음 보는 아주머니인데도, “옛따! 많이 먹어라.”라고 하면서 돈보다 몇 배는 더 얹어줬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먹기 힘든 음식도 먹을 수 있었고, 매일 똑같은 시골 생활 속에서 난잡한 잡화상이 거리에 펼쳐지니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우연히 친척이라도 만나면, 그날은 ‘봉잡은 날’이었다. “예야, 이리 온”이라는 어른의 말씀에 수줍게 다가서면, 지폐 한 장을 손에 꼭 쥐여주곤 했다. 하지만, 어떻게 돈 냄새를 맡았는지 하이에나 같은 녀석들이 득달같이 달려 호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전으로 바뀌고 그 짤랑거리는 소리가 곧 여럿의 뱃속으로 들어 가 버린다. 어쨌거나 외유를 경험하게 해주는 날이었기에 마냥 좋은 날이었다.
점심으로 푸짐한 미나리 삼겹살을 먹고 바로 카페에서 모던한 차 한 잔씩 마셔서 더는 들어갈 곳이 없을 것 같은 뱃속이었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고 일행의 뱃속의 남은 여유는 장터의 다양한 주전부리를 차례대로 맛 보게 해줬다.
원래 계획에 없었던 현풍 장 구경이었지만, 장터를 구경하면서 이것저것 먹고, 양손에 보따리를 가득 채우다 보니, 2시간이 넘게 지났다. 어느덧 하늘 높이 떠 있었던 해는 육중한 몸을 하루 내내 움직여 서쪽으로 기울였고, 덕분에 팔에 걸어뒀던 아이들의 겉옷도 제 주인에게 돌아갔다.
아이들 몇이 공작소에 들어가 악세사리를 만드는 동안 나머지 어른들과 공작에 관심 없는 언니, 오빠들은 주변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들면 자기 것이 되는 공작에 몰입했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일행은 상대적으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마침 장터 주변에 컨테이너로 만든 청년창업 동 가로등이 켜지면서 일행은 “참 예쁘다!”라는 탄성을 지르면서 장날 투어의 마지막 사진을 촬영하며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청년들을 위한 창업 공간인데, 훑어보니 빈 점포도 많네요.”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상점을 둘러보고 온 일행이 안타까운 듯이 말한다.
“그렇죠. 특별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의 먹거리 일색이니, 잘 되는 곳은 잘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점은 문 닫을 수밖에 없겠죠.”
“그러게요.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아쉽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통시장과 5일 장, 그리고 컨테이너 청년 상점으로 이뤄진 현풍 장터는 왠지 과거 문화재 보호랍시고 돌탑이 훼손되면 시멘트로 무너진 곳을 메웠던 유신 시대의 현대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좋은 일, 굿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하는 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천편일률적으로 지역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가져오는 건 미봉책이자, 결국 예산만 흘려보내는 하수도와 같아 보인다.
“이제 아이들도 나왔으니, 돌아가시죠.”
“네, 저녁 먹기에는 너무 많이 먹은 거 같아요.”
“그러게요. 이따 밤늦게 출출해 지면 다시 번개 모임을 하시죠.”
그렇게 오랜만에 모인 사람들은 하루 내 미나리 향에 취하고, 커피 향에 취하고, 그리고 사람 향기가 물씬 풍기는 장날의 냄새를 온몸에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가는 길은 따뜻한 주말의 인파와 차량에 막혀 평소보다 시간이 지체됐지만, 그마저도 간만의 외출의 흥 때문에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야. 대구에는 단 한 명도 환자가 없으니. 이번에는 대구로 온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
지원은 돌아가는 차 속에서 수도권에 퍼지는 코로나를 생각한다. 다행히 코로나 전파의 속도는 강을 건너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혹은 산으로 둘러싸인 대구로 침투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다.
물과 산이 경계였을 때, 인간은 이동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건너지 못할 강에 다리를 놓고 도저히 넘지 못할 거 같은 산에 터널을 뚫어버리는 인간의 이동에 대한 욕망이 가져올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차가 많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