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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트리 Dec 21. 2024

연년생 받고 쌍둥이를 키우며 듣는 이야기들

다둥이를 키운다는 건


아들인 첫째는 20년 2월생. 딸쌍둥이는 21년 2월생이다. 출산율이 높은 지역에 살아도 여전히 아이들과 길을 나서면 다양한 질문을 받는다. 5년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유형별로 옮겨본다.




#다둥이가 반갑고 신기한 분들


Q1. 세 쌍둥이예요?


A. 큰아들은 다섯 살이고, 이 아이들은 네 살 된 딸 쌍둥이예요.

이렇게 답하면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1. 아이고, 엄마가 너무 힘들었겠다. 아빠가 잘해야겠네. (50% 확률로 이 말씀을 하신다.)

2. 애국자네. 애국자야! (이 유형이 40%이다. 양쪽 엄지를 치켜세우거나, 박수를 쳐주는 분들도 많다.)

3. 나도 쌍둥이 키웠거든요 or 우리 애도 쌍둥이 키우거든요. 고생이 많아요. (딸 같다면서 손 잡아주고 등 쓰다듬고 가는 분들도 계심. 인류애 충전.)




Q2. 시험관이에요?


세 쌍둥이라고 생각한 분들 or 딸쌍둥이만 데리고 나가면 왕왕 듣는다. 딱히 숨기지 않는데 대화가 길어지면 곤란해서 (ex. 횡단보도 신호 바뀜.) 자연임신이라고 답하면, 가족력이 있냐는 추가질문도 가끔 들어온다.


A. 네. 시험관시술로 만난 기적 같은 아이들이에요.

이렇게 답하면, 주로 이런 말을 들었다.


1. 고생 많았겠네. 우리 딸 or며느리도 시험관 했거든.


2. 아들이 없어서 어떡해! 아들 하나 낳지.

위로 첫째 아들이 있다고 답하면 백점만점이라고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아들쌍둥이에 딸 한 명이 더 좋았겠다는 분들도 있다.


3. 시험관은 왜 했어요? :(

놀랍게도 열 번은 족히 들어봤다. 악의 없는 호기심인걸 지금은 알지만, 처음엔 슬펐다.

3. 그래도 연년생보단 낫네. 내가 연년생 키웠거든.

위로 12개월 차이 첫째가 있다고 답하면 대화가 끝난다.




Q3. 연연년생이에요? = 다 연년생이에요?


A. 얘가 큰 오빠고 12개월 차이로 이 쌍둥이를 낳았어요.


1. 세 쌍둥이인가, 연연년생인가 헷갈려서 물어봤어요.

2. 아이고, 연년생에 쌍둥이요? 힘들겠어요.


이 질문을 하는 분들과의 대화가 가장 빨리 끝난다.








#쌍둥이의 외모에 관심이 많은 분들


자라나라 모발모발... 딸쌍둥이 맞아요. 진짜로...


태어날 때부터 머리숱이 풍성한 아이들도 있지만, 딸쌍둥이는 민머리에 가까웠다. 자라는 속도도 더뎌서 나는 한참 속을 끓였다. 수염 난 구황작물처럼 생긴 아이들을 쌍둥이 차에 태우고 외출하는 날에는,


1. 쌍둥이 맞죠?(쌍둥이 유차를 연년생 부모님들도 사용하니까, 진짜 쌍둥이인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인 듯.)

2. 시험관이에요?

3. 아들쌍둥이예요? 남매쌍둥이예요?(딸쌍둥이 중 선둥이가 남편을 닮아서 겉쌍꺼풀을 장착하고 태어났고, 후둥이는 나를 닮아서 속쌍꺼풀이 있다. 이목구비가 더 진한 선둥이가 하필 머리숱이 빈약해서 자주 들었던 말이다.)


이게 단골 질문이었다. 그나마 딸들의 머리카락이 4년 동안 열심히 자라서 이제 성별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요즘 양갈래로 묶고 다니는데 아들쌍둥이냐고 물으시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란성인 쌍둥이의 외모를 비교하고 나름의 순위를 매기는 경우도 있다. 얘가 더 예쁘다. 얘는 엄마 닮았구나?


얼마 전, 본격적으로 문장을 구사하기 시작한 선둥이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는 아빠 닮아서 까맣고, 하윤이는 엄마 닮아서 하얗대. 나도 하얘지고 싶어.


어떤 상황일지 그려졌다.

'하윤이가 좀 더 뽀얗네. 아윤이는 아버님을 닮았고.' 딱 이 정도의 대화였을텐데, 아이가 상처받았다. 선생님들께 말씀을 드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별 의도 없이 하신 말씀일 테니 따로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아윤이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아윤이도 충분히 하얘. 그리고 네가 아주 검은 피부여도 엄마는 똑같이 널 사랑할 거야. 엄마의 소중한 딸이니까. 피부색은 중요하지 않아. 알겠지?


미군이 많은 지역에 살다 보니, 어린이집에 혼혈 친구들도 많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통해서 시야를 넓혀주고 싶었다. 다행히도 이후로는 아이들이 피부색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둥이 육아 5년 차, 대답 자판기로 진화했다.


첫째를 낳고 외출할 때는 질문세례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쌍둥이를 데리고 다니니 쏟아지는 무수한, 가끔은 무례한 질문들은 꽤 불편했다. (물론 첫째를 키울 때도 옆에 있는 나는 보이지 않는 듯, 유아차에서 자는 아이를 만지는 분들이 있었다. 첫째가 태어난 시기에 코로나19가 우리나라로 넘어와서 초보 엄마였던 나는 굉장히 예민했다.)


출산율은 곤두박질치고, 초산연령이 점점 높아진다는 기사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이런 시대에 아이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분들이 많은 거겠지. 물론, 그 관심의 방향이나 깊이가 남다를 때는 난감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5년 동안 반복된 질문과 이야기를 듣다 보니, 넉살이 오세아니아만큼이나 넓어진 나는 이제 이렇게 대답한다.


1. 그러니까요!!! 너무 힘들어요 어머니!!! (초면이다.)

2. 손자가 쌍둥이예요???!?!! 그럼 며느님한테 더 잘해주세요.

3. 네 ~ 쌍둥이 맞아요. 저 애국자죠??!?! (선수 치고 호방하게 웃어버림.)




다둥이 부모의 마음도 오롯이 이해한다. 그래서 길에서 쌍둥이나 다둥이 가족을 보면 보호자에게 조용히 목례하거나 눈웃음만 건넨다. 여러분, 힘내세요.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씀드려요!




쌍둥이든 세 쌍둥이든, 네 쌍둥이든 모두 시험관시술이나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건 아닙니다.(저희 아이들은 맞습니다.) 시험관시술, 인공수정은 단지 아이를 만나는 과정만 다르고, 똑같은 사랑으로 품고 낳아요. 한 번에 여러 명의 소중한 생명을 만나는 고된 행복을 얻었을 뿐이지요.


외동아이를 키우다가 삼 남매의 엄마로 레벨업을 하고 나니, 몇 곱절의 노력과 자아성찰을 반복하게 되네요. 제가 많이 했던 혼잣말이 있어요.


아,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네.


육아는 지름길이 없더라고요. 하물며 다둥이를 만나는 기적이 제 생에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뜻밖의 선물은 감사하지만, 그 기쁨이 다둥이 육아의 고단함을 덜어주진 않았어요. 그래서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자책한답니다. 이렇게 부족한 내가 과연 이 아이들을 잘 키워낼 수 있을까? 차라리 한 번에 한 명씩 낳아 더 많은 사랑을 온전히 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해요. 하지만 한 번의 임신조차 불가능해서, 시험관시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됩니다.


이 배우자와 만나서, 딱 그 시기에 시험관 시술을 했기에 만날 수 있었잖아요. 만약 제 바람처럼 한 명씩 임신했다면 이 아이들을 못 만났을 테니, 이 생각조차 아이들에게 미안하더라고요.


첫째가 걸린 감기가 쌍둥이에게 옮으면 그것마저도 잘못처럼 느껴져요. 외동으로 키웠다면 이렇게 자주 아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렇게 다둥이 부모는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요. 아이들이 어릴수록 육체적인 고단함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니 너무 직설적인 질문은 차라리 씩씩하게 인터넷 검색을 부탁드려요.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유인력 같은 끌림으로 꼭 묻고 싶다면, 저처럼 아이들이 좀 자란 부모에게 물어봐주세요. 초보 다둥이부모는 육아에 찌들어서 마나가(에너지) 고갈된 상태거든요.


저같이 조금 다둥이와의 삶익숙해진 양육자에게 묻는다면 더욱 친절하고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으실 거예요. 모두 아이들을 아껴주셔서 고맙습니다. 키워볼게요 :)




전국의 쌍둥이, 연년생, 다둥이, 세 쌍둥이, 네 쌍둥이, 겹쌍둥이 부모님들 모두 존경합니다. 힘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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