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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혁 Mar 16. 2022

심심한 위로

양귀자 「모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며 많은 것을 해낸다. 많은 것을 해내는 만큼 많은 것을 놓친다. 사소한 실수부터 큰 잘못까지 우리가 놓칠 수 있는 것은 다양하다. 이로 인해 우리는 슬퍼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 있던 나에게 양귀자의 「모순」은 마음 깊이 와닿는 책이었다.


    이 책의 초반부에서는 주인공 '안진진'과 주변 인물들이 지닌 모순을 소개한다. 쌍둥이로 태어났으나, 가난과 폭력으로 표현되는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와, 안락하고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이모부'와 결혼한 '이모'를 대비하며 소설이 시작된다. 진진은 문득 결혼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나영규'와 '김장우' 두 사람을 만나며 고민에 빠진다.


    이 책의 중반부에서는 동생 '진모'로 인해 힘들어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주리', '주혁' 남매로 인한 공허감을 느끼는 이모의 모습이 묘사된다.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과거의 강인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치매에 걸린 연약한 모습으로 되돌아오면서 진진의 혼란은 더욱 커져만 간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 가까워지는 만큼 영규와 정우 두 사람 사이에서의 고민 역시도 깊어진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이모는 결국 공허감에 잠겨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진진뿐만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쌍둥이의 죽음은 거대한 슬픔이었으나, 늘 그래 왔듯이 어머니는 본인만의 방법으로 슬픔을 극복하고 나아간다. 진진은 자신에게 솔직하게 다가오는 정우가 아닌,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영규와 결혼하고 소설은 마침표를 찍는다.


    양귀자는 「모순」을 통해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 등 삶이 지닌 모순적인 가치들을 긴밀하게 조명하고, 단순하게 하나의 가치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는 삶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역설한다.


    나는 양귀자의 「모순」이 일상에 지쳐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우리네 삶의 양면성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항상 불행하다고 말하지만 생동감 넘치게 삶을 이겨내고 있는 어머니와, 조곤히 행복한 듯 미소 짓지만 허무감에 빠져 삶을 포기하고 마는 이모를 대비함으로써 고단히 하루하루 삶을 버티고 있는 우리네 삶에 심심한 위로를 주는 동시에 한없이 빛나 보이기만 하던 타인의 삶의 그림자를 새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계획적이지만 지루한 영규와, 낭만이 있지만 불투명한 장우 사이에서 진진은 자신의 진심이 어디로 향하는지 끝까지 알지 못하지만, 결국 선택을 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선택이 완벽할 순 없지만 나름의 행복을 갖는다는 점을 일깨워주며 우리가 놓친 것보다 얻게 된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려움의 대상인 동시에 그리움의 대상이던 아버지가 돌아온 뒤, 오히려 진진의 두려움은 줄어들고 그리움은 커져감을 느끼는 것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외부로부터 마주하는 모순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도 모순이 있음을 깨닫게 하고 우리 스스로가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식하여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양귀자의 「모순」이 삶에는 당연하게도 기쁨이 있는 만큼 슬픔이 있고, 상처가 있는 만큼 행복이 있다라고 역설하며 부담과 후회로 괴로워하는 불완전한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장우와 진진의 풍파 가득하지만 낭만적인 사랑을 응원하며 읽었던 나는 결국 진진이 영규와의 따분할지 모르나 안정적인 결혼을 선택하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남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내 삶에서 기쁨과 실수가 궤를 같이한다는 위로를 곱씹으면서,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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