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기반 정책 - 중간 정리

균형발전에 대한 두 가지 설명

by CH

현 단계에서 한국의 서울(수도권) 1극 발전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가장 강력한 집적경제(Agglomeration economies) 관점에서 보아도 과도한 밀집으로 인한 비용이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현상은 OECD 상위권을 차지하는 통근시간과 저출산이다.


한국은 국토 면적의 약 11.8%수도권(약 11,871 km²)에 전체 인구의 51% 이상이 거주 중이다. 이는 OECD 국가 중 유사 사례가 없는 압도적인 수준이다.


연방제 국가인 독일, 미국은 지역별로 인구가 고르게 분산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적 국가인 프랑스, 영국도 인구 비중 면에서는 수도권 집중도가 10~20%대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와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수도권을 향한 고속철도, 고속도로 인프라가 잘 깔려있어 다른 나라에 비하여 수도권 인구집중이 더욱 심화되었다는 측면도 고려해야할 것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수도권을 넘어가는 범위는 같은 생활권으로 보지 않는다. 교통 인프라는 전체 인구의 50%라는 높은 수치 중 일부분만을 설명할 수 있을뿐이다.


한국과 그나마 유사한 건 전체 인구의 30%가 도쿄 광역권(도쿄도+가나가와·사이타마·지바현, 13,565 km²)에 집중된 일본이다. 그렇지만 일본은 케이한신 광역권(교토·오사카·고베 등, 약 13,271 km²)과 주쿄 광역권(나고야 중심, 약 7,072 km²)에 각각 인구의 약 15%, 약 8%가 분산되어있다.


한국은 부울경(인구 15%, 12,370 km²), 충청권(인구 11.2% ,16,660 km²), 대구·경북(인구 9.5%, 19,924 km²) 지역에 나머지 인구가 분산되어 있어 일본과 비교하면 수도권 외 광역권의 밀집이 약하며, 이로 인하여 도시 경쟁력도 약하다. 지역의 자생 가능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구조다.


여태까지 배운 바, 도시경제학자(urban economists)또는 경제지리학자(economic geographers)들은 이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 경쟁력 있는 제2, 제3의 광역권을 육성해야 한다. (Place-selective policy)

노동과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현 경제 체제에서 집적은 불가피하고 바람직한 현상이므로, 제2, 제3의 도시(도시권)를 선별하여 인프라, 공공기관 이전, R&D 역량 강화 등을 통하여 집적 효과를 촉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도권의 자원을 배분, 이전하는 작업도 부분적으로 필요할 것이며, 이는 수도권 집적에 의한 비용(통근비용, 환경오염 등)이나 제2, 제3 도시가 창출할 국가 이익 등으로 인하여 부분적으로 정당화될 것이다.


핵심은 선택과 집중이다. 전국 곳곳에 조금씩 나누는 것이 아니라 몇개의 승산이 있는 도시를 골라 누적 중심지로 키우는 것이다. 한국의 언론에서 흔히 먼저 거론되는 경쟁력 있는 후보지는 부산·울산·창원을 중심으로 한 부울경, 청주·대전을 중심으로 한 충청권이다. (영국을 예로 들면 어느 정도 규모의 대학과 산업 기반이 있는 맨체스터, 뉴캐슬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이 경우 선택 받지 못 한 지역은 광역권과의 연결(교통 인프라, 주거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을 강화해서 이동을 자유롭게 하면 된다. 선택받지 못 한 '지역'은 정체 또는 소멸할 것이나, '사람'은 더 나은 지역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2. 전국 다수 지역에 광범위한 기회를 분산해야 한다. (Place-based policy)

이 입장은 '승자 선택' 자체를 문제시한다. 특정 도시권을 선별하여 집중 육성하는 방식은,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역 간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고착화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지역 쇠퇴의 원인을 집적 부족이 아니라, 기회 접근성의 구조적 차단에서 찾는다. 교육, 공공서비스, 기본 인프라, 문화·의료 접근성 등이 지역에 따라 과도하게 차등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부 지역만을 ‘성장 엔진’으로 설정하는 정책은 다수 지역을 사실상 포기하는 선언에 가깝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은 특정 도시의 규모 확대가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지역이 '최소한의 자생 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회의 하한선을 끌어올리는 데 두어진다. 이는 대규모 집적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보다는,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에서도 일정 수준의 삶의 질과 경제 활동이 지속 가능하도록 만드는 접근이다.



한국의 수도권(또는 최소한 서울)을 보았을 때, 현 단계는 집적의 효율이 급격히 체감되는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수도권 외 지역은 집적의 최소 임계치조차 확보하지 못 하고 축소되어가는 구조에 놓여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수도권은 과밀의 비용을 치르고, 비수도권은 자생의 조건을 상실해 가는 이중의 불균형 상태라 할 수 있다. (혹자는 수도권을 제외한 제2, 제3 도시는 이미 소멸의 임계점을 넘었고, 정부가 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place-selective policy는 수도권의 부담을 완화하고 국가 차원의 경쟁 거점을 다극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소수 도시권에 대한 선택과 집중은 실패 가능성을 내포할 뿐 아니라, 다수 지역을 정책적으로 주변화할 위험 또한 크다.


반대로 place-based policy는 지역 간 기회 접근성의 격차를 완화하고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지만, 집적을 통한 가시적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주의할 점은 지방의 표를 의식한 공공기관 나눠먹기 식의 혁신도시 정책은 place-based policy 이론이 추구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필자가 이해한 place-based policy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맞춤형 정책을 펴는 것이지, 중앙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자원을 단순 배분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직장인 국토교통부를 변호하자면, 초기 혁신도시 정책은 지금과 같이 여러 도시로 나누는 방안은 아니었다고 한다. 한국의 지역구 직접투표 민주주의 제도와 단순다수결 대통령 선거제에서는 지금의 결과가 필연이었을 것이다.)


지역 의사결정권자와 지원 조직의 역량이 받쳐주면 place-based policy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선택과 집중 전략의 광역권 육성이 나을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혁신도시, 그리고 수도가 되려다 만 세종시의 존재는 계산을 더욱 복잡하게 한다. 앞으로 어디까지의 도시의 집적을 용인하고, 어느 지점에서부터 구조적 개입이 필요한가, 그리고 어떤 수준의 지역 자생성을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수도권의 과밀 비용을 명확히 가격화하고, 동시에 다수 지역이 최소한의 경제·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회의 하한선을 끌어올리는 혼합적 접근을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균형 발전이라는 구호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균형 발전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와 이해관계는 천차만별이다. 그렇지만 정치 공학적인 균등한 분산이 아니라, 관리된 집적과 관리된 분산이 공존하는 공간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 정부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



서울(수도권)의 집적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아직 집적의 순편익이 (-)인 구간에 도달하지 않은 건 아닐까?

→ 모든 것을 수도권 집중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국가 소멸 수준의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로 한국에서 가장 낮다.


국토면적이 작고 가용 면적은 훨씬 더 작은 한국의 맥락에는 제1 도시권으로 충분한 게 아닐까?

→ 위와 같은 맥락에서 서울(수도권) 집중을 심화하는 것과 그외 지역에 자원을 쏟는 것중 어떤 것이 국가적 이익일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추세를 유지한다면 서울(수도권) 집중은 더욱 심화되고 그외 지역은 쇠퇴, 소멸할 것이며 수도권 과밀비용을 차치하더라도 쇠퇴 지역에서는 많은 사회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한국의 정치 현실을 고려할 때 어떤 발전 경로가 적합한가?

→ 현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가 반복될수록 선거 승리를 위해 자원을 배분하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을 불가피하다. 어짜피 배분해야 한다면 해당 지역이 지닌 가능성에 맞게 역량을 최대화할 수 있는 맞춤형 패키지를 제공하는 이 최선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내 정부, 공무원, 전문가의 역량을 강화하여 지역에서 스스로 적합한 자생 전략을 도출하고 중앙에 제안하며, 중앙은 이를 심의하여 채택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도 법령과 제도는 존재한다.)


글로벌 경쟁 구조

→ 논의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곤 하지만, 한국의 지정학적 조건을 볼 때, 글로벌 구조를 무시하고 국내 전략을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섹터는 구분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용인 반도체 산단은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겠지만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결과라 생각한다. (미래의 평가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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