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말이야
스키장에 머물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끼는 것은, 모두가 보드를 사랑하는 이유는 바슷하지만 조금씩은 다르다는 것. 보드를 타는게 재밌어서, 멋진 영상을 남기고 싶어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처럼 다양한 이유로 모두 스노우보드를 애정한다. 나는 어떨까.
처음엔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멋진 자세로 슬로프를 누비는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그 이후에는 재밌게 보드를 타고 싶었다. 그렇게 재미를 좇다 크게 다친 후에는 어쩌면 아직 방황 중인 것 같다. 그래서 계속 물어대는 것이다. 왜 보드가 좋냐고.
보드가 싫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슬로프를 바라보는 것이 좋고 눈 위를 누비는 것도 좋다. 보드라는 스포츠도 좋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좋지만... 나를 그곳으로 이끄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뭐라 답할지 모르겠다.
어제 간만에 펀라이딩을 함께하며 진실로 자유로운 보딩을 내심 하고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제의 모두가 그곳에 너무 잘 녹아들어 있어서 마치 내가 붕 뜬 기분이 들게 했다. 보드로 설산을 누비는 아웃도어 브랜드의 영상도 한몫했다. 휘둘리기 싫은데,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 나의 라이딩이 재미없고 틀에 갇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몸을 던져 그 모든 곳을 누비고 싶은지도 모른다. 다시 다칠까봐 겁을 내고 있을 뿐. 겁없이 다쳤던 경험은 그것의 쓸모를 계속 일깨운다. 조심히 타야해.. 다치면 안돼... 하는 목소리가 라이딩 중에도 항상 가슴 한켠에 머문다. 그건 필요한 성찰일까 그저 나를 옥죄는 죄책감일까? 아직 잘 모르겠다.
팔에 박힌 철심이 나를 나약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지나간 일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쉬이 떨쳐내기 어렵다. 이제 몸의 일부가 된 금속 보조물은 조심성을 보이지 못한 그날과, 그럼에도 그곳을 떠나지 않은 미련함을 상기시킨다. 보드를 얼마나 즐겨도 될지 모르겠다. 얼마의 위험을 감수하고 얼마의 사랑을 쏟아도 되는 걸까. 사실 마음껏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그날 잃은 애정에 대한 핑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사실 가장 무섭다.
묵묵히 그곳에 갔다. 존재할 이유를 확인받고 싶어서. 상처를 덮고 싶어 무작정 천을 덧대어 대기만 한 것 같다. 뭐가 어울리지도 몰라 새로운 천을 보면 또 탐이 나고, 내가 가진 것은 가짜같기만 하다. 그래도,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를 감치다 보면 언젠가 볼만한 보자기가 되어있을 거라 믿어보고 싶다. 이것이 진짜인지도 마음이 식은지도 당장은 모르겠으니까.
다시 오늘을 꿰매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