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언제나 하얀 색이니까
크리스마스엔 스키장에 있고 싶지 않아 항상 서울로 갔었다. 가족이든, 친구든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얼굴을 비추었다. 그러다 3년째, 서울에 가도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을 때가 된 걸까? 시즌방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3년 동안 서울에서도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 없었다.
결국, 연애다.
보드를 타다 연애를 운운하는 이유는 처음이자 마지막 남자친구가 스노우보드를 좋아했기 때문인지, 오늘 함께 보딩한 많은 커플들 때문인지, 아니면 성의없는 플러팅 이후 잠수를 타버린 남성 때문인지 모르겠다.
다, 별로야. 라고 외치고 싶은 날이다.
시즌 초의 어색한 사람들 틈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해 야간보딩을 포기했다. 겨울에 만날 사람들에게 항상 밝고 살가운 모습만 보이자는 시즌 전의 다짐이 무색하게 내심 툴툴 대어 버렸다. 더는 그러기 싫었다. 차라리 혼자 우울하고 말지. 조용한 시즌방이 우울을 증폭시킨다면, 큰 우울과 함께 올 한해를 마저 잠식시켜버릴 심산이다.
나와 함께 할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꿈 같이 느껴진다. 누가 내 옆을 그렇게 오래 머물 수 있을까? 누구의 곁에 나는 그토록 오래 머물 수 있을까. 아득해서 어지럽다. 그저, 삶의 즐거움에 함께 웃어댈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세상의 애정할 만한 부분을 찾아 나설 용기가 있는 사람. 가능하다면 이 겨울세상도 꼭, 함께 애정하고 싶다.
막상 곁의 사람들에겐 어색함을 쉬이 거두지도 못한 채 거리를 두어버리면서, 언제나 바랄 뿐이다. 연애를 위한 행동은 너무 낯뜨겁게 느껴진다. 쟁취를 위한 노력을 비웃으면서 손 안에 쏙 들어오기를 바라다니, 이기적이기 짝이없지. 이리 오래 혼자로 남은 이유는 아마 그 이기심 때문이다.
여전히 (나의 더럽게 안일한 부분으로서,) 더 열심히 연애를 갈망하고프지는 않다. 그런 다분한 노력 없이도 언젠가 내곁에 나만의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삶을 사랑하다 보면 언젠가 분명 다른 진심과 마주할 수 있을테니까. '언젠가'라는 말이 가진 막연함에 내년 크리스마스도 혼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크리스마스도 어쩌면. 사실, 이 믿음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써 만든 방어기제에 그칠지도 모르니까.
그럼 아쉽게 만나지 못한 그의 몫까지 이 삶을 더 깊이 사랑할 수밖에. 남은 크리스마스 밤은 그 연습으로서, 멀리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슬로프 곁에서 잠드는 밤을 조용히 애정해 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