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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채 Feb 02. 2024

의뢰인을 위하는 것

의뢰인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는 어떻게 해야하나

의뢰인을 위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내가 어떻게 일하는게 의뢰인을 위한 것인지 고민이 될 때가 참 많다. 




소송을 하다보면 '아, 이거 지는 사건인데' 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때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서 의뢰인을 끌고 가는 변호사가 있는 반면 의뢰인에게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대처방법을 알려주는 변호사가 있다. 




무엇이 좋은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나는 현재까지는 후자의 방법이 옳다고 믿는다. 





한편 내가 맡은 사건 중에, 상대방 변호사님이 하는 방법이 과연 의뢰인에게 좋은 방법일까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 사건은 원고 측인 우리 쪽 승소가 유력한 건이었다. 




원고는 임대인인데 피고인 임차인이 무려 10개월 이상 월세를 연체했다. 원고는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피고를 위해 여러차례 월세를 깎아주기도 했지만 피고는 월세를 내다 안내다를 반복했고, 결국 원고가 건물을 매도하기 전 피고와의 임대차계약을 해지하였다. 




여기서 피고는 이미 너무 많이 쌓여버린 연체차임이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억울하였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간 빗물이 새서 가게 안에 있던 제품들이 다 망가졌다며 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그런데 문제는 반소를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그 입증이 쉽지 않다는 거다. 의뢰인이 원한다면 반소 제기를 위해 절차를 밟는 것이 변호사가 해야할 일이겠지만, 입증을 위해 감정 신청을 해야하는데, 그 감정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 반소 비용 등을 고려하면 과연 실익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빗물이 새서 제품이 망가졌다고 치더라도 쌓여버린 연체차임을 넘어서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상황이 낙관적이진 않다. 입증이 매우 어렵기도 할 것이고.





재판부에서도 비슷하게 피고 쪽에 권유했다. 




'피고, 의뢰인과 상의는 해봐야겠지만 원고가 청구취지를 감축해서 건물 인도만 청구한다면 피고도 반소를 포기하고 판결을 받는 것이 어떤가요?'




피고 변호사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였고, 우리는 연체차임은 나중에 정리하기로 한 뒤 우선 건물 인도만 빠르게 받자는 생각에 연체차임 청구를 빼고 건물 인도 청구만 했다.




그렇게 어찌저찌 '피고는 원고에게 건물 인도만 하라'는 취지의 화해권고가 내려졌다. 2주동안 원피고가 이의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확정되는 상황. 느긋하게 기다리던 중, 이의 기간을 하루 남겨놓고 피고가 전자소송 알림이 울렸다. 




'2024가단xxxx 사건 이의신청서 문건이 접수되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한숨이 나왔다. 피고에게도 이 소송이 빨리 끝나는게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변호사야 소송을 하는게 직업인 사람들이니 큰 상관이 없다만, 의뢰인들은 소송을 한다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빨리 소송을 끝내는 것 역시 의뢰인의 이익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소송에서 피고의 패소가 빤히 예상되기 때문에 반소 제기, 감정신청을 통해 소송비용을 날리기 보다는 깔끔하게 서로 변호사비용을 각자 부담하는것이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피고로서도 최선일 수 있다. 




'대체 왜? 피고 변호사는 무슨 생각으로 이의신청서를 넣은거지?'라는 생각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니 변호사님... 저번 변론기일때 저희 쪽에서 청구취지 감축하고 화해권고 결정 그대로 받은 뒤 소송 끝내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네 그땐 그렇게 얘기가 됐었는데, 피고가 손해배상 청구를 포기 못하겠다고 하셔서요.]




[그러면 반소 제기 및 감정 신청 하실건가요? 저희 쪽은 저번 변론기일에서 합의 된 대로 청구취지를 감축한건데 말씀이 달라지시면 저희도 다시 청구취지를 확장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예 다음 주 내에 감정 신청도 하고, 반소 제기도 할 예정입니다.]




피고 변호사의 답변에 허탈함이 몰려온다. 2번의 조정기일을 거쳐 화해권고를 받기까지 5개월이 넘게 걸렸는데, 청구취지를 감축하면서 일종의 양보를 하였음에도 또 피고 측의 이의 신청때문에 변론이 이어지게 됐다. (심지어 조정기일때는 우리가 연체차임을 없던 것으로 해주겠다는 제안도 했었다)




'변호사님, 피고한테 이익이 될거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묻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을 억누르고 좋게 좋게 전화를 마무리 했다. 





피고 변호사와 그 의뢰인(=피고)는 어떤 내용을 주고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나였다면. 내가 만약 피고 변호사였다면 어떻게 했을지 고민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감정 신청이나 반소제기를 권유하진 못했을 것이다. 어떤 물건을 감정하느냐에 따라 가액은 천차 만별이지만 기본적으로 감정에도 200~300만 원은 우습게 쓰인다. 반소를 제기했다가 패소하면 소송비용 부담이 더 커지기도 하고. 




'나라면 피고에게 가장 유리하게 적극적으로 합의를 이끌어서 최대한 원고로부터 금전적인 보상을 얻는 방법을 먼저 고려했겠지' 라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함부로 단언하기는 힘들었다. 정말로 피고가 강력히 원해서 피고 변호사도 어쩔수 없이 반소 제기에 나선 것일 수도 있으니까.  



다만 의뢰인이 고집을 부리더라도 난 내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하긴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원하시면 반소 제기는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지만 결코 유리하다고 답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됐다. 지금 나는 정말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의 법률적 조언을 해주고 있을까?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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