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며 사는 사람
누군가의 이유 혹은 꿈으로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어떠한 삶이 되는지 우리는 사실 잘 모른다. 아니 우습게도 그러한 삶을 이미 살고 있으나, 정확히는 알아 채지 못하며 살아간다. 그들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일까. 한 번도 진중하게 "너는 나의 꿈이며 이유란다"라는 문장을 못 들어서 일까. 그것도 아니면, 우리 스스로 무의식 중에 알지 않으려는 걸까. 부담감? 두려움? 그 어디쯤인가에 있을 사실상 불안한 감정 때문에.
얼마 전 친구의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의 인사를 보았다. 굵직한 신랑의 손이 여린 신부의 손을 감싸 쥐고 천천히 허리와 고개를 하객을 향해 숙였다. 그리곤 동시에 폭죽과 음악이 터져 나오면서 식은 마무리되었다. 한 시간 동안 이뤄진 짧은 예식으로 두 사람은 한 평생을 서로 곁에 머물 거란 약속을 그렇게 대신했다.
식의 목격은 불현듯, 나에게 살아온 삶과 살아내야 할 삶의 전 방향을 항해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꾸려 나가야 할 나의 삶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꿈을 위한 도전적 날들은 찰나로, 현실을 살기 위한 사실적인 날들이 지배적일 거라 생각된다. 그럼 그것들을 모두 아우룰 이유는 뭐가 있을까?
결혼식의 끝자락쯤, 큼지막한 분홍의 장미꽃을 한 손에 각각 쥔 어린아이 두 명이 신랑과 신부를 향해 뛰어가 전달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쩌면 "모든 날을 아우를 이유가 저 작은 아이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시대의 부부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최소한 우리 부모세대 까지는 저 작은 아이들이 모든 날의 이유가 된 존재들이었으니까.
자신이 일하고 자는 나날이 대부분이며, 제 아픔은 뒷전으로 둔 채 자식의 안위만 살피던 그들은 정말 미련한 순애보에 획일적인 사랑이었다.
강가를 건널 때 돌다리를 먼저 밟으며 앞서 걷던 아버지는 자신이 밟은 자리만 밟으며 따라오라 하셨다. 눈길을 걷는 내내 나의 신발에 눈 하나가 묻지 않도록 자신이 눌러 다져놓은 길만 밟고 오라 하셨다. 비 내리는 날에는 나의 왼쪽에 서서 우산의 그림자를 내 오른쪽 어깨까지 기울이며 씌우셨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날에는 겉옷을 벗어 내 어깨를 감싸셨다.
모든 행동에 보상 따위는 일체 바라지 않으셨다. 그런 모습 뒤에 늘 매일 밤을 허덕이며 돌아와 쫓기듯 잠들고, 다음 날 아침에 신음과 함께 일어나기를 한 평생 이어가셨음에도 일체 바라지 않으셨다.
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모습인가. 불평도 불만도 없이 그저 내 자식만을 바라보시는 모습은 위대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자신을 깎을 때로 깎아내리셨다.
"너는 나처럼 되지 마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칭찬받아 마땅한 존경받아 마땅한 삶이다. 피해도 불만도 주지도 받지도 않는 노력적인 삶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런 말을 버릇처럼 하셨다.
남들처럼 평탄한 길이 아닌 늘 돌부리가 넘치는 굽어진 길을 걷고, 남들이 기름진 걸로 배를 채울 때 허기만 달랬고, 밤은 누구보다 짧게 낮은 누구보다 길게 보내며, 고통은 늘 동행자처럼, 행복은 위안 정도로만, 칭찬과 위로는 무너지게 할 독이라 여기며 담지 않고 흘려보내셨지만, 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런 삶이 키워낸 나는 어느덧 꽤 나이가 들었다. 어느덧 그들이 나를 가졌던 나이가 되었다. 나의 곁에 나를 닮은 자식 한 명을 두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어버렸다. 먹고사는 문제가 생에 가장 큰 난제이고, 좇아야 할 꿈이 생에 가장 큰 목표가 되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다른 점은 아직 나는 이 삶에 그들과 같은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것뿐.
그들은 나에게 말했다.
"꿈은 변수가 많지만 이유는 불변한다. 배운 것도 누린 것도 부족한 삶이었으나, 살아보니 그렇더구나. 나의 이유는 최소한 너의 나이만큼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니 말이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꿈을 꾸며 살라 말씀하셨다. 힘들지도 버겁지도 않은 적당한 꿈을 좇고 살며 힘들지만, 행복이 대부분인 삶을 살라고 하셨다.
나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안 계시고,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안 계신다. 두 분 모두 자신을 이끌어 주시던 분들 중 반쪽을 잃으셨다. 가끔씩 취한 밤이면 그리운 이야기를 늘어놓으시는 그들은 부모가 자식을 이유로 살아가 듯, 부모를 이유로 살아오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의 전승자였다.
에픽하이의 '개화'라는 곡은 나를 키워 냈던 그들의 오랜 조언과 이야기들이 녹아든 노랫말이 가득하다. 이 노래를 들으며, 제 꿈과 삶만 보던 나는 부모의 삶의 이유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 그리곤 한 가지 답을 생각할 수 있었다. 앞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말했지만, 사실 나에게도 이미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노랫말을 말하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또한 나의 삶의 이유였다.
언젠가 이 별 거 없는 세상이 유일한 나의 그들을 앗아간다 생각하면 가슴이 내려앉는다. 그만한 고통은 세상 무엇과도 결줄 수 없으니, 아직 그들이 내 곁에 있는 이 삶은 힘든 삶이 아닌 듯하다. 보란 듯이 살아 내야 겠다. 이 삶이 나의 이유를 앗아가기 전에 아직은 호위적일 때, 내가 그들을 품으며 그들이 바라는 삶을 살아야겠다.
적당한 꿈과 적당한 시련 충분한 행복을 갖고.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8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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