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뱉음의 사이

by 전성배

'다'와 '덜' 사이에서 끝없이 배회하며 살아갈 존재일 뿐이라는 책 '한때 소중했던 것들'의 구절을 오랫동안 곱씹었다. 매번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켜 키보드로 화면에 자음과 모음을 찍어내는 동안 끝없이 날 부여잡았던 난제였기 때문이다. 덜 말해야 하는 것과 더 말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글을 완성해 가는 동안 수도 없이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했다. 많은 문장을 써내는 동안 진실로 전하려 했던 말은 담을 넘지 못하고 머리 끝만 보이기를 조금 더 많이 행한 듯하다. 반대로 아껴둔 탓에 전달되지 못한 말도 있었다.


이를 사전에 미리 알았다면, '덜'과 '더'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알고 대처할 수 있었다면 나는 보다 많은 이들에게 나의 말을 전할 수 있었을 테고, 전해진 말이 좀 더 많은 이들의 마음에 정착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을 도통 알 수 없어 늘 아쉬움을 가진 채 글의 끝자락을 마무리 지었다. 그래서 책 속의 구절을 오랫동안 간직했다기 보다는 매번 그런 순간을 맞닥뜨릴 때마다 한번 읽었던 그 문장이 피어 올랐다고 해야겠다.


사실, 글만이 아니라 삶을 채워가는 동안에 만난 사람들에게서도 절절히 드러났던 문장이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의 경계를 알아가는 일은 우리의 평생의 숙원이라는 것을 지난날 다른 글을 통해 전했던 적이 있었다. 그 경계를 알아야 타인과의 관계와 내가 타인에게 비칠 모습이 밝을 수 있으며, 이는 사회를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덕이라는 것을 덧붙였고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나의 가치관이다. 물론 이 가치관을 갖고 살면서도 여전히 쉽게 지키지 못하는 난제임을 인정한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침묵으로 대해야 할 것과 입을 열어 전해야 할 말을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침묵과 입을 열어 펼치는 속말은 모두 양면을 가졌다. 침묵으로써 지켜질 수 있는 평화가 있는 반면, 침묵으로 인해 오해와 불신이 생겨 흐트러지는 관계와 삶이 있기에 침묵은 마냥 환대받을 수 없는 자세다.


침묵으로 일관하며 '덜'말했던 관계는 서로를 다 알 수 없었다. 때때로 마음과 입의 언어는 숱한 사람들에 의해 각색되고 와전되는 설화처럼 동일한 결을 가지지 못하는데, 그런 언어조차 뱉어내지 않는 침묵은 오해를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반대로 다 말을 했더라도 마음과 입의 언어가 가진 큰 괴리감 탓에 우리는 또 다른 모습으로 서로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침묵으로 일관해야 하는가, 간솔하게 모든 걸 다 말해야 하는가 사이의 끝없는 딜레마에 우린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래서 이기주 작가 또한 책을 통해 우리가 '덜'과 '더'사이에서 배회할 뿐이라는 말로 침묵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때에 따라 말을 쓰고 아껴야 하는 것만이 침묵이라는 딜레마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비책일 것이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의 경계는 곧 침묵과 뱉음의 끝없는 타협일 것이다. 다만, 그로써 경험을 쌓아 언젠간 조율자로 미래를 예견할 수 있어야겠다.


경험만큼 든든한 건 없을 테니. 침묵과 뱉음의 끝없는 타협으로 희비를 오갔던 순간이 쌓이면 무수한 경우의 수를 낳을 테고, 우리는 그 수로 보다 효과적인 침묵과 발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언젠가 배회의 끝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유튜브 채널 : 시뷰

https://www.youtube.com/watch?v=DaU0vZrW_Yg&t=43s

와카레미치입니다. 삶과 사람의 틈새에 산란해 있는 사정을 추려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땅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수십억 인간의 삶이 되는 것에 경외심을 느껴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수필 연재와 만났던 농민의 작물을 독자에게 연결해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aq137ok@naver.com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쎄쎄쎄' 우리의 놀이는 아직도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