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遺品

by 전성배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산책 시간을 늘렸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만큼 근육을 쓰지 못하는 육체에 죄악을 느꼈기 때문이다. 평소 한 시간 남짓에 불과했던 산책 시간을 두세 시간까지 늘리고 나서야 죄악의 깊이가 약간이나마 메워진 듯했다. 내가 산책하는 장소와 루틴은 항상 같다. 집 근처에 있는 기다란 공원을 한 시간 반 가량 걷다가 근처 대형마트를 구경하며 필요한 것들을 구매해 돌아오는 패턴이다. 그리고 그날도 어김없이 공원을 돌다 대형마트에 도착했다. 식품 코너를 찍고 잡화 코너에 도착했을 때 마음에 드는 상품을 몇 개 발견해 담다 보니 의도치 않게 과쇼핑을 하고 말았다. 아침에 먹을 샐러드는 필수였지만, 그밖에 작은 트레이들과 몇 개의 필기도구는 쓸모없는 소비였다. 지금도 컴퓨터 옆에 쌓여 있기만 하는 그것들을 보노라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200개에 달하는 북다트와 이제 세 개나 되는 휴대폰 거치대. 사놓고 아직도 써본 적 없는 베이킹 소다와 필통, 텀블러도 마찬가지다.


일전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며 카페에 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방을 작업 공간으로 꾸몄다. 큰 책상 두 개와 그에 걸맞은 35인치의 와이드 모니터, 노트북 세로 거치대와 키보드를 사들이며 이왕 대청소도 함께 했다. 당장 쓸모가 없는 것들을 큰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 창고에 박아 두었고, 더 쓸모가 없는 것들은 과감히 버렸다. 그랬더니 5평 남짓한 내 방이 꽤나 널찍해지고 깨끗해졌다. 그때 나는 이 공간에 더 이상 채울 것은 없다고 장담하며 이 상태를 유지할 것을 다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삼개월이 지난 지금. 내 다짐은 보기 좋게 나의 손에 깨져버렸다. 하나 둘 물건을 들여놓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난잡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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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나는 결코 '미니멀'을 이룰 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채우기 위해 사는 사람인 양 공들여 치워 두었던 공간마저 다시 채웠으니 말이다. 이 공간에서 얼마나 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약 어떠한 불운으로 이 방 안에서 숨을 거둔다면 내 방을 정리할 사람은 혀끝을 찰게 분명하다. 한 번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먼지만 쌓인 물건이 그때가 되면 더 많을 테니까. 아끼다 똥으로 만드는 삶의 예시가 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마저 든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고인의 유품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특수 청소부의 에세이 <죽은 자의 집 청소>와 <시간이 멈춘 방>을 읽은 직후라 그런 생각으로 이어진 것 같다. 사람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는 생각 이상으로 거북할 정도의 덧없는 것들만 남는다. 고별을 함께 나눌 생인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외로워져 가는 사회 속 고립사가 늘어가는 현실에서는 꿈만 같은 이야기다. 고립사로 떠난 사람이 남기는 것은 뒤늦게 발견된 탓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녹아버린 육체와 세균, 악취, 체액, 재질을 따질 거 없이 사방에 배이는 죽음의 냄새뿐이니까. 그 안에서는 유품이라는 고인의 생애가 묻은 물건 조차 자산이 아닌 이상 쓸모를 인정받을 수 없다. 이는 가족이 있는 고인의 사정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고인의 유지를 이어 자산이 아닌 물건에도 의미를 부여할 후계자가 있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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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유품의 쓸모는 떠나는 이의 생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나만이 특별히 여기는 모든 것은 나의 생에 귀속된 운명 공동체다. 내가 떠나면 이들의 의미도 나와 함께 순장된다. 그럼 유품은 그저 껍데기일 뿐인 짐이다. 내가 짓지 못하는 나의 매듭을 대신 지어주는 이들에게 이를 떠넘기는 것은 하지 못할 짓이다.


먼지만 쌓여가는 나만의 물건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의 생에 묶여 순장될 운명에 놓인 일시적 목숨의 가엾은 존재들. 삶의 대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놓는 일도 연습을 해야겠다. 그 빈도를 조금씩 조금씩 늘려가며 언젠가 나도 고별을 해야 할 때, 나와 함께 묻힐 의미가 최대한 적도록. 그리하여 나를 매듭 지어줄 이들이 조금 더 평안하면 좋겠다.



"우리의 삶과 농산물 사이의 교점을 말하다"

농산물 에세이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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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 田性培

aq137ok@naver.com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에세이 / 2021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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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siview : 농산물農産物

@seongbae91 : 페이스북

《삶의 이면》 : 전자 수필집 / 2020 .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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