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에는 크리스마스와 생일,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승천의 날을 기다리는 이무기처럼 그 특별한 날을 일생의 몇 안 되는 기회라 삼으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바라던 것들을 토해냈다. 대부분 그 시절의 내가 가장 좋아하던 미니카와 건담, RC카 등의 장난감 종류였다. 즉,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었다. 아마도 오랫동안 감각할 수 있는 것이 좋겠다 생각한 모양이다. 가졌다는 성취감과 설렘, 다음 기회가 또 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한 참을성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어린 내게 있어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가장 좋았을 테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사주기 위해 애쓰셨다. 이리 바라는 것도 한때라며, 특별한 날에는 당신이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내가 갖고 싶다던 장난감을 사주셨고, 그것을 받아 좋아하는 나를 보기를 좋아하셨다. 그 시절의 내가 조금이라도 감사와 미안함을 알았다면 조금은 덜 고생하셨을 텐데. 속없게도 나는 나를 넘어서는 마음까지는 헤아리지를 못했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애어른'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제 마음을 넘어서는 것도 곧잘 어루만지던데 난 어찌 된 것이지.. 여하튼 덕분에 나는 바람과 성취를 끝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나는 바라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크리스마스는 물론이고 생일조차 바라는 거 없이, 그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관계와 일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무언가를 바라는 일이 줄어드니 성취감도 그에 비례해 줄었지만, 바라는 것이 없으니 이룰 것도 없을 터. 심면이 일렁이지 않아 사시사철 고요하니 되레 내게는 평화였다. 되도록 이 고요를 깨지 않기 위해 이제는 일부러라도 바라지 않는다. 아니 무심코 무언가를 바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바라는 것도 바람이라면 바람이겠다. 나는 바라고 싶지 않다. 바라기만 하다 끝나는 것이 내 삶에서 가장 아픈 일이었다.
바람은 자연히 기대를 낳고 기대는 간절함을 살찌운다. 간절함은 살이 찌고 찌다 종국에는 먹을 것이 없어졌을 때, 성취라는 무한의 식량으로 허기를 달해야 한다. 그러나 성취가 주어지지 않아 굶어 죽는 일이 잦았다. 피폐해지고 아파졌다. 그것이 너무도 자주 내게 찾아왔다.
언젠가는 한 번 아버지와 어머니께 물을까 했었다. 왜 내게 현실에 희소한 '성취'를 가르쳐 삶을 아프게 했느냐고. 삶의 물길은 바라다가 바라지 않는 곬으로 흘러가는 것이라 귀띔해주었다면, 어린 시절의 나는 가끔이라도 바라다 끝나는 아픔을, 살찐 간절함이 죽는 고통을 알려 달라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묻기를 포기했다. 설령 아버지와 내가 이 사실을 알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아버지는 성취를 흔한 것이라 가르칠 것이다. 그럼 나는 또 속없이 한 번 더 이를 믿고 바랄 것이다.
부모는 이기적이므로. 당신의 바람이 자식이 바라던 것을 이루는 것에 있으니까.
"우리의 삶과 농산물 사이의 교점을 말하다"
농산물 에세이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지음
전성배 田性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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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에세이 / 2021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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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면》 : 전자 수필집 / 2020 .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