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경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십 대 중반까지도 내가 여행이라고 말할 만한 것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1학년 때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것이 전부였다. 이십 년 넘게 발붙이고 사는 인천 땅에서 벗어난 건 그때까지만 해도 시골에 갈 때 외에는 없었다. 한 번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제주도에 갈 기회가 있었다. 나와 동년배라면 공감하겠다. 그맘때 고등학생들의 원탑 수학여행지가 바로 '제주도'였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격일로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어 고민 끝에 결국 가지 않는 것을 택한다. 시간이야 인정 많은 사장님 덕분에 얼마든지 뺄 수 있었지만, 그 시간만큼 벌지 못하는 아르바이트비가 아까웠다. 돈과 경험을 저울질하다 돈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때만 해도 돈을 옹호하는 선택이 나쁘지 않았음을 자축했다. 그로부터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그 얕은 생각에 붙잡혀 살 줄도 모르고 말이다.
스물일곱 살 무렵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자 다짐했던 날을 기억한다. 그전까지도 나름 시詩라고 하여 내가 아는 얄팍한 시어들을 덕지덕지 발라 써냈던 비문이 몇 편 있었지만, 이제는 '수필'을 써보고 싶었다. 일상의 경험을 얘기하며, 시보다는 조금 더 친절한 문체로 깨달음을 전했던 몇 권의 수필집이 나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짐 직후에 나는 먼저 절망해야 했다. 펜을 든 순간 비루한 내 경험은 글쓰기의 밑천조차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이야 일상의 모든 순간이 글이 될 수 있다 자부하며 글을 써야 한다 설파하지만, 당시의 내가 이를 어찌 안 단말인가. 좌절해야만 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돈과 맞바꾼 경험이 쓰라렸다.
사실 조금 더 빨리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 있기는 했었다. 과일 장사를 시작한 지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작은 병을 앓았던 해였다. 알 수 없는 피부염으로 얼마 동안 일을 쉬며 병원을 전전했다. 동네의 작은 병원을 시작으로 인천에서 유명한 길병원을 거쳐 끝내 인하대 병원까지 갔다. 그간 내 병명은 알레르기에서 홍반 루프스 의심 단계를 선고받았고, 한동안 스테로이드 연고와 약, 면역 억제제를 달고 살아야 했다. (그 후로는 3년째 증상이 없는 상태다.) 처음에는 가족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작은아버지의 회사도 마다하고 뛰어든 과일 장사인데, 느닷없이 병을 얻었다고 하면 아버지의 반응은 뻔했다. 당장 그만두고 작은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가라 던가, 조금 더 몸이 편한 일을 찾으라 말씀하셨을 테지. 그러나 역시 영원한 비밀은 없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자취방에 들이닥치셨다. 당장 일도 방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라 노발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대들며 화를 냈다. 어디 가서 이런 돈을 벌겠냐며 싫다고 발악했다. 아버지는 어린놈이 그놈에 돈돈 타령하며 어릴 때도 아르바이트한답시고 수학여행도 제대로 가지 않고, 지금은 남들 쉴 때 쉬지도 못 하는 일 따위를 하냐며 더 크게 화를 내셨다. 그러다 제풀에 지치셨을까? 갑자기 화를 멈추고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내 탓이다…."
얼마의 침묵이 지나고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아버지 입에서 힘없는 자책이 뱉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다음에는 사과를 하셨다. 아버지가 화를 내시면 다음 순서는 회유와 수긍, 인정 단계로 흘러야 하는 것이 예삿일인데, 순서에도 없던 사과가 불쑥 튀어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모든 불운과 집착에 의한 경험의 결핍이 모두 당신의 탓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때 나는 이 사실을 몰랐다. 아버지는 사과를 끝으로 어머니와 함께 자취방을 떠나셨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온 아버지의 문자에는 조금이라도 힘들거든 그때는 꼭 아비의 말에 따라 돌아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답문도 보내지 않고 심드렁했다.
그로부터 일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펜대를 쥐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글을 쓰기 위해 글감을 낚아 올리려 삶의 전반에 미끼를 던졌는데, 낚아 올릴 것이 없었다.
낚아 올리는 족족 빈 미끼를 보며 나는 그날 아버지의 죄책감을 곱씹어 보았다. 아버지의 말처럼 나의 돈에 대한 집착이 아버지에게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풍요로웠다면 나는 학창 시절 떠나는 수학여행에 관대했을 테고, 대학교에도 진학하여 친구들과 많은 곳을 다녔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조금 더 많은 경험과 일화가 생겼을 테고, 글을 쓰기 위해 삶의 호수에 미끼를 던졌을 때, 보다 다채로운 글감을 낚았을 것이 분명하다. 백 보 양보해 그날 아버지의 사과를 통해서라도 깨달았다면, 젊다는 것을 보증 삼아 더 분주하게 경험을 쌓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스물일곱에야 '경험'을 좀 써보려고 할 때 깨닫다니… 늦어도 한참 늦은 꼴이다.
하지만 서른하나가 된 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설파한다. 스물일곱 이후로 느즈막에 불이 붙은 경험 쌓기의 덕도 있지만, 생각보다 '경험'이라고 말할 것들이 특별함을 요하지 않는다는 걸 글을 쓰며 차츰 깨달아서다. 일상의 모든 언어가 글이 된다는 이기주 작가의 말은 사실이다. 경험은 현재가 과거가 될 때 붙는 별명이다. 모든 현재는 과거가 된다. 당신과 내가 나누는 이 순간의 대화도 시계 초침이 앞으로 움직이는 만큼 과거로 멀리멀리 떨어져 나가 '경험'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아버지는 나의 비루한 경험과 돈에 대한 집착이 당신 때문이라 말하지만, 지금은 감사한다. '경험'이라는 이름은 특별한 일화에 붙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되는 모든 현재에 붙는다는 걸 당신 덕분에 알았다.
"우리의 삶과 농산물 사이의 교점을 말하다"
농산물 에세이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지음
전성배 田性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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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에세이 / 2021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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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면》 : 전자 수필집 / 2020 .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