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어렸던 연인에게 내가 전한 마지막 말은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였다. 이슥한 새벽에 내가 전한 그 말을 뒤로 울먹이던 그녀는 이제껏 충실히 내 말을 들어주고 있다. 그보다 조금 더 오래전에는 허황만 늘어놓는 친구를 향해 '현실을 좀 직시해'라는 되지도 않는 충고를 뱉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나를 조금씩 멀리하더니 이내 연락을 끊었다. 비슷한 형편 속에 곧잘 꿈을 이야기하던 우리였는데. 내가 꽂았던 비수가 자못 아프고 불편했을 것이다.
한창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새로 들어온 어린 사원과 수개월간 함께 지낸 적이 있다. 처음 맞이하는 후임이라는 것이 신기하고 반가워 많은 애정을 쏟았었다. 차츰 업무에 관한 대화가 늘어날수록 선배로서 시정을 요구하는 날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때마다 고맙게도 나의 말을 따라주던 후배였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개인 사정으로 하루아침에 일을 그만두었고, 그 후로 나는 그와 만나지 못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근무하던 날 내가 한 말은 '내일은 실수하지 마'였다.
언젠가 나는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라는 박준 시인의 문장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의 말미에 죽음에 이르러 남기는 '유언'이 비단 '죽음'만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관계에서 마지막이 되는 말도 어떤 의미에서는 '유언'이라는 의미였다.
한동안 나는 시인의 문장을 곱씹었다. 그리고 그동안 만나고 헤어졌던 인연들에게 내가 남긴 말들을 떠올려 보았다. 허언과 실언 투성이었다.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남발했던 말들이 보기 좋게 유언으로 박제되었다. 나는 분명 나의 말과 함께 그들에게 씁쓸하고 탐탁하지 않은 인물로 영원히 남게 되었을 것이다.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다. 앞으로도 내가 남길 유언들이 만약 공증을 필요로 해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면, 그는 나의 '유언 내역'을 보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참 시답지 않은 말을 많이도 하셨네요."
내가 자신의 의뢰자인 것도 잊고 말이다.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삼십 년을 살아오며 깨달은 사실이다. 설령 사라진다 한들 모지고 아픈 말은 무병장수한다. 사라지는 쪽은 대체로 선한 말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사라지는 말을 남기며 살고 싶다. 모진 말을 남겨 영원히 아픈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이를 조금 더 빨리 깨달았다면, 그때 연인에게 전할 마지막 말을 '우리는 헤어지지만 행복하길 바랄게'로 바꿨을 것이다. 친구에게는 함께 꿈꾸는 사람으로서 동지애와 응원을 듬뿍 담은 말을 남겼을 테고, 후배에게는 무사히 오늘을 넘겨 고생했다는 위로와 내일도 힘내자는 격려를 남겼을 것이다.
이제라도 사라지는 말을 남기며 살고 싶다. 아픈 말과 함께 불편한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 바에는 따듯하고 선한 말과 함께 자주 까먹는 기억 속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싶다. 지난날 내가 그들에게 남겼던 아픈 유언들이 진심으로 병들어 죽길 바라는 밤이다.
"우리의 삶과 농산물 사이의 교점을 말하다"
농산물 에세이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지음
전성배 田性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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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에세이 / 2021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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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면》 : 전자 수필집 / 2020 .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