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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May 15. 2024

자취

내가 나를 나무라다.

이번에도 아주 조용한 곳에서 머물길 원했다. 그렇다고 번화가와 너무 멀지 않아서, 가끔은 변덕을 부려 소란스러운 곳에서 소음을 더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번화가와 분명 멀지 않으나 조금은 품을 들여야 갈 수 있는 곳이 내가 찾는 곳. 이 집은 그렇게 선택되었다.


몇 년 만의 자취일까. 셈을 해 보니 자그마치 7년이다. 3년 조금 넘게 혼자 살다 7년 전에 다시 본가로 들어갔다. 자취 3년의 시간은 과일가게에서 일할 때였다. 본가에서 가게까지 버스로 왕복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두 계절 동안 출퇴근 했었는데, 당시 사장님이 그런 내가 안쓰러워 집을 구해주셨다. 사실 이미 출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자취 이야기를 꺼내셨지만, 마치 빚을 지는 것 같아 한사코 거절했었다. 하지만 이젠 한계에 다다랐다. 아침 일찍 문을 열어 밤늦게 문을 닫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출퇴근까지 그렇게 하고 있으니 그 피로가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된 것이다.


결국 사장의 배려와 나의 고집으로 보증금 정도만 잠시 빌리는 것으로 하고, 작은 오피스텔에 월세로 들어갔다. 월 23만에 1층 첫 번째 호수가 나의 집이었다. 과일 장사꾼으로서의 삶 중 가장 굵직 한 시간들이 모두 그곳에 있다. 세 번의 사랑도.


그리고 지금은 그거에 배 이상 높은 월세로 자취를 다시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일 년 정도만 머물 생각이다. 결혼식장도 잡혔고, 이제는 나리와 신혼집을 구해야 하기에. 내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를 혼자만의 생활이라고 생각하면 일 년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조금은 설레기도 하다. 마치 첫 자취 때와 같이.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그마치 7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삶이 그때와 다르지 않아서. 이건 다시 생각해 보니 비참하다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은 사실 흐르지 않는 것이라고 해서, 인간의 세포는 끝없이 사라지고 생겨나길 반복한다고 해서, 나는 과거의 내가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습게도 나는 종종 과거의 내게 나무라 하며 보란 듯이 잘 살아 내리라 다짐한다. 네가 그렇게 살았기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앞으로는 너처럼 살지 않으리라, 내가 나를 부정하며 내가 나를 북돋는 것이다. 한때 아버지를 부정했듯이. 그가 이뤄 놓은 글과 써낸 글로 지금의 나를 꾸미면서 나무라 했다. 이 비참함에도 감사한 게 있는데,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혼내던 과거의 나와 평행을 그리고 있는 건 그 벌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자취도 다시 시작했다는 점, 그게 수개월 뒤에 시작되었고 이번에도 1층이라는 점, 7년 전 아침과 지금 아침에 차려 먹는 음식이 다르지 않다는 점 등등 모든 게 필연처럼 겹치고 있다. 심지어 그때도 집을 구하며 지금과 같은 욕심을 부렸다. 조용한 곳이면 좋겠다고, 그러면서도 번화가와는 멀지 않아서 누구와 언제든 술을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곳에 오고 어느덧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7년 전과 그럼에도 다른 것을 말하라면 지금은 글을 쓰고 있다. 들리는 소음도 조금 다르다. 그땐 주택가 안에서 이따금 사람의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사람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다. 그저 가끔씩 몸집 큰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소음의 전부. 뭐가 그리 바쁜지 노면을 빠르게 내달리는 통에 차량에서는 엔진 소리도 경적 소리도 하나 들리지 않는다. 큰 무언가가 노면을 빠르게 스칠 뿐이다. 묵직한 바람이 창틈을 비집는 소리와 꼭 닮았다.


젊은 내가 살던 모습과 나이 먹은 내가 사는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시시각각 서글퍼진다. 과거의 나를 욕하는 건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라, 실은 욕을 할 때마다 나는 더 비참해지고 슬퍼진다. 하지만 분명 달라진 점도 있다. 이제는 결혼을 이야기하고, 더 많은 글을 쓰고 있다. 가끔은 샐러드를 먹으며 건강을 들여다보고, 집에 함부로 여자를 들이지 않는다. 당장 내일보다는 더 먼 미래의 어느 날을 생각하며 더 많이 움직이고, 더 적게 누워 있는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해도 부정할 수 없는 차이이긴 하다. 어쩌면 앞으로 7년 뒤에도 나는 14년 전의 나와 7년 전의 나를 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더 많은 나이를 먹고 늙은 뒤라 잘 살아 보겠다는 다짐이 지금만큼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테니, 더 서러워서 더 큰 욕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 됐든 살아갈 것이란 걸 안다. 다시 삶을 반복하고, 취향을 고집하며 아주 작은 차이를 찾아내어 삶이 다르게 이어지고 있다고 위안을 삼을 것이다. 차가 달리는 소리가 창틈을 비집는 바람 소리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삶을 설명하며.


그때는 과거의 나를 나무라 하는 일을 그만두면 좋겠다. 그러려면 지금을 잘 살아야 할 것이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aq137ok@naver.com

https://litt.ly/aq137ok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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