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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Jun 28. 2024

화해하는 법

우리가 같은 속도로 서로를 잊을 수 없는 한

가끔 너와 싸울 때면 헤어지는 상상을 한다. 헤어진 직후부터 얼마의 시간이 지나 조금은 무감해지는 시절, 그것까지 지나가고 나면 남은 건 죽음밖에 없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인 삶을 사는 상상이다. 헤어지는 상상을 할 때면 나는 한 명분의 삶을 더 사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한 명분의 삶을 또 살았다.


그 세상은 지금으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 지 모른다. 그저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늙어 있고, 예나 지금이나 같은 음악을 들으며 같은 구간에서 가슴 벅차하다, 너를 생각한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치게 된 너, 나를 사랑하던 때의 너, 헤어지던 순간의 너. 혼자 머릿속으로 그리기를 얼마나 했을까, 드디어 우리는 마주친다. 아무런 접점도 없는 길 한복판에서. 때마침 나는 못나지 않은 모습이었고, 너는 시간이 여유로워 보였다. 우리는 잠시 함께 길을 걸으며 안부를 묻고, 과거를 회상한다.


한창 행복했던 시절과 한창 다투던 시절, 결혼도 꿈꿔보던 시절, 실제로 준비도 해 본 시절  등등 혼자 그릴 때보다 함께 그리니, 더 다채롭던 너를 떠올릴 수 있었다. 너는 생각보다 나를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나니 불현듯 깨닫는다. 우리가 주인공이었던 기억은 이제 우리를 주인공으로 두지 않는다는걸. 주인을 잃은 기억이 세상에 파문을 일으키며 서서히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를 아쉬워하는 건 오직 나뿐이었다. 말하는 내내 평안했던 너의 얼굴이 그 어떤 슬픈 이야기보다 더 슬프게 느껴졌다. 너는 나를 완전히 잊었다.


정인의 '미워요'라는 노래가 있다. 헤어진 두 사람이 어느 날 우연히 만나는 순간부터 노래는 시작된다. 노래는 같은 날 이별했으나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전 애인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는 아직 이별 중인 사람이다. 하지만 상대는 속도 없이,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일관한다. 웃으라며, 이제 그만 잊으라고, 아프지 말라고. 자기 가슴이 아픈 것까지 마음대로 하려는 그를, 부르는 이는 결국 미워하기로 한다. 그 미움은 애증이었다.


너와 헤어지는 상상을 할 때, 사실 너를 미워하는 시절도 상상한다. 나를 잊은 너의 모습이 떠오르면 어김없이 그 시절에 머물러 유독 더 긴 시간을 보낸다. 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가 같은 속도로 서로를 잊을 수 없는 한, 나는 매번 상상 속에서 널 미워한다. 그렇게 너를 미워하는 일까지 원 없이 다해 보고 나면, 현실에서 나는 너와의 싸움을 멈추고 싶어 진다. 여생을 온통 나를 잊은 너로 채우고 싶지 않아서. 미워요를 부르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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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aq137ok@naver.com

https://litt.ly/aq137ok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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