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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Sep 16. 2024

노스탤지어

음악이 마치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유난히 굵은 손처럼 느껴진다. 그 손은 자신이 재생되고 있는 동안, 누군가가 세계에 흘리는 행동을 붙잡는다. 그리하여 원래라면 막막히 떠내려 갔어야 할 행동은 음악에 붙잡힌 채 증발하지 않고 세계에 남는다. 영원히. 음악이 불러오는 노스탤지어는 착각이 아닐 것이다.


얼마 전에 술을 한잔했다. 특별할 것 없는 자리였다. 비슷한 멤버, 비슷한 메뉴, 비슷한 시간, 비슷한 술. 그래서 계속되었으면 하는 편안한 자리에서 우리들은 거나하게 취해가고 있었다. 그때 무슨 말을 하고 있던 중이었을까. 우리의 목소리 크기가 스스로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술기운이 올랐을 때, 가게에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노래가 나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사랑했을까> <시계> <바람인가요> <추억 사랑만큼> 등등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MP4로 듣던 노래가 순차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어떤 목소리를 좋아하게 되면, 그 목소리가 발음한 모든 노래를 듣는 게 버릇이었던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건 등하교 때마다 타던 13번 버스 안에서 매일 듣던 노래다.


그 시절의 음악에 빠진 나는 대화의 장에서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여럿이서 술을 마시면, 한두 사람 정도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시간은 계속된다. 나 하나쯤은 잠시 발을 빼도 괜찮은 것이다.


‘던전앤파이터’라는 게임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게임이다. 고학년이 되어 감에 따라 게임을 잘 안 하게 되어 그 이후의 소식은 잘 모르지만, 이 글을 쓰며 검색해 보니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게임이란다.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게임을 가장 왕성하게 했으니, 그 무렵 나의 던파 구력은 나름 알아줄 만했다. 레벨과 아이템의 등급 등으로 가늠한다면 볼품없는 수준이지만, 던파에서 보낸 시간과 애정으로 가늠하면 내 구력은 누구와 견줘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단 고등학교 1학년 여름까지에 한정한 자신감이다. 그해 늦여름에 내 체중은 60kg 밑으로 떨어졌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줄곧 초고도비만을 벗어나지 않던 내가 무려 반년에 수십 킬로그램을 감량했다. 시작은 좋아하게 된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는데, 말미에는 나의 만족으로 귀결된 다이어트였다. 살이 빠지고, 입어본 적 없는 청바지를 입으니 비로소 체감이 되었다. 나는 완전히 새사람이 됐다. 청바지는 아버지가 내게 처음 사 준 추리닝이 아닌 옷이었다. 당신도 자식에게 처음으로 청바지를 사줬으니, 다이어트 하나가 두 사람에게 새로운 삶을 안겨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후의 삶은 죄다 첫 경험이었다. 연애도 키스도 관계도 이별도 모두 그랬다. 좋아만 해 본 나를, 반대로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사는 삶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된 후의 삶은 ‘사회생활’이라는 범주 안에서 뱅뱅 도는 삶이다. 그러니 어떤 일을 하며 나이를 먹고, 중간중간 무엇으로 절망하고, 무엇으로 일어났는지는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성인의 삶은 똑같은 삶을 사는 서로가 상대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선망과 나만 비참하다는 착각 속에서 사는 것이기에. 사실 우리는 같고, 같은 울타리에 손을 얹고 직진하고 있음을 버젓이 보고도 모르는 삶이기에.


고향이란 단순히 나고 자란 곳을 명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확신은 없어도 자유롭던 울타리 밖을 살던 시절이, 내 취미, 내 몸 하나만 바꿔도 대단한 세상이 펼쳐졌던 그 시절이 또 다른 의미의 고향이 아닐까. 우리는 울타리 밖의 고향에서 울타리 안의 타지로 떠나온 것이다.


“성배야”


고향을 그리워하다 나를 부르는 나리의 목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그사이 술을 몇 잔 더 삼키고는 더 붉어진 얼굴로 아까 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곧 이 자리가 끝날 것임을 직감했다. 우리는 이제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헤어질 것이다. 다시 내일을 맞이하고, 울타리 안에 들어가 손을 얹고 걸어나갈 것이다. 요리를 하는 현수도 사람을 고치는 중연이도 아이를 가르치는 나의 여인도 모두가 똑같이.



과일 장사꾼을 위한 이야기 <내가 팔았던 계절>

https://litt.ly/aq137ok/sale/Zm0Fk1U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aq137ok@naver.com

https://litt.ly/aq137ok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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