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었다.

by 전성배

가을과 겨울, 두 계절을 건너며 투병하던 아버지가 떠났다. 반년의 투병은 하루아침에 시작됐다. 초저녁, 셀카 한 장을 남기고 수술실로 들어갔던 아버지는 다음날 새벽부터 스스로 호흡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정신은 멀쩡했지만 호흡도, 말도 제 뜻대로 할 수 없게 된 아버지의 육체는 하루가 다르게 스러져 갔다. 건장하던 남자의 육체는 빠르게 말라가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내장은 썩어갔다. 병원비는 며칠 만에 수천만 원을 넘기고, 모든 가족이 연명 치료를 거부했다. 결국 아버지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졌고, 이제 남은 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숨과 영양액을 밀어 넣는 일. 이 모든 일이 한 달도 안된 시간 동안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그 격랑의 시간 앞에 눈과 귀를 닫았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적이 없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따라오는 거라곤 한심함, 불안, 분노, 아쉬움 같은 것들이었다. 그는 일생을 단 한 순간도 가족에게 믿음을 준 적이 없었다. 인테리어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노가다꾼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다는 것쯤은 안다. 게으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원해서 쉬거나 원해서 일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늘 타의에 의해 일하고 굽신하며 사는 삶이었을 테니, 아버지가 안쓰러운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모진 시간을 살면서 한 순간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궁리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 본인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함께 사는 우리 눈에는 그랬다. 그저 정은 많고, 그 많은 정마저도 가족들 보단 타인에게 쓰던 사람. 자식에게 연락하는 용건이 안부보다는 돈을 빌려 달라는 얘기인 사람. 아비로서도 오빠로서도 전하는 모든 소식이 늘 안 좋은 사람. 휴대폰에 아버지의 이름이 뜨면 늘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들여다보는 작은 고모, 작은 아버지 그리고 누나를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했다. 미우나 고우나 자식이니까. 치가 떨리는 대부분의 세월에도 빛나던 호시절은 있었기에. 결혼을 한 달 앞둔 7월 말에 아버지가 누운 순간부터 이듬해 3월 돌아가시기까지, 내가 아버지를 본 날은 손에 꼽았다. 역시나 마음이 불편했으니까. 병약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도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그저 누나에게 얼마 안되는 돈을 보내며 병원비를 보탰다. 그리고 아버지가 떠나거든 부르라고, 그땐 함께 배웅하겠다고 자주 말했다.


3월 8일 아버지가 곧 떠나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요양병원에 도착했을 땐 아버지는 이미 떠난 뒤였다. 어머니와 누나는 눈물을 흘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 끝났다면서.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된 뒤, 말짱한 정신으로 그 고통을 견뎌야 했던 아버지는 괴로웠다. 아버지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나마 움직이던 오른손으로 계속 산소 호흡기를 떼려고 했으니까. 몇 번이나 스스로 삶을 끊으려고 했으니까. 온전한 정신으로 그 모든 걸 견뎌야 했던 아버지의 고통이 끝났다. 미우나 고우나 아버지라며, 남편이라며 곁을 지킨 누나와 어머니의 고통도 함께 끝났다.


그날은 나리의 생일 다음날, 누나는 웨딩 촬영을 몇 주 앞두고 있던 날, 모두가 주말을 다 보낸 일요일 저녁이었다.


조용한 장례 뒤, 집 근처에 있는 가족 공원 납골당에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 돌아온 게 화요일 오후였다. 한 사람분의 삶을 정리하는 데에는 고작 이틀이면 충분했다. 행정적 정리는 남은 우리가 해야 할 몫이었고, 그건 너무나 체계적이고 간단한 일들로 보였다. 다음날에 어머니와 누나를 다시 만났다. 아버지 명의로 된 어머니의 휴대폰을 다시 어머니 명의로 옮기는 일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구체적인 용건을 마치고 카페에 모여 앉았다. 계획에 대한 논의는 짧고 간결했고, 아버지에 대한 회상은 장황했다. 그리움보다는 시원함과 섭섭함이 주를 이뤘다. 자식으로서, 아내로서 했어야 할 도리는 안 했다는 사실 하나를 각자 가슴에 묻고서 우리는 입을 다문 고인에게 당신 때문에 서운했다고, 힘들었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꺼낸 이야기에 우리는 각자 딴 곳에 한참 시선을 두었다.


“아버지가 쓰러지기 한 달 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어. “너, 나 없으면 어떻게 살 거냐. 술 먹으면 누가 너 챙기냐.” 엄마는 “내가 알아서 하지. 별 얘기를 다 해”라고 했지. 아빠도 은연중에 알았던 게 아닐까 싶어. 배가 계속 아프다고 몇 달을 말했으니까. 입술 색은 죽고, 혈색도 안 좋았으니까. 괜히 안 좋은 생각이 났었던 게지. 아빠가 요양병원으로 옮긴 직후에 며칠은 말할 수 있었거든? 그때는 이렇게 말하더라. “요즘에 술 안 먹지? 술 먹지 마”라고. 그리고는 또 며칠 있다가 “너 집은 어떻게 해. 월세 못 내서 쫓겨날 텐데. 예전에 가좌동에 집을 봐뒀어. 월세 싸니까. 그곳으로 가. 거기서 어떻게든 살아”라고 했어. 그게 마지막이었어.”


숨겨둔 집이 있다는 것도 아니고 월세 집을 하나 봐뒀으니까, 그곳으로 가라니.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참 한심하고 우습다가도 불현듯 눈물이 났다. 너무 아버지다웠다. 각자 짝이 있는 나와 누나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없이 어머니만을 이야기했던 아버지. 우리는 알아서 잘 살아갈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반면 어머니는 그게 아니니까, 자기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다는 걱정에 그렇게 고통하는 순간에도 엄마를 헤아렸던 걸까.


투병할 때에는 두 계절을 넘기지 않았지만, 며느리의 생일은 넘기고, 모두가 주말을 무사히 마친 뒤에 눈 감았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돈이 아닌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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