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세계

전지적 외계인 시점

by 이정우 글

신호등이 한 번 깜빡이는 것처럼 아주 짧은 순간이 있다. 모두 그것을 찰나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짧은 순간이기에 신호등의 깜빡임과 같은 작은 경험들을 기다릴 수 있다. 결코 기다림은 짧은 것이 아닌데 경험하는 시간만을 기본값으로 해서 결정을 내린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신호등이 잠시 깜빡이는 것과 같은 순간들은 길다는 말이 한 번도 어울린 적이 없다. 짧다는 말에 다른 말을 덧붙여 시간의 길이를 더 줄여서 표현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 이런 빠른 것들이 좋다고 하는 말들이 많지만 신호등이 깜빡하며 제 몫을 다하고 사라지는 순간과 핸드폰 카메라가 순간을 찍고 금세 카메라에서 인터넷의 역할로 돌아가는 순간과 같은 찰나의 순간들은 중요한 것을 깜빡하는 순간인 것 같다. 빛과도 같은 신호와 함께 무언가를 내던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그랬고 언젠가는 일렁이던 마음이 그랬듯 꼭 쥐었던 걸 너무나 허무하게 내던져 버린다. 어쩌면 너무나 큰 기억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건 찰나의 순간밖에 없어서 꺼내보지 않을 기억들도 사진으로 찍어서 보관하고 추억하거나 따질 목표로 대화의 기록들을 모으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정확할 것 없이 나아가다가도 행복을 위해 순간에 몰두하게 되거나 한 사람씩에 집착하게 되면 사라졌던 아픔을 더 크게 앓는다. 내가 범접할 수 없던 찰나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어둠을 바라보며 살포시 내렸던 눈꺼풀을 들었을 때엔 눈을 감았다가 떠야 했다. 내가 어떤 아침을 맞아야 하는지 받아들이기 싫었고 그렇기에 아침의 어둠이 내 눈꺼풀을 덮었다. 깨어나고 녹여내는 과정이 너무나 피곤했다. 그곳엔 내가 원하지 않던 빛인 태양이 있었다. 태양은 안아주거나 녹여주는 특징을 가진 것이 아니었고 나의 세계 안의 따뜻함과는 너무나 달랐다. 점점 누군가의 세상을 받아들이고 살아는 냈지만 나의 세상임은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난 태양이 나를 비추는 것과는 상관없이 마음의 암막 커튼을 치고 있었고 그래서 태양이 아주 먼 곳으로 움직여도 내 하루의 밝음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옆을 차지한 일상의 빛으로 애써 시선을 돌리지 않았으며 태양이 차가워도 웃었지만 사람이 차가운 것에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누군가의 빛이 나에게 어둠이 되어오는 것을 참지 못한 것이다. 시도했기에 가능했던 아픔이 한걸음의 발자국이 되어서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나와 나를 듣는 사람들은 그것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고개를 돌렸을 때 상쾌하기도 했다. 밤을 보았을 때 주로 그랬다. 밤에는 태양이 없었고 나를 점점 기분 나쁘게 녹아들게 하는 태양의 더위 같은 것도 없었다. 선선함이 자리 잡아 있었고 밤의 분위기 속에서만 용서되는 질문들이 있었다. 질문도 나도 무례하지 않게 되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별 생각 없이 건넨 질문이 용기로 남을 수 있었다. 결국 내가 본 빛들은 진짜의 것들이 아니었지만 처음 추위를 알게 되었을 때처럼 나의 충격을 다독이려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여겨지는 것일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때엔 이미 한 명이 없었다. 주어진 시간 속에 나에게만 낯선 태엽이 늘어진 것 같았고 익숙하지 않음에 남을 탓했다. 돌아보면 서로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인 것이었다. 그래서 나의 회복만 늦어지고 재촉되었던 것이었고 함께한 몇 명이 너무 좋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나를 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밉지 않았다. 다른 탄생을 하고 다른 온기를 품은 사람들의 일상은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아도 따뜻해 보였다. 나보단 상대적으로 더 오래 봄을 경험했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한 번씩은 더 경험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차가움도 따뜻했고 누군가는 그 차가움이 멋있다며 반했다. 눈앞에 무언가가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차가움을 좋아할 수 있는 건 마음이 따뜻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얽히며 가까워진 사람들의 관계가 오래되지 않은 낙원 같았다. 태양도 새롭고 달도 새롭고 나도 새로운 사람이 되면 그 낙원이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어색해하거나 아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끼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새로운 것도 나에게는 금세 무너지며 반짝였다.

그럼에도 대화할 때엔 정상의 사람들과 같아질 수 있었다. 한계가 있는 부분들에 내가 함부로 다가볼 수 있는 낮은 진입선이 있다는 게 결정적으로 나를 무너지게 했다. 상대의 입은 모두 나만을 향하는 입꼬리여서 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채 위로만 움직였다. 그러나 나의 입은 달랐다. 불안하면 스스로의 입술을 깨물었고 웃는 순간마저 입꼬리는 쉽게 올라가지 않았다. 난 내뱉고 싶었던 말을 허공에 날렸다. 웃는 법도 알 수가 없겠다고. 마음에 담은 말은 따뜻한 말들이었는데 진심을 내뱉으려는 순간엔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어서 차마 사람다운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억했기에 아직 마음들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나는 겨우 다른 하늘에서 내려온 우울함 하나가 된다는 게 보통의 사람으로 보이려 껴입은 옷을 바라보게 했다. 옷보다는 나를 바라보아주길 바란 건 그래야 옷을 고를 때의 마음도 더 충분해질 수 있을 것을 마음으로는 이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은 커다란 마음이었지만 너무 휑했다. 그런 나를 오래도록 보여주고 싶었다. 아마도 처음에서 노을을 보는 시간까지는 미련히 준비만을 하고 나의 실패에 대해 되뇌이는 순간 정도가 되겠지만 마음이 지금보다 더 휑해져도 감당하겠다는 신중한 마음으로 내 표정의 일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조각난 기억들도 하나로 모으면 나라는 것까지도 나는 시간을 모아서 알려주고 싶었다. 마음이 시작하고 싶어도 시작되지 않는 시작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내가 준비하는 영원의 세계와 닮은 단어들만 나와도 대화 후의 뒷모습까지 행복해졌다. 그래서 이해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기쁘고 그러다가 안녕이라는 말만 나오면 자리를 피해버리고 그랬다. 나의 마음을 사랑하지 못하는 건 아픈 일이었다. 난 그런 운명을 타고난 것일 뿐이었지만 아픔이 커서 내가 거창한 것인줄로만 알았다. 찰나는 좋았다. 그게 찰나여서 싫었다.

사람들을 향해서는 여전히 빨간불이 켜져 있는데 도로 위의 차들은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차들은 사람보다 먼저 빨간불을 받았고 그건 사람의 안전을 위한 찰나의 배려였다. 나는 이런 찰나들이 모여 세상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길 바라고 있다. 힘들지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할 때에 유난히 힘이 드는 일들을 줄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영원할 줄 알았던 게 찰나가 되어도 나는 그것을 미워하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찰나로 떠올렸던 순간도 매일이 되던 때가 있었다. 꿈을 꾸었고 오래도록 그 꿈을 지켜갔다. 그럴 땐 지나가는 순간들이 너무 빠르게만 느껴졌다.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졌어도 느린 나를 빠른 시간 안에 구겨 넣으려 했으니 마음이 행복할 리가 없었다. 나를 한 번 구겨놓은 후에 마음이 온전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쩌면 지금의 큰 흔들림이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흔들리며 표정까지 흔들리지만 모든 시간이 순조롭기만 하면 과연 내가 웃었을까? 그래서 나는 지웠다고 생각한 것도 주워 담으며 새로운 것들에 대입시킨다. 오늘의 내가 마치 딴 세상 사람인 듯 눈에 불을 밝히지 않는 것도 그 새로움 때문이다. 애써서 새로워진 마음으로 아직도 어둠의 낯섦과 모든 질문이 밉지 않던 밤의 선선함을 기억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알아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