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최종학력은 피자스쿨!

by 이정우 글

출신 학교를 묻는 질문은 들어봤어도 학력을 묻는 질문은 잘 들어보지 못했다. 그것 자체로 이미 대학교는 다녀왔음을 예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출신학교를 묻는 질문에 답으로 중학교 이름이 나온다면 상대방의 표정은 굳이 찍어두지 않아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런 예상들이 있기에 나는 옷을 벗어던지듯 고등학교마저 포기해버렸다는 소개를 잘 하지 못했다. 말 한마디로 벌거벗겨진다는 건 세상이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이도 적었고 나이를 떼어놓고 봐도 겪은 경험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 적었지만 한 번의 물음은 내게 공기마저 끌어안게 만드는 것 같았고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지금의 친구들은 거의 대학생과 다를 바 없게 보여지기도 했다. 나와 같은 장소에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자신 있어 보일 수 있는 게 학교를 같이 겪었던 친구들이라면 나는 학교가 없는 곳으로 비켜주는 게 최선의 선택일 것 같다는 생각에 생전 하지 않던 배려를 해버렸다.


출신 학교를 묻는 질문은 자신의 신분을 묻는 질문과도 같다.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와 노력이 좌절되었을 땐 어떻게 행동했는지 정도를 학교의 이름 뒤에서 유추하는 것 같다. 이름은 용맹해도 그렇지 못하게 여겨지는 학교들과 이름이 그저 도시 이름이어서 떠받들어지는 학교가 있으니 사람들이 눈여겨보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동안 쌓인 숫자에 가까울 것이다. 다른 오래된 것들은 치워버려도 학교는 개교한지 오래될수록 전통 있는 학교라며 찬사를 보내니 아마 내일 서울대학교를 철거할 거라고 선포하면 서울대 대신 내가 철거될 것이다.


나는 학교마다 직접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었다. 견학을 했을 때 좋아보이는 학교를 다니고 싶어하는 편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러한 갖춰진 예민함들이 사라지고 학교 이외에도 자연스럽게 배움이 이뤄지는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 같은 물음들만이 남아있다. 배울 점이 없는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되었을 때는 지루함보다 두려움에 떨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난 배움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도 많은 학생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열정을 나조차도 알아채 주지 않으니 기준의 차가움을 만나자 금세 식어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배움과 먼 곳에 있다고 여겨지니 배움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생각은 잡념이 되고 잡념이 쌓인 것에 대한 자책을 했다. 그러다 완전히 힘이 빠져버렸고 원하던 결론이 그제서야 나왔다. 나는 싸우지 않는 배움을 원했다. 왜 몰랐는지와 그래도 알긴 했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잊어버려도 좋을 배움을 원했다. 나의 바램은 방식이 아니라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나 자신만 바뀐다고 해서 하이스쿨이 더 ‘하이(High)’해진다거나 조금 더 ‘스쿨(school)’에 적합해지지는 않았다. 굳이 숫자를 올리고 싶지도 않고 1에서 10을 나와 멀게 만들고 싶지도 않은 미련한 나는 숫자친화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숫자로 점수를 매긴다면 나를 뺀 모두가 경악하고 말 것이다. 숫자와 점수는 다르다고 얘기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어도 어쨌든 숫자는 점수 이외의 것에는 잘 쓰이지 않았다. 불친절한 것과 계산적인 것은 다른 것인데 어느 순간 말을 툭툭 던지는 사람이 수학천재의 기준이 되어있기도 했다. 생활에서 빈틈만큼 자주 숫자는 글자를 덧붙인 채로 사용되었다. 학교에서는 각자 걷고자 하는 길이 다르고 학생들이 걷고자 하는 길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았어도 공통의 최하치가 정해져 있었다. 정해져있는 만큼 그리로 가고 싶은 사람도 몇 명쯤은 있었을 것이다.


“1~3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6등급은 치킨을 튀기고, 7~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자극 글귀이다. 난 대부분의 자극 글귀들이 전혀 다른 방향의 사람을 자극하고 있다고 느낀다. 약간의 불안함을 동력 삼아 움직이기 위해 부산스럽게 움직여서 상대방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과도 같고 자극 한 번 확실히 받기 위해서 확성기에 대고 외치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그 한 마디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기를 자극했다. 모든 자극 글귀는 미래를 생각하게 하려는 핵심을 갖고 있고 미래는 언제 생각하든 텅 비어 있거나 추상적인 것으로 가득한 곳이기에 한 번에 내가 덜떨어진 존재인 것 같이 느껴져서 부지런하게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지금 이 자극 글귀를 보는 나는 미래가 불안해지지도 않고 평소처럼 분노하게 되지도 않는다. 1~3등급이 되어서 치킨을 시키겠다는 목표는 최대한 치킨의 세상에서 멀어지겠다는 포부인데 1등급 정도가 더 떨어지자마자 바로 고무장갑을 쥐더니 그 치킨 내가 튀기겠다고 한다. 과장된 것 같지만 하락에 대해 사람들은 늘 오버 액션을 한다. 파랑색 101호에서 분홍색 102호로 옮기는 것을 너무나 크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점수에 예민한지도 몰랐던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문제 4개 틀리고 40분 동안 울 때 나는 미래에 대한 조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다음부터는 수십명의 울상들을 우상으로 여겨줘야만 했다. 누군가 내게 점수로 시비를 걸었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경쟁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어차피 서로 차이가 나 봤자 10~100점 차이여서 기분 나빠할 정도는 아니라고 느꼈던 것 같다. 이토록 느긋해진 경쟁 바깥의 나는 수능시험도 지루하기만 해서 그저 주위에서 시키는 대로 울상들을 대한민국의 미래로 여겨주기만 했던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자존심 하나 때문에 응원피켓은 안 들겠다고 선언했을텐데 이제는 자존심이 두 개라서 기꺼이 응원피켓을 들어줄 것이다. 우연의 일치로 초성까지 같은 학교와 한국은 경쟁에서 빠진 사람에게 숨죽이는 것까지를 요구했었다. 그것 또한 시키는 대로 사람인 것치고는 숨을 적게 쉬어주고 있었는데 숨죽이라면서 응원은 해달라는 게 억울해서 7~9등급만 들어올 수 있는 피자집을 차릴 것이다. 피자를 만드는 것 또한 마음과 배움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그런 기반들을 피자스쿨에서 배우면 될 것 같다. 등록금은 얼마일지 궁금하다.


출처: 네이버카페


학교에서 점수의 성취감이 경쟁이었다면 이때까지 내가 정리 내린 경쟁은 입이 아닌 몸으로 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같은 것을 먹어도 다른 힘을 낼 수 있는 게 운동이었기에 나는 목표를 누군가를 넘어서는 것으로 두지 않았다. 넘어지거나 넘어뜨리지 않는 게 경쟁의 규칙이었고 경쟁에서 다치면 안 되는 사람은 남보다는 내가 되어야 하는 것 같았다. 출발선부터 도착점까지 나 또한 다치지 않고 다른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하자는 것이 나의 목표였고 그렇기에 그리 빨리 끝나는 경쟁은 없다고 생각했다. 학생일 때 억지로라도 해보려다가 실패했던 것은 경쟁이 아니라 전쟁이었던 것 같다. 유일하게 입으로 경쟁이 되는 것이 공부였고 어쨌든 그게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쟁이라 해도 좋은 결과는 늘 노력의 방향이 알맞은 사람에게 찾아갔다. 노력의 방향이 알맞았냐를 판가름하며 나를 판단하는 사람들은 나침반은 잘 안 가지고 다녔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수적으로나 경쟁적으로나 밀리는 내가 비켜주어야 하는 땅이 있다. 땀을 어떤 공간에서 흘리냐에 따라 인정의 차이가 크고 어떤 사람이 흘리냐에 따른 차이는 정말 천지차이인 것 같다. 그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별별 사람들이 모두 전문성을 띄고 있는데 피자스쿨만은 학교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경영고등학교, 공업고등학교, 바이오과학고등학교’가 무색해질만큼 피자를 당당하게 만들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가장 깊은 부족함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결핍이라는 생각이 든다. 표현에 동조함으로써 일자리 수천가지를 모두 막아버렸으니 앞으로 피자를 먹을 날은 많아도 피자를 직접 만들고 배달해볼 완벽한 날은 경험해보지 못할 것이다. 평범해지려 노력해도 평범해지지 않는 마음이 있고 매일 떨게 되는 두려움 속에서만 벗어나면 금세 평범해질 사람들이 널렸다. 그렇기에 보통이라는 것은 더 이상 어떤 자격도 되지 못하고 어떤 이의 권리로도 남아있지 않다. 보통이 아닌 사람이 보통이 된다고 해서 딱딱한 친근함을 가지게 된다거나 그간 품고 있던 모든 걱정들이 서사가 되어 하늘을 떠다니는 일 자체가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런 것은 일보다는 기적에 가깝다. 그리고 보통으로 여겨지든 나로부터 비적합하게 여겨지든 모두에게 기적인 게 두 가지 있다. 활발한 성격을 가진 사람과 소심한 성격을 가진 사람 모두 음식을 전하는 것으로 돈을 번다는 것에는 똑같은 수줍음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거부반응이고 아무런 물질도 없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은 이상반응이나 다름없다. 보통이 아니라는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평범함을 가지고 있기에 음식을 직접 만들어 전할 정도의 용기를 쓰지 못한다면 평범하기에 안정적인 날은 존재할 수 없다. 자주 존재하지 않기에 피자를 만드는 날은 완벽한 날로 쌓여간다.


‘나는 1~30년 뒤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여러분의 달력이 다음 달에 맞춰져 있는 것을 보고 웃었다.’ 이 말에 기분 나빠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은 내 개성을 찾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여러분의 노력은 자주 박수 받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중에서 정말 기립박수를 받을만한 것도 있겠지만 기립박수의 여운은 정말 크니 받은 지 몇 분만에 사람 한 명을 피자 박스 접듯이 접어버리지 않았을까? 감히 단정 짓진 않겠지만 나만은 그 자리에서 박수 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학교에서 떨어져 나가고 경쟁에서 얻은 한 마디가 박힌 삶이라고 해서 모두가 성장을 멈추진 않는다. 누군가 그토록 벌벌 떠는 직업에 대수롭지 않은 사람도 있고 힘이나 땀에 비위가 약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사람들은 끼리끼리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지금과 같이 다수라면 나는 대수로워 볼 수가 없다. 땀은 두려울 때 흐르고 소수가 된 사람들에게 두려운 것은 혼자가 된 현실이 아니라 다수가 된 사람들이 다그닥다그닥 달려오는 것이다. 분업하지 않는 삶의 현장은 현장으로 인정되지 않는 듯하다. 체험 삶의 현장에는 그런 현장이 더 많이 나오던데···.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피자를 내 손으로 만들어 배달해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출처: 구글

-나만의 자극글귀-

“피자 박스는 구겨지지 않고 피자는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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