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첫 시간

하루의 첫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는 말에 대한 이야기

by 이정우 글

하루의 첫 시간을 잘 보내야 그 하루 또한 잘 보낸다는 의학적인 이야기가 있다. 논리적이지만 누군가의 입을 타고 나온 이야기이다보니 아직 이야기가 마무리되지는 않은 듯하다. 어떤 날엔 내가 하루의 첫 시간에 달리기를 해야 하루 또한 나를 따라 달려줄 것 같아서 부지런하게 밖으로 나갔었다. 그 날을 모범적인 날로 보았는지 나는 그런 날들을 무수히 많이 보냈다. 그리고 그런 날들은 서양에서 볼 수 있는 한 데 묶인 소시지들처럼 뭉뚱그려져서 노력은 많이 했지만 기억에 남는 날은 별로 없게 되었다.


어떤 일이 버겁든 뛰어가는 방법은 의심하는 것이 더 어려운 방법이다. 그러나 아침엔 더욱 쭉 뻗어있고 텅 비어있기까지 한 한가한 길들을 보면 생각보다 뛰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운동복을 차려입은 사람보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다. 아마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은 하루의 첫 시간은 나갈 준비를 하거나 직접 이동을 하며 보낼 것이다. 학생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나는 학생이었을 땐 매일을 준비만 하며 보내는 것 같다고 느꼈었다. 주말이면 사라지던 의심의 기운은 하루의 첫 시간을 분주히 준비하자마자 다시 찾아왔다.

그런 경험과 비슷하게 이제는 하루의 첫 시간을 뛰거나 걷고 나면 여유가 생기는 시간마다 다시금 나가서 걷게 된다. 하루종일 뛰고 싶어서 안달이 난 윗 층 아이 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뛰는 생활을 하기 위해선 정각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몇 분에 한 번씩 시계를 확인했고 운동도 거르며 달리기를 했다. 가장 많이 뛰었던 날에는 마음에 쥐가 크게 났는지 다섯 번을 나가기도 했다. 하루의 첫 시간을 신중히 채운다고 해서 그 하루가 잘 보내지는 건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하루의 첫 시간에 했던 행동을 하루종일 반복하는 것이 우리네 하루인 것 같다.

여행을 가면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조식을 먹게 될 때가 많은데 그럴 땐 아침을 먹어야 할 시간이 빠릿하게 다가와서 잠과 사투를 벌이다 아침을 느긋하게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모든 여행은 당일의 돈을 아끼기 위한 아침과 같을 때가 많다. 여행에서 돈을 아낀다는 건 돈을 쓰는 것과도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여행에서는 숙소의 화장실 하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뜯어보지 않아도 괜찮은 숙소들과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화장실들이 많았다. 다른 이가 남기고 간 흔적까지 마음에 새겨보려 구경을 떠날 때면 돌아다니는 시간에는 시간에 쫓기듯 지내고 구경에서 돌아온 저녁은 아침을 먹을 때처럼 천천히 보낸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낮의 구경보다는 아침과 저녁의 노닥거림이다. 왜 그렇게 여행에서 급했나를 생각해보면 하루 치의 기억을 빈틈없이 찍어내느라 바빴던 것 같다. 바빠도 나를 챙겼던 여행에서의 하루처럼 한 시간만 행복해도 내 하루는 행복한 하루가 되어있고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다.

내가 처음으로 나의 시간을 계획해보았던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아마 나와 나이가 비슷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때쯤 시간 계획을 시작했을 것이다. 몇몇 아이들의 시간 계획은 철저하기까지했다. 나는 하루의 절반을 자유시간으로 그려놓았고 그 아이들은 하루의 세 시간 공부하고 자유시간 (초콜릿) 하나 얻어먹는 식이었다. 하루 중 절반을 자유시간으로 그린 나의 계획표에는 그래도 자유시간을 최대한 다른 시간대로 떨어뜨려놓으려는 노력까지 담겨서 보는 선생님마다 웃었고 나도 웃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자연스럽게 그 계획을 지키고 있다. 그때의 난 쉬는 시간과 자유시간을 따로 그렸었고 자유시간은 쉬는 시간의 두 배 정도는 되는 길이로 그렸었다. 겨우 9살이 된 너무 어린 아이이자 사실 지금의 나나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사람 옆에 대어보아도 거기서 거기인 그 아이는 생각보다 꽤 철학적인 뜻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추억은 깊은데 기억은 적어서 많은 것을 확대해석하게 된 지금의 나는 쉬는시간도 자유시간도 그저 시간을 비워만 놓은 채로 보내게 된다. 내 자유는 떡잎부터 남달랐는데 그 좋은 시작이 전부를 책임져주진 않는 걸 보니 하루의 첫 시간에 대한 의심도 많이 생기게 된다.

결국엔 하루를 잘 보내려면 첫 시간도, 마지막 시간도 잘 보내야 한다. 각자의 기준이 다를테니 누군가는 8시간을 꼭 자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새벽만은 확보해야 한다고 얘기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생각할 때쯤이 되어서야 나를 위한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도 하루의 첫 시간을 잘 보내라는 것이 그 첫 시간을 나를 위해 사용하라는 뜻인 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걸어도 보고 뛰어도 보았지만 넘어질 때까지 뛰진 않아서 그런지 어쨌든 나의 하루는 잘 지탱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루의 첫 시간을 잘 보내라는 것은 나를 위해 안전망 정도를 만들라는 뜻일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 10분 정도 핸드폰 보는 건 괜찮지만 일어나서 첫 10분에 핸드폰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뇌 건강에 안 좋은 행동이라고 한다. 그래서 독자님들도 이 글을 읽으실 때 되도록 아침은 피하셨으면 좋겠다. 부지런히 노력하는 시간이 아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에 읽어주셨으면 좋을 듯하다. 나 또한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괜히 거울도 보지 못한 상태로 남의 세상을 엿봐서 자책하는 아침들을 보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끔씩은 내 건강이 아닌 뇌 건강에 신경 써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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