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꿈이 찾아온다는 건

by 이정우 글

어느 날의 꿈에서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실제로도 느꼈던 감정이었고 내가 가장 싫어하던 해의 공기도 담겨 있었다. 꿈이 현실 같아서 슬픈 꿈이란 걸 알면서도 그 속의 주인공인 나는 그곳에만 집중했다. 깨고 나서는 사람의 표정이 기억에 남지만 꿈보다 일상이 중요해졌을 때는 꿈에 어떻게 내가 지나온 장소들이 그토록 구체적으로 담겼는지 감탄해보게 된다. 사실 그 꿈에서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나왔고 나보다 그 사람들이 더 많은 말을 하며 순간에 환멸이 날 만큼 새로운 표정까지 지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고 상대방은 여럿이라는 것에서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꿈은 하나의 예술작품이고 형식을 빌리자면 영화에 가깝다. 그리고 그 꿈 속의 주인공이 느끼는 외로움은 너무나 크다. 사람들이 차례대로 찾아왔다. 작년에 마지막으로 본 사람도 있었고 다시 만나면 반가울 것 같은 이유도 없이 멀어진 사람들도 있었다. 한때는 모두 친해지고 싶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꿈에서 내게 보여준 태도는 모질었고 그래서 답답해졌다. 나는 꿈 속에서도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것 같았다. 모두들 한 번쯤은 짝짓기를 경험했을 것이다. 사람에게 짝짓기라는 표현이 어색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서로가 서로를 찾아가 무리를 이루는 시간을 그 누구도 명확하게 표현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인원을 나눠야 할 때에 사람들에게 그만큼 편한 방법은 없다. 실제로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성별이나 번호와 같은 특징을 이용하여 반은 뒤돌아있게 하고 반은 앞으로의 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텁텁하게 다가가게 하는 것이다. 취향을 배려해주는 반반팝콘과도 같은 방법이다. 그래서 한쪽이 기다리고 한쪽이 선택하는 방법은 선택하는 한쪽의 취향을 고려해주기 위한 방법이다.


꿈에서의 나는 선택하는 한쪽이 되었다. 한 시간동안 같이 걷고 싶은 한 사람 앞에 서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뛰어가는 사람이 많아야 하고 난 느리게 걸어 남은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데, 그게 맞는 것이었는데 모두 생각에 잠긴 듯 천천히 걸었다. 나도 천천히 걸어 눈에 띄는 곳에 멈춰섰다. 그제서야 상대방의 얼굴이 보였다. 꿈 속에서도 각자 맡은 배역이 정해져 있을테니 엑스트라 배우를 그리 많이 불러오진 않을 것이다. 낮은 제작비에 가성비가 좋은 것도 아닌 내 꿈이어서 그런지 좋은 편집효과 하나 없이 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정해진 듯 걸어가서 정해진 아이 앞에 섰고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는데 진짜 어디서 많이 본 아이였다. 2년동안 학교를 같이 다녔고 세 명 이상으로 있을 땐 대화도 섞었었다. 나에게 실망을 표할 만큼 자신감을 갖추지도 나와 친하지도 않은 아이였는데 딱 마주한 찰나에만 느낄 수 있는 실망의 표정을 보았다. 딱 이렇게만 끝나는 추상적인 꿈을 많이 꾸었어서 이번에도 금방 끝날 줄 알았지만 바로 다음 씬으로 넘어갔다. 꿈인데 너무 생생했고 내가 발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아직 잠이 부족했다.


다음 씬에서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났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고 얼굴은 뚜렷한 영업사원 같이 생긴 친구였다. 그 친구와는 왠지 더 오래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내가 첫 번째 씬에 많이 몰입해있었나보다. 그 친구에게 명함을 건넬 틈도 안 주고 인사만 하면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감독의 의도를 뒤늦게 알아버린 나는 분노의 열연을 펼쳤다. 내 목에 교통카드가 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은근히 어딘가에 있을 카메라를 의식하며 그 교통카드를 던졌다. 게다가 던진 방향에는 유리나 화분 같은 것도 없었다. 뭔가 깨지는 소리에 나의 열연이 NG로 취급받게 되는 일은 생길 수가 없었다. 이제라도 자랑을 좀 하자면 행동에서 나오는 것보단 표정에서 나오는 감정을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꿈에서 깨어난 지금도 그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고 있다. 스토리가 조금만 더 정리된 상태였으면 몇 분짜리 단편 꿈으로 제작되지 않고 몇 시간짜리 장편영화로 제작되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만큼 좋은 장면인데 설명도 그만큼 많이 필요한 장면이다. 단 몇 분이 보여주는 감정이 내겐 더 쉽다. 장면 안에는 그때로 돌아가야만 느껴볼 수 있는 망설임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장면을 잘 이해하는 나를 보니 연기를 할 걸 그랬나보다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 장면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더 신나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보자. 이번엔 우연히 나와 같은 옷을 입었던 여느 날의 친구와 그 친구와 나를 찍어줬던 여느 날의 선생님이 찾아왔다. 나는 이 씬에서는 첫 번째 씬에서와 같이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꿈의 감독이 당시 상황과는 다른 장면으로 억지 감동을 만들어내려 해서 연기할 맛이 안 났다. 그냥 화나 한 번 더 내볼까 하고 생각도 했지만 평범한 장면이 있기에 열연을 펼치는 장면이 명장면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는 사진을 찍고 마는 장면이 상심에 빠진 내게 같이 걷자고 찾아오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원작에서 큰 영감을 얻었을 감독의 시간은 행복해 보여서 부럽지만 대사는 너무 별로였다. “그냥 우리랑 같이 걷자” 나의 분노의 열연과 순간의 실망까지 담아낼 줄 아는 감독님이 절정 단계에 이런 장면을 추가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어떤 장면이든 열연하기로 했다. 다음 연기를 준비하고 있는데 꿈이 그 상태로 끝나버렸다. 나는 결말이 정말 마지막일 것 같지는 않아서 마음을 아꼈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꿈에서도 그랬다. 경험이 많을수록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 사람 앞에 경험 탓은 하지 않기로 한다. 아무튼 같이 걷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니 이 꿈의 후속편에서는 같이 걸으며 여러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이 장면은 두고두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의 장면이다. 어떤 날엔 땀을 흘릴 정도로 긴 꿈을 꿔서 꿈에도 감동의 결말이 있게 하고 싶다.


그렇게 꿈은 끝났다. 아직 연기를 더 하고 싶었지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꿈도 끝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나는 연기의 여운을 글을 쓰는 데에 썼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내려간 입꼬리로 웃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는 질투의 장면도 있었다. 최선을 다해 째려봤다. 그 장면도 명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았었나보다. 내면에 질투가 많은 사람이다. 새벽에 꾸는 꿈은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가장 슬픈 것만 남게 한다고 내가 정의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흘러가게 두면 남게 되는 것은 차기작을 기대하게 하는 나의 명연기와 옆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 준 나의 친구들, 그리고 좀 더 좋은 작품을 원하기에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이 꿈의 감독이다.


꾸준히 쓰기 위해서는 힘듦밖에 쓸 수 없고 매일을 살기에 힘듦이 있는 것처럼 내가 눈물을 참았거나 눈물이 다 말라버려서 울 수도 없었던 순간들은 꿈이 되어 나에게 찾아온다. 꿈으로 찾아온다는 건 그만큼 내가 그 순간들을 많이 생각했다는 뜻일 것이다. 나쁜 꿈이 찾아온다는 건 좋은 꿈을 생각하라는 신호이다. 한 시간동안 같이 걸을 사람 앞에 서라는 말엔 굉장히 설레했었지만 꿈 속의 나는 아무런 기대 없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좋은 꿈이다. 기억 그대로를 나에게 선물해주지 못해서. 모든 상황을 잘 재연해낸 꿈은 열연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바뀐 상황 속의 나를 무력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좋은 꿈, 완벽한 꿈은 내게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가장 슬픈 것만 남게 한다. 더 나쁜 꿈들을 꾸고 싶다. 나는 꿈 속의 화가 나 있었던 나와 같이 이제는 이뤄질 수 없는 것들을 기대하는 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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