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말 많은 소수에 의해서 움직인다

당선이 되어도 안 지켰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드는 공약들이 있다

by 이정우 글

벌써 3월이 왔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는데 바로 오늘 역사적인 선거가 치러진다. 역대의 대통령들을 한 명씩 들여다보면 업적과는 상관없이 선거만은 뚜렷한 기록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유세차들은 지쳤는지 일찍부터 지하철역 근처를 비워주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관심도 다시 대선이 아닌 다른 곳으로 빠르게 향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만큼 선거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는 시기가 빨랐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고민의 시간은 짧다는 이유만으로 날카로운 말들만 오갈 때 했던 결정을 자신의 확실한 결정으로 믿을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크다. 아마 당선된 미래의 대통령은 검증된 욕받이의 길을 걷고 아쉽게 낙선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을 둘러싼 비판들을 모두 씻어내고 앞으로는 정리된 목소리만을 내며 국민의 앞에 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대통령은 그만큼 잘해도 무거울 수밖에 없는 자리이다. 선택은 무겁지만 특정인을 비하한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내가 그 특정인이나 집단을 비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지지하는 후보여도 그 후보가 의심받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와 나는 원래도 그리 가깝지 않고 이 선거가 끝나면 굳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도 멀어질 것이다. 아마도 유권자들은 유세차가 떠나기 전부터 미리 마음을 움직이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그 방향은 어느 후보에게만 가까운 방향이 아닌 정치의 반대편으로 흐르고 있을 것이다.

지지하는 후보가 있는 정당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어쩌면 자신의 기대로 인해 5년 후엔 그 정당을 가장 싫어하게 될 수도 있겠다. 그건 정당의 잘못보다는 보는 각도가 기울어있기 때문이긴 할 것이다. 지나치듯 나의 나라와 반대편으로 옮겨선 그들을 생각하며 옆모습만을 바라보려 한다. 뒷모습이나 정면이 정의로워 보인다거나 잘생겨 보이는 사람도 옆모습은 평범하거나 실제보다 못생겨 보인다. 세상의 간절함들을 끌어모으는 옆모습은 없고 최근에 일어난 정치적인 실수들은 모두 각자의 옆모습이 일으킨 일일 것이다. 옆모습을 쳐다보면 상대 진영엔 한 표가 늘어난다. 후보는 10명이 넘는데 선택지는 2개로만 좁혀지기 때문이다. 또 작은 규모의 정당들은 당원들이 후원하는 돈의 액수에만 맞는 정치인에 머물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인재들이 많은데 대학 이름을 보고 패스해버리는 태도를 소수의 정치인들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개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한 가지뿐이다. 응원의 뜻으로만 보내고 싶은 한 표는 잉크가 크게 번져 무효표가 된 표보다도 못하게 여겨진다. 정치에서 양당이 정치의 형태 자체를 차지하게 된 것은 개인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시선을 좁혀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높아진 수준만큼 잘하겠다고 얘기하지만 국민의 성장은 정치적인 성장 밑으로 갇혀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탈출구를 찾아가려 하지 않는 지지자가 생기고 단합이 잘 되면 여당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다수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합리적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미래의 세상에서 과거를 더 많이 보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쓰는 물건은 같아도 문화와 정치는 때에 따라 성장하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꿈의 집인 청와대에 드러누워보려 변화를 주도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일수록 집에서도 안 자던 늦잠을 청와대에선 잘 확률이 높다.


지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은 분명히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할 수가 없다. 확실한 반대파가 있고 또 확실한 지지자들이 있다. 반대파의 사람들은 지지자들을 보며 자신이 가진 불만의 범위를 더욱 넓혀간다. 분명 여당이라고 하면 왠지 비굴하진 않고 정치적인 여유를 가지기도 할 것 같다는 예상이 있는데 살얼음판 같은 정치의 공간에서 한 번이라도 더 소파에 앉는 정도의 여유만이 여당에게 주어지는 것 같다. 전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지 않았어도 현직 대통령에서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훨씬 불리해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당이 여유를 즐겨 쓰면 어떻게 되는지를 몸소 보여준 경우이기도 하다. 어떤 대통령이든 당선 뒤에도 전혀 유리해지지 못하고 퇴임한 뒤에는 한때 유리했다는 이미지가 있어 가만히 있음에 대한 공격을 받기도 한다. 물론 이때까지는 실제로 잘못한 것이 있어서 그런 경우가 더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19대 대선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리에 대한 반감으로 오히려 원래 새누리당(현재 국민의 힘)을 지지하던 사람들의 1년도 안 갈 예정인 지지를 끌어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예 반대 진영의 정치인을 지지하던 사람이 정반대의 정치인에게 투표했다는 것을 보면 한 장의 투표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투표하는 대상의 지지자도 아니고 투표하지 않는 사람의 지지자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감은 마음이 옮겨간 것보단 원래의 마음이 얇았던 것에 가깝다. 그러한 특성을 가진 유권자들의 의견은 선거 때가 아닌 선거 이후에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실수조차도 문제가 되는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고 그 중 몇은 탄핵이나 변화만이 답이 아니란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생각의 변화마저도 새로운 한 쪽의 환영만 겨우 끌어올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선거는 극단적인 특징들만을 가지고 치러진다. 너무 오랜 기간동안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항의하기엔 뚜렷하게 듣고 싶은 선언들이 있고 너무 오랜 기간동안 정치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것을 반복하며 비난하고 싶다가도 그 장악만큼의 가치를 바라게 된다. 좋음과 나쁨이 뚜렷하지 않기에 누구나 의도하지 않아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의 당원은 4,053,466명이고 그 중 권리당원은 704,656명이다. 국민의 힘의 당원은 3,489,924명이고 그 중 책임당원은 569,059명이다. 인구는 5000만 명인데 나라는 약 754만 명 정도의 사람들에 의해 이끌려가고 있고 이 행동을 정치나 중심 잡기라고 주장한다. 때로는 5000만 명의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세금이 우리 동네를 위해 쓰이거나 내 친한 사람한테까지 큰 혜택을 주고 가는 것은 반갑고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매번 만족이라는 주제만으로 선거와 정권교체, 그리고 정권유지가 이어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투표에 있어서는 각자의 의견이 조금 더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공간에서 두 사람이 말을 높여서 그 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따라가면서도 개인의 의견이 담길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정치 속 다수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은 소수인데 그들이 다수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 모두가 타인들의 생각도 말 많은 소수가 주장하는 것 안에 충분히 담겼을 것이라 생각하고 방조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기간엔 투표만으로는 의견 표현이 안 되어 청와대에 쳐들어 가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시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저 선거의 형평성과 발전만을 본다면 허경영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후가 더 중요하고 변화보다는 성장이 중요하기에 1억을 받고 싶어도 보류하게 된다.

선거에서 제외되는 소수들이 있기에 그 소수를 제외한 다수가 모두 세상의 미래를 결정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수를 보니 나 또한 다수인 것 같았고 그러다 다시 소수가 되어있는 나를 보면 아무도 책임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아 침묵하며 겁을 먹기까지 했다. 결국엔 그럴 때 하지 못한 말이 좋은 공약이 된다. 세상의 소수를 돕는 것이 결국엔 모두를 돕는 것이고 와닿는 혜택이 없다면 그건 자신에게 맞는 공약이 아닌 것이다. 정치적인 체질을 떠올리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한 공약이어도 빼곡한 의도가 마음에 들어 나를 위한 공약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반면에 내 정치적 체질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공약은 다수 또는 국가 자체를 위한 공약이겠다. 대선후보들을 보다 보면 저 공약은 당선이 돼도 안 지켰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드는 공약들이 있다.

몇 가지 공약들에는 대한민국 구조의 악취가 스며들어 있다. 교육기관들이 제대로 된 교육에 집중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여러 변두리의 경쟁을 심화시킨다. 중,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꿈(더 좋은 대학 진학)을 실현시켜주려 일부의 기와 열정 모두 빼앗는 형태의 교육을 하며 그 책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단순한 대학 진학률, 그로 인한 본인의 지지율만을 높이려 한다. 그렇게 대학 진학과 취업까지 모두 이뤄낸 사람들은 험난한 쥐어짜기 속에서도 견뎌낸 사람이니 그 과정에서 모두에게 포기되어버린 다수들은 여러 방향의 소수의 힘에 짓눌려 숫자만큼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소수는 말 많은 소수만을 도와주고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 또한 말이 많아진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줄 테니 노력해서 이뤄내길 바란다는 형태의 공약은 무너진 사람들의 용기를 무시하는 대기업 공약이고 안보를 내세워 실제로 벌어지는 전쟁과 갈등들에서 시선을 돌리는 공약은 현수막 같은 공약이다. 소수의 수다가 만찬의 레시피를 바꿔서 대한민국은 내국인에게 인정받는 선진국이 되기엔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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