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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강건 Apr 15. 2024

그 많던 카스텔라는 누가 먹었을까

우리 집은 내가 어릴 적에 벼농사를 지었다.

봄에 논갈이를 하고, 볍씨를 심고 모내기를 해야 했다. 땅에 기운을 더해 주기 위해 밑거름을 파종 전후로 주었다. 아버지는 땅 힘을 키워 주려고 아는 아저씨에게 닭똥을 사서 풀과 섞어서 거름을 만들었다. 건초 포크로 닭똥과 풀을 서로 섞어서 작은 언덕처럼 쌓았다. 그 후에 두꺼운 비닐로 덮어 놨더니 아침이면 연기와 함께 시큼한 냄새가 같이 올라왔다. 코를 막지 않고서는 거름을 지나칠 수 없었다.      


집 앞, 비닐하우스에 앉아 부모님은 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긴 창이 있는 모자를 썼고, 아버지 녹색 모자에는 새마을 글자가 보였다. 며칠 새 농협에서 받았던 볍씨가 세상으로 나왔고 모종판으로 옮겨 심었다. 검은색 포트에 볍씨를 한 알씩 넣고 그 위를 흙으로 덮은 후 물을 주었더니 파란 줄기가 땅을 뚫고 나왔다. 대가 굵어지면 논에 옮겨 심어야 해서 모종판을 경운기에 싣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경운기를 타고 동네 신작로에 있는 논으로 출발했다. 회색 연기를 내뿜는 경운기 소리가 내 귓가에서 멀어지고 안 보이자 얼른 큰방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혼자 남아 있다. 장롱 위를 쳐다보려고 어린이 작은 키로 보이지 않아 까치발까지 하지만 그 녀석을 볼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 장롱엔 다 칸이 있었고, 고리도 달려 있었다. 어머니는 장롱에 옷을 넣어 놓으셨다. 위 칸부터 차례대로 형, 누나, 나, 동생 옷을 거기에 넣어놨다. 값싼 나무로 만들었는지 열 때마다 얇은 먼지 같은 게 끼어 있었다. 그리 좋지 않은 나무로 만들었던 거 같았다.   

   

이 장롱 위는 말하자면 우리 집 비밀 창고였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간식 보관 장소였다. 시골인 데다가 3남 1녀까지 있으니, 집에는 항상 먹을 것이 귀했다. 무엇이 있건 왕성하게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늘 부족할 뿐이다. 부모님은 간식 같은 걸 장롱 위에 자주 두셨다. 장롱은 어른들만 손이 닿았고 아이 키로는 손에 닿지 않고 그저 우러러봐야 하는 위치여서 조금 보다 보면 목이 아파져 오는 바람에 곧 땅을 일 초만 보고 한숨을 쉬어야 하는 곳이었다. 장롱을 올라가려면 네 명이 힘을 합쳐야 했다. 한 명은 맨 밑에 말처럼 무릎을 꿇어앉고 그 위에는 더 가벼운 내가 탔고 마지막에 동생이 탄 후 손을 뻗치면 닿을 높이였다. 이렇게 힘을 합쳐야 하는 위치에서 카스텔라는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고, 4형제가 힘을 합쳐 올라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형이 장남이라 부모님이 관심과 애정을 쏟아부었다. 4형제가 대개 먹는 음식은 같았지만 나만 못 먹게 했던 간식이 있었다. 분유가 그랬다. 어머니는 장손이 잘되어야 집안이 펴지고 동생들이 그걸 보고 배운다는 세대에 살았고 그걸 철칙으로 믿고 계셨다. 공부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어린 눈에 알 수 없지만 어머니는 형만 분유를 타 주었다. 분유통은 크기도 크고 흰색 녹색이 미끄럼틀처럼 부드럽게 섞여 있었다. 깡통 분유였는데 그 안에 투명 플라스틱 스푼도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유리컵에 스푼으로 세 숟가락 퍼 넣었고 물을 주전자로 따뜻하게 끓인 후 분유에 부었다. 작은 언덕처럼 쌓여 있던 분유는 뜨거운 물에 얼마나 잘 녹았던지 새하얗든 가루가 마법처럼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법의 분유를 마시는 모습은 내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보면 나도 먹고 싶을까 봐 마당으로 나가서 혼자 놀았다. 분유를 나는 먹지 말라고 했으니까.     

 

시골에서는 과자가 귀하다. 슈퍼마켓은 없었고 유일하게 있는 동네 회관에서 맛있는 과자를 많이 팔았다. 그중 으뜸은 초코파이였다. 회관에서 오십원을 주어야 사 먹을 수 있었고 그 돈이면 아이스께끼를 한 개 사 먹을 수 있었다. 비싸면서 고급 과자였는데 카스텔라는 초코파이보다 한 수 위였다. 카스텔라는 큰 파전 크기이고 초코파이는 동그란 소똥같이 작았다. 노란 녀석이 더 커서 더 오래 먹을 수 있었고 배도 불렀는데 제일 좋은 건 포근하면서 사르르 녹는 맛이었다. 초코파이는 운이 좋아 용돈이라도 생기면 마냥 사 먹을 순 없었지만 카스텔라는 돈이 있어도 사 먹을 수 없었다. 회관에서 왜 그것만 없는지 모를 일이었다. 카스텔라를 팔았다면 부자가 되는 건 틀림없었을 텐데 마을 회관에 팔지도 않았고 어디에 파는지 알 수도 없다.      


 어머니는 상상했을까? 먹지 말라고 했는데도 몰래 카스텔라를 먹고 있다는 걸.  돌아서면 금방 배 꺼지고 먹을 걸 달라는 내 위의 위대함으로 2학년 아들이 장롱에 올라갈 것이라는 걸. 조금씩 맨 아래 서랍을 빼놓고 왼발 오른발 한 걸음씩 올라갔다. 두 걸음 옮기다가 쿵하고 떨어졌다. 아까 떨어진 곳에 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방위에서 왼발 오른쪽 왼손 오른손이 합심해서 또 올랐다. 한걸음 한 손이 번갈아 가며 장롱 위에 도달했다. 오른손에 뭔가 바스락하고 걸렸다. 얼른 잡아 휙 하고 아래로 던졌다. '성공이다. 휴!' 한숨 쉬고 올라왔던 반대로 내려갔다. 왼쪽 엄지발가락으로 서랍이 있나 없나 아래로 휘적였다. 서랍이 걸려들었다. 단단히 서랍을 눌러보고 왼쪽 발 중간으로 서랍 끝을 눌렀다. 이번엔 오른발 차례였다. 축 늘어지는 오징어 다리처럼 최대한 부드럽게 발을 내려 보다가 서랍을 찾았다. 안정감 있게 걸치고 한걸음 내려왔다.      


이윽고 방바닥에 닿았다. 공중에서 아니 장롱에서 떨어진 얘는 말이 없다. 노르스름한데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노르스름한 표면이 포장지에 숨어 있지만 그 빛은 숨길 수 없었다. 얼른 쭈욱 잡아떼었다. 벌써 침은 이 녀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한입 베어 물었다. 이놈은 이제 살아남기를 포기하고 입 속부터 식도까지 내 인체 신비를 탐험하는 중이었다. 한번 시작한 이상 멈출 수가 없다. 아니 그만두면 빵에 대한 모독이지. 식도에서 점점 밑으로 내려가는 순간, 별안간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카스텔라를 다 먹으면 내가 먹은 게 들킬 게 분명했다. 어쩔 수 없이 다음에도 성공하려면 다시 있던 자리에 고이 모셔 놓아야 했다. 어머니는 나한테는 카스텔라를 먹지 말라고 해서 조금씩 몰래 먹었는데 분명히 다 먹지 않고 잘 남겨두었던 그 빵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야 말았다. 


그 많던 카스텔라는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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