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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강건 Mar 26. 2024

이제, 아버지 꿈 말고 내 꿈 찾기

   2017년 2월, 차는 청주로 달렸다. 대학원 졸업식이라니, 마음 한편이 설레었다. 총장님의 축사가 끝나자 나는 학위 증서를 받기 위해 학우들과 앞으로 걸어 나갔다. 뒤에서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뿌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 후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부모님께 박사모를 씌워 드리고 박사 복도 입혀드렸다.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좋아하셨지만, 아버지는 몇 번을 버티다 입으시더니 무덤덤하게 사진을 찍으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기뻤다. 그리고 행복했다. 아버지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내 아버지의 꿈, 내 아버지의 바람. 그것은 아들이 공부 잘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공부하지 못했던 걸 늘 마음의 한으로 가지고 계셨다.      


  아버지는 중학교를 중퇴하셨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공부를 더 할 여력이 없었다. 아버지는 등교 전에도 산에서 나무를 해 놓고 학교에 갔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한 한을 자식에게 쏟아부으셨다. 형, 누나, 나에게 매일 공부하라고 하셔서 그 말을 뇌에 새길 정도였다. 내가 박사 공부를 한 이유는 아버지 한을 풀기 위한 것도 있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나도 공부를 좋아하고 자녀에게 모범을 보이고 싶었다. 공부하면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졌다.      


  고등학교도 아버지 바람대로 명문고에 들어갔다. 김천고등학교에 형, 누나가 입학했고, 나도 가서 아버지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합격하고 1학년 첫 시험을 쳤는데 결과는 어땠을까? 난 충격을 받았다. 시골에서 항상 1등을 하다가 갑자기 109등이라니, 믿기지 않았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 좌절감에 무너졌다.     

 

  고 3이 되면서 인문계가 되었고 내신시험 인문계 180명 중에서 56등까지 했다. 문제는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 200점 만점에 98점을 맞은 적이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좋은 대학에도 가고 싶은 꿈에 전기충격기에 감전된 듯한데 아버지는 얼음보다 차가운 한마디를 뱉으셨다.


  “형은 ㅇㅇ대학교 다니는데 너는 점수가 이게 뭐꼬?”     

형과 점수를 비교한 까닭은 지금 보니 공부를 더 잘하라는 아버지 바람 때문이었다. 표현력 서툰 경상도 남자 입에서 그렇게 말하는 걸 이제는 이해한다. 


  아버지는 공부를 잘하는 자녀들이 항상 자랑거리였다. 술을 즐겨 드시는데 취중엔 항상 자식 자랑을 동네 어른에게 하셨다. 그렇게 드러내지 않아도 조그만 시골 동네라 다 알 텐데 왜 자랑하시는지 나는 잘 몰랐다. 이제는 이해가 된다.     

 

  나도 어느덧 두 딸을 둔 아빠가 되었기 때문이다. 딸들이 뭘 잘하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입이 간질간질하다. 하지만 거의 자랑은 안 하려고 노력한다. 혹여라도 남들에게 질투받고 미움받을까 봐, 아니면 오히려 상대에게 박탈감을 줄 것 같아서 말이다.


  아버지 한을 풀고 나니 비로소 내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자식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 그저 한 인간으로서 해야 할 소명과 꿈을 찾고 싶다. 이제는 나만의 꿈을 찾고 싶어 발버둥 치련다. 가족관계에 가려 그동안 보지 못한 나의 진정한 꿈을 찾는 데 사십칠 년이 걸렸다. 후회스럽고 안타깝지만, 과거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시간만 관리할 수 있다. 내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꿈을 향해 오늘도 발걸음을 힘차게 옮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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