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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몹쓸 남자다. 특징이라는 것이 겨우 이것뿐인 게 매우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사실 잘못의 여부를 구분하기조차 힘들다. 여기 보기 드문 몹쓸 남자 하나, 구경이나 하고 가세요.
그저 여자에 미쳐버린 불쌍한 남자였을까? 아니면 보기 좋게 애정결핍이었다고 포장이라도 해볼까? 나는 40여 가지 이상 직업군의 여자들과 연애를 하고 그중에 한 사람과 결혼까지 했지만 결국 이혼을 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나의 청춘은 여자로 시작해서 여자로 끝나버렸다. 만나왔던 여자들 품에서 그들에게 더욱 편리하게, 더욱 적합한 남자로만 그 구실을 할 수 있게 성장해왔다.
여자보다 여자들의 마음을 더욱 잘 알 수밖에 없게끔 살아왔고, 남자라서 남자들의 마음을 잘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수많은 여자들과 연애를 하기 위해서, 또 그들에게 적합한 남자가 되기 위해 내가 아닌 다양한 남자들의 모습으로 살아온 세월 때문에 그렇게 되어버렸다.
나는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는 편이지만, 정작 나의 본모습이 무엇인지 스스로 구분조차 할 수 없는 멍청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내가 잘나고 똑똑한 남자라서 그렇게 많은 여자들과 연애를 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가진 능력이라곤 마음을 얻고 싶은 여자에게 최적화가 가능하도록 스스로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하찮은 능력뿐이었고 그런 하찮은 능력 덕분에 담는 그릇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물 같은 사람이 되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으며 거기다가 여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집념 자체도 강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나 많은 여자를 만날 수 있었던 그 하찮은 능력이 장점이라고 생각하며 부러워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도 그럴게 스스로도 그것이 대체 불가능한 장점이라고 믿었으며 근거 없는 자신감 하나로 소름 끼치도록 기나긴 세월을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의 나란 사람을 뜯어보면 그저 평생을 바람둥이인 채로 여자에 미쳐 살았으며 한 가정마저 포기해버린, 그렇게 여자에게만 귀속되어 제대로 된 동성 친구 한 명 없이 살아온, 구린내가 진동하는 형편없는 남자일 뿐이다. 당시 나의 감정과 마음 따위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그럴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친척 관계와 형제 관계가 매우 단조로운 2대 독자이다. 어려서부터 여자라고는 어머니만 보고 자랐으며 나의 아버지는 과묵하실 뿐, 낭만과는 거리가 먼 분이셨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여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고, 여자들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왔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강한 집념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삶의 이유와 목적을 그것에 두고선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것에만 집중했다. 영화 감상이나 독서를 하면서도 언제나 여자를 유혹할 방법으로만 연결 지어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예술 행위는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예술가 기질마저 있다고 믿는 미친 사고방식을 가진 채로 살아왔다.
마치 부자가 되고 싶어서 자기 계발에 몰두하고 독서와 글쓰기를 반복하며 단기적으로 본인에게 득이 되지 않더라도 열정과 시간을 투자해서 자기 자신을 강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원대한 꿈을 장착하고 당장 수치화할 수 있는 목표들을 세워서 그것들을 차근차근 이루어 나가며 그렇게 복리로 쌓은 작은 성공들이 모여 결국 부를 극대화시키는 공식처럼 나에겐 연애와 여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그랬다.
그저 여자가 너무 좋았고 그들의 사랑과 마음이 간절했기에 여자에 대한 공부를 절대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들의 감성을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연구를 거듭했다.
여자들이 좋아하고 선호하는 물건, 공간, 음악, 감성, 패션, 행동, 걸음걸이, 말투, 목소리 톤, 단어 선택 등을 공부하고 여자들이 즐겁게 보는 드라마나 영화를 섭렵하는 것까지 나의 세상은 여자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나의 이런 정성과 노력을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 골고루 분배하였으면 아마 나는 억만장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동성 친구가 없다. 그들의 감성은 내가 더 많은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만 필요했고 지나치게 사회화된 개인주의자였던 나는, 그런 인성과 성품을 가진 채로도 남자들과의 대인 관계에서 오히려 살갑고 좋은 동생, 형, 친구로서 기억되곤 했다.
이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정신을 차리고 인생이 조금이나마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토록 영악하고 하찮은 두뇌를 가지고 그것을 보기 좋게 포장하고 유지할 수 있는 운까지 타고났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의 인연을 오래 이어가기 힘들었다. 나에겐 여자 친구가 곧 가족이고 친구였으며 나라는 세상에서는 그들이 중심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지인들과 놀고먹고 마시고 할 시간과 돈을 여자 친구에게 몰빵 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너는 여자 때문에 네 놈 인생 전체를 좀먹는 놈이야. 제발 끊어. 한 번쯤은 여자 없이 살아봐 제발.'
첫 번째 이혼을 했을 당시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말이 갑자기 기억이 나서 적어보았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 이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기에 나는 지독할 정도로 몹쓸 남자다.
각설하고 나는 앞으로 내가 만나왔던 수많은 여자들과의 추억, 아니 기억이라고 하겠다. 그 기억들을 글로서 남겨보고자 한다. 이것은 낭만적인 소설도 아니며 지난날을 반성하는 내용 따위는 더욱이 아니다.
나는 겨우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기에 이렇게 글을 쓰는 공간에서 최약체로 분류될 것이 분명하다. 남들이 읽고 싶은 글을 써야 하는 이 세상에서, 나는 나의 아찔한 무식함을 앞세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려고 한다.
글쟁이들의 성지와도 같은 느낌의 이 공간에서 작성되는 나의 글은 그나마 남은 인생을 나로서, 나답게 살기 위한 요망한 몸부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욕심이 나는 부분은 나의 글을 읽고 나서 이성에게만 목을 매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누군가가 그 짓을 멈추는 것이다.
지나간 인연에 대해 후회하거나 반성을 했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테지만 딱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걸린다. 감히 내가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 벌써부터 가슴이 뛰는 그 사람에게 앞으로 써 나아갈 모든 글을 바쳐야 할 것만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나의 욕심일까?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한 번쯤 그 사람이 '나의 글을 봐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은 건 인간이 이기적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그냥 그런 몹쓸 놈이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좋다. 초심을 유지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에 글을 작성하는 마음 가짐은 변질될 수 있으나 쓰고 싶은 글을 끝까지 쓴다는 의지가 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꾸며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믿어준다면 모든 것은 진짜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