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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샤 Sep 08. 2022

화류계, 가시 돋친 꽃

#2

만남부터가 엉망이었다. 20대 초반, 혈기가 필요 이상으로 왕성했던 나는 여느 남자들과 다를 것 없이 외적으로 화려하고 예쁜 여자에게 온 정신이 팔려있었으며 그것이 치명적인 화근이 되어 돌아왔다.


그녀를 만난 것은 서울 동쪽 어느 모텔촌 중심이었다. 그날이 벌써 10년도 훌쩍 넘었으니 새벽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몇 시였는지 기억이 날 리가 없다.




친한 동생들과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다가 나와서 편의점 앞에 선 채 담배를 태우고 있을 때였다. 누가 봐도, 아니 앞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업소녀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앙칼지게 생긴 그녀는 술이 떡이 된 표정을 하고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상태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 여자가 명함을 건네려나.. 정말 싫다'라는 생각을 하며 다가오는 것을 못 본 척 몸을 이리저리 틀어대며 담배를 태웠다. 풀린 눈으로 내 앞에 선 그녀는 역시나 예상을 1도 빗나가지 않고 나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나는 즉시 표정을 굳히며 거절의 표현으로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양해를 구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소름 끼치도록 빠르게 나의 손바닥에 하이파이브를 있는 힘껏 갈겨버리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 상황에서 웃지 않기가 되려 힘들었다. 아무리봐도 영락없는 술집 여자의 자태였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 그녀의 얼굴을 예쁘장했고 예쁜 여자의 이런 돌발 행동은 남자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손바닥이 얼얼했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나는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황당하게도 하이파이브를 하고 한껏 웃어젖히더니 그대로 나를 지나쳐 편의점 대각선에 위치한 모텔로 들어갔다. 나는 그곳이 고정 숙소인지 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연락처가 있는 명함을 받았기에 일단 계획대로 동생들과 근처 찜질방으로 향했다.


찜질방에서 나는 그녀에게 문자(당시 스마트폰이 존재하지 않았다)를 했다. 문자를 보낸 지 얼마 안 돼서 바로 답장이 왔고 그녀는 버디버디(당시 PC 카카오톡과 같은 SNS 메신저)에 들어와서 자신의 아이디를 추가하라고 했다.


찜질방에 PC 몇 대가 오락실처럼 비치되어 있었기에 나는 잽싸게 버디버디에 로그인해서 그녀의 아이디를 추가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 도중 그녀는 나의 반응이 시원찮아서 연락이 안 올 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남자 친구가 있으며 그저 나의 외모가 자기 스타일이라 연락처를 건네본 것 뿐이었다고 했다.


개소리를 너무 당당하게 해서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지금 남자 친구가 옆에 침대에서 자고 있어서 바로 꺼야 할 수도 있으니 이해해달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미치도록 당당하게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녀가 술에 취해서 그런건지 미친년인건지 헷갈렸지만 하이파이브당하면서 설렜던 나도 정상이 아닌 미친놈이라고 합리화를 하며 누가 봐도 색기가 넘치고 예쁘게 생긴 그녀와 연락을 이어갔다.


그녀는 예상대로 화류계에 종사하는 여자였고 나는 남자 친구가 있는 화류계 여자의 세컨드였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그녀가 일하는 업소에 실장이었다. 둘 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그 커플(?)은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굴러들어 온 돌 주제에 매번 그 남자와 헤어지라고 그녀에게 소리치며 화를 내기 일수였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기둥서방을 감싸주며 나에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허구한 날 싸우고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서로를 놓지 못하고 더러운 만남을 계속 이어갔다.


그녀와의 데이트는 언제나 모텔 방구석에서 질펀한 섹스로만 가득했다. 당시 그녀는 나를 그저 잠자리 파트너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녀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 그도 그럴게 2년이나 이딴 관계를 이어갔으면 사랑이 아니었을지언정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매번 모텔 방안에서만 하는 그녀와의 데이트는 나를 갈수록 지치게 만들었다. 나가자고 하면 혹시라도 남자 친구가 보면 어떡하냐고 나를 달래며 내 품에 안겨왔고 또 나는 그렇게 멍청하게 그녀를 안고 탐한 뒤 그녀가 먹고 싶다는 음식을 나가서 포장해 사가지고 들어오는 지랄 같은 데이트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또 잊을만하면 내가 그녀에게 그 남자랑 이제 그만 헤어지라고 그녀를 닦달하며 피 터지게 싸우고 울고불고하다가 포장 음식을 먹고, 섹스하고를 반복했다.


항상 그녀는 나와 싸우고 나면 가수 2PM의 Again & Again이라는 노래(가사가 어질어질하다)를 흥얼거리며 내 위로 올라탔고 나는 또 내 몸에 올라탄 그녀를 보면 모지리처럼 마음이 풀려서 안아줬다.


결국 둘 다 미친놈, 미친년이었고 그렇게 무려 2년이라는 세월 동안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했다. 헤어진 기간 동안 나는 다른 여자들을 만나기도 했었지만 결국 Again & Again. 나는 정신 병자처럼 얼마 못 가서 다시금 그녀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끝내 마지막이 찾아왔다. 그녀가 나와 대화를 하다가 방금 전까지 남자 친구와 자다가 온 것을 실수로 말해버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항상 상상만 하며 괴로워하던 부분을 직접 들었던 것에 대한 충격이었을까, 나는 너무 가슴이 먹먹하고 찢어질 듯 아파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그 남자와 헤어지지 않으면 더 만나지 못할 것 같다고 얘기했고 그녀도 눈물을 흘리며 우리가 그 남자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모두 우리가 잘못한 일이니 우리가 헤어지는 게 맞다고 했다. 나는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뜨거워졌다. 겨울 모텔 방안이 필요 이상으로 따뜻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모텔방을 나서기 전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내 소원이 너랑 같이 손잡고 영화관에 한 번 가보는 것이었는데, 끝내 그 소원 하나를 못 이뤘네. 잘 지내."


순간 그녀는 펑펑 울면서 내 옷 거지를 잡았지만 나는 그녀를 밀치며 그대로 뜨겁고 더운 기운이 가득하던 모텔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고, 두 번 다시는 그녀에게 되돌아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이 훌쩍 넘었을 때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내가 지독하게 미워했던(?) 그 남자와 깨끗하게 헤어진 상태였고 내가 원하는 공부를 지원하며 부양까지 해주겠다고 함께 외국으로 나가서 같이 살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한 시간 동안 생각보다 꽤 큰 상처를 받았다. 그녀와 그녀의 남자 친구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들의 상처 따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많이 망가져있었다.


나의 세상에선 내가 제일 아프고, 내가 제일 슬펐으며 내가 제일 불쌍한 놈이었다. 아름답지만 뾰족한 가시가 돋친 꽃을 힘껏 안아 품었던 나는, 그렇게 피투성이가 된 채 지질하게도 그녀에게서 그렇게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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