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샤 Mar 22. 2024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이건 이제 그만 봐야지

좀 지겹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몇 안 되는 영화 중에 하나이고 몇 번을 반복해서 봤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긴 세월 동안 주기적으로 봤던 영화다. 그리고 저번 주말에 또 한 번 볼 기회가 있어서 보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많이 봤지만 보는 내내 좀 지겨워서 이제는 그만 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며 그로 인한 의견 충돌, 논쟁도 상당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겨우 한낱 ‘개인의 의견’ 일뿐이기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정도로만 보면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장애가 없는 일반 남자가 하반신 장애가 있는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 및 결과를 특유의 일본 색감과 감성으로 그려놓았는데, 직접적으로 도덕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인 감수성을 강렬하게 자극하고 꿰뚫어 버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보통 이 영화의 리뷰를 보면 이 장면에 숨겨진 의미는 이거다, 저 장면에 표현하고자 한 것은 이거다라며 확신에 찬 광기를 뿜어대며 거의 뭐 저명한 인류학자들을 다 모셔놓은 것 같은 재밌는 꼴을 볼 수 있다. 이 글은 그런 형태의 심오한 리뷰가 아니고 그저 내가 경제적으로 힘들 때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고 반복적으로 보면서 느꼈던 점을 찌끄리는 이야기일 뿐이다.


내가 이전에 삼국지를 보면서도 연애 관련된 생각을 했다는 글을 싸지른 적이 있는데, 이것은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인생의 어느 순간부터 자체적으로 ‘몰입’을 실천하고 있었으며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일상생활을 평범하게 지속하면서도 그 ‘어떤 문제’에 대해 지독하리만큼 끈질기게 놓지 않고, 해결 방법에 대한 생각을 거듭이어간다.


나는 한때 근거 없는 자신감과 의지는 매우 충만한 상태였지만 돈이 없었고,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혼자 방구석에 처박혀 빈둥거리다가 우연히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다. 당시 나의 머릿속에 ‘돈, 돈, 돈’밖에 없을 때였지만, 이 지루한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작품이 마치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정말 네놈이 도덕이라는 짐을 짊어질 수 있는 존재냐?’


나는 영화가 끝날 무렵 남자 주인공인 츠마부키 사토시가 눈물을 질질 짜는 장면을 보고 그와 함께 눈물을 짜내며 깨달았다. ‘나는 그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상황에 따라 자기 좋을 때로 해석하며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해대는 박쥐 같은 새끼였고, 옳고 그름에 매몰되어 그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하는 미개한 인간이었구나’라고 말이다.


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츠마부키 사토시의 눈물은 도덕이란 큰 짐을 짊어질 수 없었던 자신의 깜냥을 깨닫고 그에 대한 혐오가 담긴 오열이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옳고 그름이라는 단순한 사고방식을 뛰어넘지 않으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가 쉽지 않겠네.’


결국 나는 현재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고 그 외적으로도 내가 원하는 것들을 상당 부분 쟁취해 냈으며, 하지만 아직도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거듭 성장하는 것에 대한 욕구를 억누르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다. 때문에 주변 지인들 중에서 특정 문제 혹은 도덕적인 가치관에 부딪혀서 삽질하다가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대체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쁜 놈들이 더 잘 먹고 잘 산다고 하지? 실제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나쁜 놈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 정답은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아. 그들은 그들의 세상에선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들일 뿐이야. 이것은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 나쁜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니야. 원하는 것을 쟁취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옳고 그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적어도 나는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특히 성리학적인 사고방식이 깔려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옳고, 그름이란 유사 감옥에 갇혀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도덕’이라는 짐을 짊어질 수 있는 깜냥이 안되는데,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고 나대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이기에 우리나라 GDP가 이 정도 수준인 것이고, 나 같은 사람들이 꿀 빨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기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어쨌든, 이번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너무 지겨웠기 때문에 잠시 봉인해두려 한다. 10년 후 50대 언저리에서 다시 보면 또 새로운 것이 보이려나? 너무 궁금하다. 10년 이상 변하지 않았던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관점이 과연 변했을지, 변하지 않았을지.

매거진의 이전글 비트코인 1억 돌파 제발 정신들 차리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