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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팀장 Oct 17. 2024

MZ 형사의 '꼰대 형사' 관찰기 - 1

직장에서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이유


나는 젊은 형사이자 늙은 형사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 정해지는 기준이겠지만 과연 나는 젊은 형사인가 아니면 그 반대일까... 스스로 자문할 때마다 해답은 항상 한 곳으로 향한다.



형사를 시작한 그곳...

낯선 사무실 문을 열었다. 천정 구석엔 먼지 섞인 거미줄과 공간을 가득 메운 담배연기 그 사이를 밀도 있게 메꾸는 고성들이 여기저기 벽에 부딪치고 이미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 있는 고참 형사들의 농익은 눈빛을 바라보며 젊은 형사인 나는 낯선 분위기를 가로질러 사무실 구석지에 멋쩍은 듯 겨우 자리를 잡았다.

      

달달한 믹스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워 문 고참 형사는 담배연기가 거슬리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스미스코로나 2벌식 타자기를 독수리 타법으로 능숙하게 때리고 있고, 앳된 여직원은 담배꽁초가 가득한 일회용 종이컵을 치우며 책상에 물걸레질을 연신 하고있다.


당시 사무실의 정식 명칭인 조사계... 각종 고소 고발 사건을 능수 능란하게 처리하는 경찰 내 엘리트 형사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들은 수사행정을 지원하는 수사1계와 유치장에서 근무하며 사건의 처리 과정을 배우고, 다시 형사팀을 거친 다음 일부 두각을 나타내는 형사들만이 종국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조사계 였다.


이런 베테랑들이 무섭도록 무겁게 자리를 잡고 있는 사무실에 법을 전공한 신임 형사들 5명이 긴급 수혈 되면서 그 육중한 고참형사 5명을 다른 부서로 밀어낸 것이다. 그러니 남아있는 고참 형사들 눈엔 그 신참 중에 한 명인 내가 얼마나 밉고 짜증이 났겠는가.


그런 분위기를 뚫고서 구석에 자리를 잡자마자... 조사계 실권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조사1반장이 다가와 깊은 한숨과 함께 “따라와”라고 한다.  그저 군대 신병과 같이 “예”라는 대답 외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잔뜩 긴장된 얼굴로 무심히 따라가자, 50대 초반 베테랑 형사에게 나를 인도하며 “앱니다”라는 외마디를 남기고 무심히 사라져 버렸다.





어느 사회이든 그 길을 먼저 걸었던 선배는 있다. 

수사관에게 첫 조장은 그 직업이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단순한 선배를 넘어 삶의 지혜를 조율해 주는 선구자로 느껴질 정도이다. 형사가 직업상 갖는 ‘무게감’이란 형사뿐만 아니라 그 대상자들도 무겁게 다가온다.


첫 사수를 대면한 순간이다. 그는 경상도 말투에 키는 크고 말랐으며 약간의 곱슬머리와 가느다란 눈에서 나오는 눈빛은 매우 예리했다. 다른 조장님들 중에는 후배에 대한 아무런 애착도, 가르침도 없이 그저 스쳐가는 무심한 인연쯤으로 흘려보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내 경우엔 조금 달랐다. 거친 스타일이었지만 일은 몇 달 동안 세심하게 가르쳐 주었고 이런저런 술자리와 밥값은 늘 조장님이 해결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조장님과의 시간이 대부분 멋졌지만 한편으론 불만도 생기고 있었다. 완벽한 그에게도 매너리즘이 있었다. 늘 같은 생각과 처리 방식만을  반복하여 일을 하면서도 이미 사무실에서 기권 세력화 된 권한은 타인의 도전을 불가능하게 했고, 더 이상 새로운 판례의 입장이나, 법리, 공부도 정체기에 접어들어 있었다.


인풋 없이 아웃풋만 남아 굳어진 사고와 허약해진 시선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파악하다 보니 실체를 찾아가는 방향은 협소해졌고 수사결과는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 상황에 도달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 나를 지탱하고 있는 멋진 형사에 대한 갈증은 갈피를 잡지 못했고, 업무상 찾아오는 난맥들의 돌파구를 조장님이 아닌 외부 법률전문가인 검사들에게 의존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변해갔다.




젊은 형사가 늙은 형사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제 형사가 하는 일에 조금씩 자신감을 갖게 된 나는 어느 날 의도 없이 무심하게 조장님에게 고백했다. “조장님 저는 그저 그런 부장님(고참형사)으로 형사를 마감하지 않겠습니다.”


어린놈이 곱절을 더 살아온 고참에게 일격을 가했다. 최고의 수사관이 되겠다는 다짐을 뻔뻔하게 고참을 평가 절하하면서 의지를 드러냈다. 나는 젊고 기회가 많으니까 뭐 한두 번 정도는 실수해도 다음에 잘하면 되겠지, 그런 오만함이었을까 아니면 선배를 넘어 최고의 형사가 되겠다는 또 다른 선한 의지의 표현이었을까. 아마 그 둘 다 있었던 것 같다.


조장님을 배신했다는 안 좋은 소문은  매우 빨랐고, 그 대상이 된 조장님 의지와도 무관하게 다른 고참들에 의해 소심한 보복도 뒤따랐다. " 야 서무반장, 조합사건 다 걷어다 윤형사 줘버려" 재건축 사건이라면 누구나 피하고 싶은 사건들을 악의적으로 재배당이 이루어졌고, 관내 상존했던 악성민원건도 도맡아 처리하면서 항상 시간에 쪼들려야 했다. 수배자 인수도 혼자 다니기 일쑤였다.


그런 환경은 신참에게 상당한 위험에 노출된 것이였고 매 순간마다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했고 몸과 마음이 늘 피곤했다. 그러나 그런 고민된 과정은 사건을 보는 안목과 지루하고 더딘 상황을 견디는 맷집, 사람들과의 적절한 대화법까지 나도 모르게 많은 저력들이 스며들어와 있었다. 세상에 의지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얻는 게 없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다.


형사로서의 선한 의지가 온갖 사건에 허덕이는 일선 형사들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몸소 체험해 오면서,  안 그래도 빈약했던 인간관계 마저 더없이 약해져 테러리스트보다도 친구가 더 사라져 갔지만, 오직 포기하지 않겠다는 하나의 다짐으로 업무에 필요한 지식을 경험하고 생각들을 다듬어갔다.




세월 속으로 전진하며~

세월과 경험들이 겹겹이 쌓이고 수없이 많은 사건과 사연을 더해 나도 이젠 고참 형사가 되었다. 우리 시대에 고참이라는 이미지는 늙었다, 고집이 세다, 유연하지 못하다, 권위적이다... 여기에 기회 있을 때마다 자기 자랑에 매번 얻어먹는 고참 정도다. 이 정도면 거의 테러 수준에 가까운 꼰대다.


이런 꼰대 형사는 왜 만들어질까. 사람의 감정과 태도를 통해 그의 생각을 읽어내고 행동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형사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감정이 무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선 감각을 강화시키는 생활이 필요한데 이 또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면 감수성이 사라지곤 한다.


그런 감수성을 채운다고 늙은 형사가 젊어질까. 그것 또한 아니다. 건강한 체력도 유지되어야 한다. 체력 없이는 한순간도 버틸 수가 없다. 빈약해진 체력이 쏟아내는 나약한 생각과 비뚤어진 시선들이 형사 업무엔 가장 큰 적이다. 시선이 비뚤어진 다는 것은 사물과 사연의 단면만을 보고 비관된 자신의 처지와 결합시켜 끊임없이 동정심을 갈구하고, 그 동정심을 기반으로  결국 왜곡된 판단을 하게 된다. 실로 위험하다.


스쳐가는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많은 판단을 해야 하는 형사가 살아있는 감수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때부터는 편협한 시선에 사로잡힌  꼰대, 늙은 형사로 변질되는 것이다.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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