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나와 너'를 찾아서 3
마르틴 부버는 인간이 세상을 ‘그것(Es)’으로 대할 때 영혼은 메마르지만, 참된 ‘너(Du)’와 마주할 때 비로소 실존의 꽃을 피운다고 보았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 세상은 차가운 관찰과 비난으로 가득한 ‘그것’의 황무지였다. 그러나 그 황무지 한가운데, 빈센트의 존재를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받아들여 준 성소(聖所)가 있었으니, 바로 동생 테오였다.
부버의 관점에서 고흐의 예술은 단순히 캔버스 위에 물감을 칠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테오라는 절대적인 ‘너’를 향해 던지는 필사적인 말 걸기였으며, 테오의 헌신적인 지지는 그 말에 대한 인격적인 응답이었다. 두 형제가 나눈 편지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존재를 어떻게 구원하고 완성하는지 보여주는 실존적 연대의 기록이다.
빈센트가 사회적 낙오자로 분류되어 ‘새장에 갇힌 새’처럼 절망할 때, 테오는 그를 관찰하는 제3자가 아니라 그의 고통 속에 함께 거하는 ‘너’가 되어주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우리 두 사람 모두 아직은 산 자의 땅에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 너와 함께 산책을 하니 예전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삶은 좋은 것이고 소중히 여겨야 할 값진 것이라는 느낌 말이다. 근래 내 생활이 더 보잘것없어지면서 삶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비관적인 생각에 젖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너와 함께 보낸 시간 덕분에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유쾌한 기분을 찾을 되찾을 수 있었다."(1879년 10월 15일, p14)
"무엇보다 우리 두 사람이 더 친해졌으면 한다. 내가 정말로 너나 식구들에게 폐만 끼치고 부담이 된다면, 그래서 나를 스스로 침입자로 여기거나 불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길을 방해하지 않도록 물러서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슬픔에 잠겨 절망과 씨름해야 할 것이다." (1879년 10월 15일, p18)
부버는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라고 선언했다. 당시 빈센트는 사회적 유용성이라는 '그것'의 잣대에 의해 철저히 배제된 상태였다. 그에게 테오와의 산책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사물화된 세계에서 소외되었던 자가 다시 ‘산 자의 땅’으로 복귀하는 인격적 성찰의 의식이다. 빈센트가 폐를 끼칠까 두려워하며 '지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언급한 것은, 테오라는 '너'가 없는 삶은 곧 존재의 소멸과 다름없다는 실존적 고백이다. 테오는 빈센트가 스스로를 '그것'으로 여기지 않게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였다.
빈센트는 테오에게 자신의 외면적인 변화가 아닌, 내면의 변치 않는 지향점을 고백하며 깊은 신뢰를 요청했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넘어 존재의 '본질'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실존적 호소였다.
"나의 내면이나 사물을 보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굳이 변한 것을 말하자면, 당시에 내가 생각했고 믿고 사랑했던 것을 지금은 더 생각하고 더 믿고 더 사랑한다는 것이다. " (1880년 7월, p21)
"제발 내가 포기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나는 꽤 성실한 편이고, 변했다 해도 여전히 같은 사람이니까.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내가 무엇에 어울릴까, 내가 어떤 식으로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하는 물음뿐이다. 게다가 고질적인 가난 때문에 이런저런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고, 온갖 필수품이 내 손에는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우울해질 수밖에 없고, 진정한 사랑과 우정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또 내 영혼을 갉아 먹는 지독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사랑이 있어야 할 곳에 파멸만 있는 듯해서 넌더리가 난다!" (1880년 7월, p22)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1880년 7월, p25)
인간이 서로를 '어디에 쓸모 있는가'라는 기준으로 대할 때, 관계는 '나와 그것'의 세계로 전락한다. 빈센트가 고백한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을까"라는 물음은 사회적 시선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사물(그것)'로 취급당하는 것에 대한 고통스러운 저항이다. 부버적 관점에서 테오는 빈센트를 기능적 대상이 아닌, 단 하나의 인격적 주체로 마주 보았다. 빈센트가 묘사한 '감옥'은 응답이 단절된 실존적 폐쇄성을 의미하며, 이를 여는 '마술적 힘'은 부버가 말한 '중간 지대(사이)'로서의 사랑이다. 테오는 빈센트의 본질을 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세상이 실패자라 낙인찍은 이방인을 '성실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빈센트가 그림을 판매용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을 테오에게 보낸 것은, 두 사람이 공유한 '참된 관계'의 도덕적 토대였다. 이는 예술을 경제적 이득을 위한 도구(나-그것)가 아니라, 존재의 진실을 드러내는 인격적 통로(나-너)로 지켜내겠다는 결연한 의지였다.
"작품이 팔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작업할 것이 아니라, 작품에 정말 훌륭한 어떤 것이 들어 있어야 할 테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정직한 탐구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1882년 8월 20일, p79-80)
"경제적인 성공을 가늠하는 일은 네가 더 나을 테고, 사실 난 전적으로 네 판단을 신뢰하고 있다. 그러니 조만간 습작 몇 점을 받게 되더라도, 그림이 팔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네 제안이나 의견을 듣기 위해서라는 걸 잊지 마라. 어떤 경우에든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너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림을 보내는 것이다." (1882년 8월 20일 p82.)
"모델을 구하는 데 돈이 많이 들지만 내가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서도 돈을 쓰게 된다. 물론 가능한 한 아끼며 살기 위해 요즘은 무료식당에서 밥을 먹는단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해 네가 반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나도 가능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마." (1882년 1~2월, p47.)
부버는 대상을 이용하려 할 때 인간은 '나와 그것'의 세계로 추락한다고 보았다. 빈센트가 "그림이 팔릴 것인가"라는 질문을 거부한 것은 예술을 상품이라는 '사물'로 귀속시키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부버적 관점에서 이 탐구는 대상의 본질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도록 존재를 여는 '대화적 개방성'이다. 테오에게 습작을 보내며 의견을 구한 행위는 예술을 매개로 한 인격적 응답의 과정이며, 테오는 형이 예술이라는 '너'를 대할 때 정직할 수 있도록 현실의 무게를 대신 짊어지는 '인격적 책임'을 수행했다. 이 견고한 연대 덕분에 빈센트는 사물화된 세상을 이겨낼 주체적 힘을 얻었다.
정신적 발작과 경제적 궁핍이 극에 달했을 때, 두 형제의 관계는 서로를 향한 '책임'의 정점에 도달했다. 이는 부버가 말한 '나와 너'의 관계가 위기 속에서 어떻게 서로의 실존을 지탱하는 성벽이 되는지를 증명한다.
"형은 내게 빚진 돈 얘기를 하면서 갚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 내가 형에게 원하는 것은 형이 아무런 근심 없이 지내는 거야. (1888년 10월 27일 p220.)
"형의 사랑과 작품들로 이미 몇 배나 나에게 되돌려주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야. 그런 것들이야말로 내가 가질 수 있었던 돈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 아니겠어." (1889년 4월 24일, p241)
<여동생 윌에게 테오가>
"형의 지식과 세상에 대한 명석한 시각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란다. 그러니 형이 더 나이 들기 전에 유명해질 거라고 확신한다. 형 덕분에 난 많은 화가들을 알게 되었지. 그들 역시 형에 대해 아주 좋게 생각한다. 형은 새로운 생각의 챔피언이거든.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생각한다면, 더 정확히 말해 낡은 생각들을 뒤집는 일이 챔피언이라 해약겠지. 평범함 때문에 퇴보했거나 그 가치를 잃어버린 생각들에 대해 말이다. 게다가 형은 항상 남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란다." (1888년 2월, p161)
부버는 사랑을 "너에 대한 나의 책임"이라 정의했다. 테오는 빈센트를 빚진 자라는 '그것'의 자책 속에 가두지 않고, 오히려 형의 예술적 존재를 통해 자신의 삶이 풍요로워졌음을 고백하는 '상호성(Reciprocity)'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테오에게 빈센트는 돌봐야 할 환자(그것)가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일깨우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사유의 챔피언(Du)'이었다. 이러한 전폭적인 지지는 고흐가 가장 어두운 밤에도 별을 그리는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한 유일한 응답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고백은 테오라는 든든한 '너'가 있었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 부버는 '너'를 대면하는 자는 무한한 세계에 가 닿는다고 말했다. 빈센트에게 테오는 지상의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하늘의 별을 꿈꾸게 한 유일한 창구였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1888년 6월 p191.).
"우린 아이를 형의 이름을 따서 빈센트라 부를 거야. 이 아이 역시 형처럼 강직하고 용감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어." (1890년 1월 31일 p282.)
부버 철학의 정점은 개별적인 ‘너’를 통해 모든 존재의 근원인 ‘영원한 너(Das ewige Du)’를 마주하는 데 있다. 빈센트에게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테오라는 인격적 ‘너’와 나눈 지상의 대화를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테오가 아들에게 형의 이름을 붙여준 행위는 빈센트를 과거의 '그것'으로 남겨두지 않고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현존하는 ‘너’로 선포한 실존적 결단이다.
오베르의 들판에 나란히 누운 두 형제의 무덤은, 마르틴 부버가 갈망했던 '온 존재를 다해 상대를 긍정하는 관계'가 어떻게 한 천재의 영혼을 구원하고 영원한 예술로 승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이다. 테오는 죽음의 순간까지 응답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그 응답이 있었기에 고독한 화가의 고백은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의 노래가 되어 영원 속에 안착할 수 있었다.
세상이 한 인간을 '그것'이라 부르며 외면할 때, 단 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그를 '너'라고 불러준다면 그 영혼은 결코 파멸하지 않는다. 고흐의 캔버스 위에 타오르던 그 강렬한 빛은 결국, 자신을 '너'로 마주해주었던 테오의 사랑에 보내는 빈센트의 가장 뜨거운 화답이었다.
물론, 빈센트와 테오의 관계가 늘 성소(聖所)처럼 완벽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마르틴 부버 역시 인간의 유한성 속에서 ‘영원한 나와 너’의 관계는 지속될 수 없으며, 모든 ‘너’는 필연적으로 다시 차가운 객체인 ‘그것’으로 돌아가는 비극적 순환을 겪는다고 말했다. 두 형제 역시 때로는 오해와 경제적 중압감, 정신적 질환이라는 ‘그것’의 장벽 앞에서 좌절하고 갈등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위대했던 이유는 그 필연적인 단절의 순간마다 다시 서로를 ‘너’로 불러세우려는 의지를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부버가 말한 ‘영원한 너’를 향한 그들의 갈망은 지상의 물리적 시간을 넘어 죽음 이후까지 이어졌다. 이제 오베르의 들판 아래, 그리고 영원히 저무지 않을 밤하늘의 푸른 별이 되어 마주하고 있을 두 형제는, ‘나와 그것’의 고통이 없는 그곳에서 마침내 온전하고 행복한 ‘나와 너’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oxHnRfhDmrk?si=21Ez7gyES5LdhvV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