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나와 너'를 찾아서 2
마르틴 부버의 실존주의 철학인 ‘나와 너(Ich und Du)’는 관계의 본질을 규명한 가장 위대한 통찰이다.
이 통찰은 고흐가 왜 그토록 가난한 자들의 얼굴과 뒤틀린 나무뿌리에 온 영혼을 쏟아부었는지, 그 지독한 집착의 이유를 해명해 줄 유일한 통로가 될 것이다.
마르틴 부버에 따르면 인간은 두 가지 세계에 산다. 하나는 대상을 관찰하고 분류하며 이용하는 ‘나와 그것(Ich-Es)’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온 존재를 다해 상대를 대면하는 ‘나와 너(Ich-Du)’의 세계다.
고흐가 살았던 19세기 말은 자본주의와 과학적 객관주의가 세상을 ‘그것’의 집합체로 전락시키던 시대였다. 사람들은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인간을 노동의 도구로 보았다.
그러나 고흐는 이 거대한 흐름에 온몸으로 저항했다. 그는 사물을 소유하거나 화려하게 장식하는 화가('나와 그것'의 관계)가 되기를 거부하고, 대상의 영혼이 내뱉는 고유한 언어에 응답하는 따뜻한 동반자('나와 너'의 관계)가 되고자 했다. 그에게 내면이나 사물을 보는 방식은 결코 변하지 않는 신념이었다.
"굳이 변한 것을 말하자면, 당시에 내가 생각했고 믿고 사랑했던 것을 지금은 더 생각하고 더 믿고 더 사랑한다는 것"(1880년 7월, p21)이라는 고백은, 그가 세상을 대하는 시선이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인격적 만남이었음을 증명한다.
그에게 그림이란 화가의 기술을 뽐내는 도구가 아니라, 대상과 내가 인격적으로 조우하며 발생하는 ‘사건’ 그 자체였다. 그는 세속적인 기준에서의 세련됨을 버리고, 세상이 외면한 가장 낮은 곳의 진실을 지키는 영혼의 파수꾼이 되어 모든 '너'들에게 다가갔다.
고흐에게 자연은 화폭에 옮길 재료가 아니었다. 그는 사물을 '인물'처럼 대우하며, 그 안에서 박동하는 생명력을 발견할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자연과의 씨름은, 세익스피어가 ‘말괄량이 길들이기’(이 말은 싫든 좋든 대립을 조금씩 완화하는 것을 뜻한다)라고 부른 것과 비슷하다. 많은 분야에서 공통된 말이겠지만, 특히 데생에서는 ‘꾸준함이 항복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1881년 10월 12~15일, p29)
부버는 '나와 너'의 관계가 일방적인 소유가 아니라 상호적인 대화라고 했다. 고흐가 말한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대상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대상 사이의 팽팽한 대립을 뚫고 서로의 존재가 섞이는 '만남'의 과정을 의미했다. 그는 꾸준함을 통해 자연이라는 '너'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가령 버드나무를 인물데생을 하듯 그린다면, 즉 모든 주의를 그 나무에 기울여서 그 안에서 어떤 생명이 살아 숨쉬게 되는 경지까지 이른다면 부수적인 배경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1881년 10월 12~15일, p29)
나무를 '그것'으로 보는 화가는 배경과의 구도에 집중하지만, 나무를 '너'로 대하는 고흐는 나무 안의 생명력에만 몰입했다. 부버가 "너를 마주할 때 세계는 하나로 묶인다"고 했듯, 고흐가 나무라는 '너'와 완전한 합일을 이룰 때 배경은 저절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조화를 이루었다.
"그 풍경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것을 빠른 속도로 받아 적었다. 내가 그렇게 받아 적은 것은 판독할 수 없는 단어와 실수, 결함을 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여전히 숲이나 너도밤나무, 여러 인물들이 나에게 들려준 것의 일부가 남아 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준 방법이나 체계 안에서 습득한 인습적인 언어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에서 나온 언어다." (1882년 9월 3일, p85)
이는 '나와 너' 관계의 정수다. 화가가 주체가 되고 자연은 객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화가에게 말을 걸고 화가는 그 목소리에 응답(Responsibility)하는 것이다. 고흐는 기성 화단의 법칙(인습적 언어)이라는 '그것'의 필터를 제거하고, 자연의 생생한 음성을 그대로 수용했다.
"다른 그림은 “뿌리”이다. 모래 섞인 바닥 위로 나무뿌리들이 드러나보이는 광경이다. 나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인물에 부여했던 것과 같은 감정을 풍경에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힘없고 연약한 여인의 초상화에서처럼, 온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대지에 달라붙어 있지만 폭풍으로 반쯤 뽑혀나온 이 시커멓고 울퉁불퉁하고 옹이투성이의 뿌리들 속에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을 담아내고 싶었다." (1882년 5월, p56)
고흐는 눈앞의 대상을 단순한 관찰물로 보지 않았다. 그는 뒤틀린 나무뿌리조차 무심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대지에 매달려 삶을 지탱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인식했다. 이는 식물학적 관찰을 넘어 존재와 존재가 마주하며 나눈 깊은 공감의 결과였다. 뿌리라는 '너'가 내지르는 소리 없는 고통에 동참한 화가는, 그 생생한 울림을 고스란히 캔버스에 옮겨 적었다.
부버는 인간이 상대를 사회적 지위나 유용성으로 판단할 때 관계는 파괴된다고 경고했다. 고흐는 세련된 예절의 세계를 떠나 비천한 자들의 고통 속에서 신성을 발견했다.
"내가 예의범절을 까다롭게 따지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요령이 없다는 건 솔직히 인정한다. 하지만 그 대신 가난하거나 평범한 사람들과는 더 잘 지낸다. 앞의 사람들에게서 잃은 것을 뒤의 사람들에게서 얻는다. 결국은 나 자신이 관심을 갖는 환경, 표현하고 싶은 환경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지 않겠니. 그걸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 (1882년 3월 3일, p50)
부버적 관점에서 예의범절은 인격과 인격 사이에 놓인 '그것'의 막이다. 고흐는 그 가식적인 막을 걷어내고, 가난하지만 생생한 존재의 빛이 살아있는 민중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에게 예술은 상류사회의 장식품이 아니라, '진짜 사람'과 만나기 위한 통로였다.
"무리지어 서 있는 사람들의 기대에 찬 표정이 인상적이어서 그들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복권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깊은 의미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난한 사람과 돈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더 그렇지 않겠니.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도 않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복권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이 우리 눈에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음식을 사는 데 썼어야 할 돈, 마지막 남은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샀을지도 모르는 복권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그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의 고통과 쓸쓸한 노력을 생각해 보렴. " (1882년 10월 1일, p87~88)
부버는 '너'를 대할 때 상대의 역사와 고통에 참여하게 된다고 했다. 타인에 대해 외면적인 판단을 거두는 것, 그것이 만남의 시작이다. 고흐는 복권이라는 허황된 수단 이면에 숨겨진 가난한 자들의 '절박한 기도'를 읽어냈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생활방식, 즉 문명화된 사람들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1885년 4월30일 p120.)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감상적이고 나약하게 보이는 농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대상을 찾겠지. 그러나 길게 봤을 때는 농부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달콤하게 그리는 것보다, 그들 특유의 거친 속성을 살려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여기저기 기운 흔적이 있고 먼지로 뒤덮인 푸른색 스커트와 상의를 입은 시골 처녀는 날씨와 바람, 태양이 남긴 기묘한 그늘을 갖고 있을 때 숙녀보다 더 멋지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숙녀들이 입는 옷을 걸친다면, 특유의 개성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또한 농부는 일요일에 교회에 가려고 신사복을 차려입었을 때보다 작업복을 입고 밭에 나가 있을 때가 더 좋아 보인다. (1885년 4월 30일, p121~122)
감상적이고 예쁜 농부 그림은 농부를 '구경거리(그것)'로 전락시키지만, 고흐의 거친 필치는 농부를 '살아있는 실존(너)'으로 격상시켰다. 흙을 파던 투박한 손은 그들의 노동과 삶을 증명하는 가장 고귀한 인격적 징표였다. 고흐는 그 거칠음 속에서 '참된 만남'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부버는 모든 개별적인 ‘너’와의 만남은 결국 ‘영원한 너(신)’에 이른다고 했다. 고흐의 예술은 지상의 ‘너’들을 통과하여 하늘의 ‘너’에게 닿으려는 기적적인 시도였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때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는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 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1888년 6월, p189~191)
부버는 죽음마저도 인격적 결단이자 만남일 수 있다고 보았다. 고흐에게 별은 물리적 천체가 아니라 영원한 세계의 '너'였다. 그는 별을 바라보며 꿈을 꾸고, 죽음을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기차표로 사유함으로써 인간의 유한성을 뛰어넘는 무한한 관계망을 상상했다.
"요즘은 아프기 며칠 전에 시작한 그림 “수확하는 사람”을 완성하느라 전력을 다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노란색을 띠는 이 그림은 아주 두껍게 칠했는데, 소재는 아름답고 단순하다. 수확하느라 뙤약볕에서 온 힘을 다해 일하고 있는 흐릿한 인물에서 나는 죽음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그건 그가 베어 들이는 밀이 바로 인류인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므로 전에 그렸던 “씨 뿌리는 사람”과는 반대되는 그림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죽음 속에 슬픔은 없다. 태양이 모든 것을 순수한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환한 대낮에 발생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1889년 9월 5~6일, p268)
수확하는 농부와 인류라는 곡식. 고흐는 삶의 현장(나와 너의 관계)에서 죽음의 섭리를 목격했다. 이 죽음이 슬프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영원한 너'로 회귀하는 자연스러운 순환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존재가 황금빛 태양 아래 하나로 묶이는 순간, 관계는 완성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 그림이란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르틴 부버가 갈망했던 ‘나와 너’의 인격적 만남을 실현하는 실존적 구원책이었다.
그는 평생을 가난과 고립 속에서 보냈지만, 그 고독의 심연에서 오히려 세상의 모든 존재를 ‘너’라고 부르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화상의 시선으로 대상을 상품화하지 않았고, 아카데미의 시선으로 대상을 공식화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폭풍에 뽑힌 나무뿌리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감자를 먹는 농부의 거친 손을 경배하며, 밤하늘의 별에게 자신의 영혼을 던졌다.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 붓는 것"(1882년 7월, p68)이라는 그의 말은 곧 '너'에 대한 온전한 헌신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그의 그림 앞에서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역시 그가 "너!"라고 정직하게 불렀던 그 존재들의 심연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고흐의 편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 앞의 세상을 이용할 ‘그것’으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온 마음을 다해 응답해야 할 ‘너’로 보고 있는가?
그의 예술은 결국 세상을 향한 가장 뜨겁고도 정직한 고백이었으며, 그 울림은 캔버스를 넘어 여전히 우리에게 진정한 관계의 빛을 비춰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