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나와 너'를 찾아서1
마르틴 부버는 "인간은 '너'를 통해 '나'가 된다"고 했다. 고흐에게 고갱은 자신의 예술적 고립을 끝내고 함께 '심포니'를 연주할 운명적인 '너'였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위즈덤하우스)" 속에 남겨진 두 사람의 기록은 뜨거운 환대에서 일상의 공존으로, 그리고 지독한 소외로 이어지는 관계의 몰락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들어가기 전에 미리 밝히지만 행여 폴 고갱을 사랑하는 독자들 중에 불편해 할 수도 있다. 나도 폴 고갱을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달과 육펜스"도 감동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예술가로서 좋아한다. 나의 이 글은 고흐의 편지 내용을 토대로 마르틴 부버의 철학적 관계에서 탐구한 내용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다분히 고흐의 입장에서 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럼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고갱이 아를에 도착하기 전, 고흐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는 오직 고갱이라는 '너'를 향해 수렴되었다. 그는 단순히 방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맞이하기 위해 자신의 전 존재를 기울여 경건한 예배를 준비하듯 움직였다.
"고갱과 함께 우리들의 작업실에서 살게 된다고 생각하니 작업실을 장식하고 싶어졌거든.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로만 말이다. 네 가게 옆에 있는 레스토랑이 아주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걸 너도 알겠지. 나는 그곳 창문에 있던 커다란 해바라기를 늘 기억하고 있다.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면 열두 점 정도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그림을 모두 모아놓으면 파란색과 노란색의 심포니를 이루겠지. 매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꽃은 빨리 시들어버리는데다 단번에 전체를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p.204~205, 1888.08)
고흐에게 해바라기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너를 향한 환대의 언어'였다. 부버의 관점에서 고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타자를 이미 '너'로 호명하며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었다. 열두 점의 해바라기는 상대를 향한 전폭적인 투신이자, '우리'가 될 공간-작업실은 거처가 아니라 공동의 삶을 전제한 관계의 공간-에 바치는 성스러운 제물이었다. 온 존재를 기울여 그렸을 '해바라기'들 왜 그의 대표작이 되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갱이 마침내 도착하자, 고흐의 세계는 비로소 '나-너'의 세계로 확장되었다. 그는 고갱의 사소한 습관부터 작업 방식까지 자신의 삶 속으로 깊숙이 받아들이며 안도했다.
"전보를 받아 알고 있겠지만 고갱이 건강한 모습으로 도착했다. 나보다 더 건강해 보일 정도였다. 그는 네가 그림을 팔아주어서 아주 즐거워하고 있다. 나도 당연히 기쁘다. 아직도 정착에 필요한 지출을 해야 하는데, 더 이상 기다릴 필요도 없고 네가 그걸 다 떠맡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고갱이 오늘 너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그는 정말 재미있는 친구다. 그와 함께 지내면서 우리가 얻는 게 많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그림을 많이 그릴 것 같은데, 나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p.217, 1888년 10월 24일 )
"지금 이곳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 혼자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스럽구나. 날씨가 나쁜 날이면 기억을 더듬어 작업하는데, 내가 혼자였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겠지. 고갱도 '밤의 카페'를 거의 완성했다. 그는 정말 재미있는 친구다. 나도 배워볼까 한다. 정말 편하거든."(p.224, 1888.11~12월)
고갱이 아를에 도착하자, 고흐는 안도와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이 시기의 고갱은 분명 동료이자 친구, 서로의 존재가 작업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함께 있음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너’다. 고흐는 고갱의 "요리" 실력에 감탄하고, 실물을 보고 그리는 자신의 원칙 대신 고갱의 방식인 "기억을 더듬는 작업"을 기꺼이 따랐다. 고흐는 자신의 고유성마저 조금씩 깎아내며 고갱이라는 거대한 '너'와 일치하고자 노력했다. 부버의 말처럼 이 시기의 고갱은 고흐에게 대체 불가능한 '너'였다. "혼자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스럽구나"란 고흐의 말 속에서 우리는 ‘나–너’의 관계에서 기쁨은 성과가 아니라 존재의 확인에서 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뜨거웠던 상호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흐의 열망이 깊어질수록 고갱은 고흐를 인격적 주체가 아닌, 피곤하고 관리하기 힘든 '분석의 대상'인 '그것(Es)'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고흐' 라는 작품만 봐도 고갱이 고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있다.
"고갱은 아를이라는 훌륭한 도시, 우리가 작업하고 있는 작고 노란 집,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조금 싫증이 난 것 같다. 사실 우리 둘 모두 두 손 들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 원인은 물론 다른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게 있다." (p.224, 1888.12.23)
부버의 철학에서 "싫증"은 상대를 더 이상 신비로운 '너'가 아니라 분석이 끝난 지루한 사물로 취급할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고흐는 관계의 온도가 식어감을 직감하며 절망했다. 여기서 관계는 응답의 현재형을 잃고 원인·책임·해결을 따지는 대상화의 언어로 이동한다. '너'는 이제 살아있는 현존이 아니라, 떠날지 말지를 계산해야 할 차가운 '그것'이 되었다.
사건 이후 고갱은 떠났고, '나-너'의 관계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고흐는 텅 빈 노란 집에서 더 이상 '너'가 존재하지 않는 사물들의 흔적을 응시하며 그림을 그렸다.
"드한에게 빨강과 초록으로 채색한 빈 의자 그림을 보여줬으면 좋겠구나. 불을 켠 양초와 두 권의 소설(하나는 노란색, 다른 하나는 분홍색)이 놓여 있는 고갱의 의자 그림 말이다. 오늘은 그 그림과 한 쌍을 이룰 다른 그림을 그렸다. 바로 나 자신의 빈 의자이다. 파이프와 담배 주머니가 놓여 있는 하얀 전나무 의자란다." (p.232, 1889.01.17)
주인이 떠난 "빈 의자"는 부버가 말한 '너'의 부재와 지독한 소외를 시각화한다. '너'는 결코 대체될 수 없지만, '그것'은 이렇게 의자라는 사물로 대체될 수 있다. 한때 '심포니'를 꿈꿨던 관계는 이제 각자의 고립된 사물들로만 남겨진 '나-그것'의 세계로 침몰했다.
마지막까지 고흐는 이 관계의 실패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며, 이미 끊어진 끈을 다시 이으려 처절하게 시도했다.
"부탁인데, 모든 일이 늘 좋아지고 있는 이 멋진 세상에서 결코 어떤 악의도 없었다는 점을 자네도 분명히 알아주기 바라네." (p.227, 1888.12.)
"그래, 자네가 떠나버린 원인을 제공한 건 바로 나였다고 자책하고 있네.(p.233, 1889.01.22.)
"그동안 일어났던 일을 생각해 볼 때, 이 그림(해바라기)을 자네에게 줄 수 없을 것 같네. 그러나 이것을 선택한 자네의 안목을 높이 평가하는 뜻에서 똑같은 해바라기 그림을 정확히 다시 그려주겠네. ... 우리는 늘 친구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 (p233~234, 1889.1.22.)
고흐는 끝내 고갱을 향해 "친구"라 부르지만, 이는 응답받을 수 없는 독백에 불과했다. 특히 환대의 상징이었던 해바라기 원본을 거절한 행위는 상징적이다. 관계가 이미 '그것'으로 전락한 이상, 그 사랑의 진본(Original)을 건네주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파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해바라기는 더 이상 환대가 아니다. 교환·소유·거절의 대상이 되는 순간, 관계는 완전히 ‘나–그것’의 세계로 옮겨간다.
고흐와 고갱의 관계는 '너'를 열망하며 시작했으나, 서로의 다름을 견디지 못한 채 '그것'으로 붕괴된 비극적인 연대기다. 고흐는 고갱을 통해 가장 뜨거운 환대와 가장 차가운 소외를 동시에 경험했다. 하지만 그 파국 속에서도 고흐는 "악의는 없었다"고 말하며 상대를 향한 인격적 예우를 끝까지 지켰다.
고흐의 편지들은 그 붕괴의 과정을 문장 하나하나로 기록한 고통스러운 보고서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타인을 '너'로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의 가장 숭고한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