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

by 회사원z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당신이 써준 이별 편지의 문장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다 보면 언젠가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다던 그 말. 나는 그 말을 붙잡고 하염없이 당신을 등지고 걸었습니다.

몇 번이나 뒤돌아봤습니다. 혹시나 당신이 내 쪽으로 걸어오지는 않을까, 혹은 내가 너무 빨리 걸어 당신이 나를 붙잡지 못할까 마음 졸이며 걸었습니다.

발에 물집이 잡히고 상처가 나도록 걸었지만 당신은 더 빠른 보폭으로 저 멀리 사라졌습니다. 아아, 야속했습니다. 수없이 고쳐 쓴 작별편지 속에서 이미 오래전에 끝난 인사를 몇 번이고 다시 건넸습니다. 그 인사가 불씨가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텅 빈 방의 적막이 서러워 다시 안녕을 외쳐봅니다. 안녕, 안녕이라고요. 한참을 걸어서야 알았습니다. 수없이 뒤돌던 순간들과 수없이 건넨 인사들. 그건 결국 나 혼자만의 발버둥이었다는 걸요.


우리가 아직 함께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아마도 나는 당신의 가오리처럼 올라간 입꼬리를 보며 충만해하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젖은 영수증처럼 구겨진 마음을 펴볼 길 없어 이렇게라도 하소연합니다.


정말 좋아했습니다. 당신의 밑바닥까지도 사랑스러웠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으로 밥을 먹는 당신은 시골의 똥강아지 같았고, 바지를 아무 데나 벗어두는 당신을 보며 ‘얼마나 고단했으면 그랬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접어주고 싶었습니다.

혹여 내가 쏟은 사랑이 당신을 망친 건 아닐까, 그런 두려움에 나는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덜너덜해질 걸 알면서도, 당신에게 독이 되느니 차라리 사라지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마 당신에게 말한 “이별까지 사랑해 줬다”는 말이 이런 마음이었겠지요.


나를 아프게 한 당신이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의 행복을 빕니다. 이미 한이 되어 굳어버린 마음속에서도 당신의 다음 사랑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아마 나는 행복한 당신을 보며 몇 번이고 무너지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불행하다면 혹은 그리움에 내게 연락을 한다면 나는 그때 당신을 미워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별을 택한 당신을 원망하고 그 이별을 받아들인 나를 원망하고 결국엔 이 운명마저 탓하겠지요. 그러니 당신이 행복한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 행복을 빌어봅니다. 부디 보란 듯이 행복하십시오. 그 행복이 남아 있는 나의 여운을 모조리 태워주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과 인생 네 컷 속 웃는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세상에 보여주세요.


그래야 내가 더 이상 당신을 추억하지 못할 테니까요. 혹여 내가 다시 연락하더라도, 부디 답장하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나를 완전히 태워야 비로소 나는 평안해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