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황빛 가을에게
저는 모태 한화이글스 팬입니다.
부모님은 빙그레 이글스 시절부터 팀을 사랑하셨고, 두 분의 데이트 장소는 야구장이었죠. 4살 때 처음 야구장에 갔던 날, 어린 저는 응원단석에 올라가 춤을 췄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제 어린 시절의 봄과 여름, 가을은 언제나 한화이글스와 함께였어요.
KBO 팬이라면 다들 아실 거예요. 이글스라는 이름엔 기다림과 의리 그리고 조금의 체념이 섞여 있죠.
리빌딩을 한다며 늘 9위와 10위를 오가던 시절, 저희 가족은 “그래도 우리는 의리파야”라며 농담 섞인 자부심으로 버텼습니다. 한 번 좋아한 마음은 쉽게 거두지 않는 게 우리 집의 신념이었거든요.
그리고 올해 그 오랜 기다림 끝에 한화이글스는 2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19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니 믿기지 않았어요. “최강한화!”라는 응원 구호가 그 어느 때보다 자랑스러웠습니다. 물론 저는 7회 말 10:0으로 지고 있어도 여전히 그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었지만요.
이번엔 달랐습니다. 더그아웃의 선수들은 자신감으로 빛났고 우리는 더 이상 꼴찌팀의 팬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의 아쉬운 패배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어느 해보다 행복했습니다.
문현빈으로 시작해 채은성으로 이어지는 다이너마이트 타선, 폰세·와이스·문동주·류현진으로 이어진 투수진의 벽. 한화이글스는 분명 다시 날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글스는 제 일상에 빛을 선물해 준 팀이었습니다.
우울한 날엔 경기를 보며 눈물짓고, 생일엔 승리를 선물처럼 받았으며, 바쁜 하루 끝엔 야구가 늘 제 곁에 있었죠. 야근하던 밤에도, 심심한 주말 오후에도, 이글스가 있어서 저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비난의 중심에 선 김서현 선수 이야기를 들으며 한 사람의 팬으로서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직 22살의 어린 투수에게 필요한 건 질책이 아니라 격려 아닐까요. 그의 9회는 올 시즌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승리를 안겨줬으니까요.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한 아기 독수리, 그의 내일은 더 높을 겁니다.
이글스에게 가장 고마운 이유는 그들이 저에게도 다시 날개를 달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저는 스스로가 초라하다고 느꼈어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마음처럼 되지 않아 많이 방황했습니다. 그런데 이글스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나도 다시 비상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원래 독수리는 가장 높이 나는 새였다는 걸 그때 다시 떠올렸어요.
슬픔으로 얼룩졌던 제 스물일곱의 한 해도 내년엔 높이 날아오르길 바랍니다. 비가 와도, 참패를 당해도 늘 응원석을 지켰던 날처럼 저의 앞날도 그 용기와 끈기로 채워지길 바라요.
내년 3월, 이글스도, 저도
다시 한번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길.
고맙습니다, 한화 이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