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행은 여전히 진행 중
직장 생활을 시작한지 어느덧 4년 차가 되었습니다.
흔히 ‘마(魔)의 3년차’라 부르지요.
직장인에게 3년은 사춘기처럼 찾아옵니다.
저 역시 올해 그 시기를 지나며, 인생의 여러 쓴맛과 교훈을 함께 맛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일을 여전히 사랑합니다.
누군가 제 일이 보잘것없다 말하더라도, 저는 제 일이 가치 있다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 보니, 신입 시절의 저는 열정과 패기로 가득했습니다.
그땐 뭐든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버벅대는 동료들을 보며 답답해하던 오만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금세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일은 빠르게 늘었고, 인정도 조금 일찍 받았습니다.
물론 그래봤자 월급쟁이라는 게 코미디지만요.
그렇게 저는 큰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 매니징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땐 자신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죠.
하지만 매니징은 실무와는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이었습니다. 프로젝트의 사소한 이슈부터 전반적인 일정, 그리고 수행원과 클라이언트, 회사 임원까지.
모든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했습니다.
억울하게 욕을 먹고 제가 한 일이 아니어도 대신 사과해야 했습니다. 일을 잘해도 누군가의 불만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관리’란 단어의 무게를 처음 실감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는 법과 규제입니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그에 따라 법도 매번 바뀝니다.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공부를 멈출 수 없죠. 평일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도 일은 늘 제 시간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연애는 자연스레 어려워졌고, 이전 관계에서 남은 미련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좀 나아지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보았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늘 교묘하게 웃습니다.
다음 프로젝트는 더 큰 규모로 찾아왔습니다.
이번엔 미국 연방주와 캐나다의 규제까지 알아야 한다네요.
겁이 났습니다. ‘실패한 커리어일지도 몰라.’ 그런 자책이 따라붙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곁눈질로 흘겨봤던 선배들의 고충이 떠올랐습니다.
‘아, 인생은 정말 공평하구나.’
그래서 남의 마음에 대못을 박지 말라고 하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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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저는 늘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입시에 실패한 것 외에는, 늘 ‘잘해왔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지한 자신감이었는지,
올해에야 알았습니다.
인생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겸손해져라.”
올해의 저는 여러 번 꺾이고 부서졌습니다.
한때는 ‘나는 예외일 거야’라며 고개를 빳빳이 들던 제가 이제는 그 말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압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시기마저도 저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게 하는 일들 속에서 저는 배웠습니다.
고도를 낮췄을 뿐,
나의 비행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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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공비행’은 보통 ‘하위권에서 추락하지 않을 정도로만 버티며 사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인생이 늘 고점이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공비행 중에는 조급함이 찾아옵니다.
‘내가 뒤처지는 건 아닐까’, ‘못난 건 아닐까.’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도 시야는 넓어지고 시선은 낮아집니다.
비행기가 높은 고도에 있을 땐 하늘과 구름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낮게 날면, 사람 사는 마을이 보이죠.
낮은 고도에서는 추락해도 덜 아픕니다.
그게 오히려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이제 기꺼이 낮게 날아보려 합니다.
언젠가 다시 고도를 높이게 되더라도, 그때는 오만하지 않게 겸허히 날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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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옛 친구는 종종 이런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땐 참 한가한 고민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제가 그 물음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법륜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지 각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살아가다 보면 그것이 남에게도, 세상에도 도움이 됩니다.”
인생에는 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습니다.
내가 상처를 주면 언젠가 돌려받고,
그 고통 속에서도 결국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결국 다 같은 사람일 뿐이니까요.
지금 제 인생은 저공비행 중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춘 건 아닙니다.
그저 잠시 낮은 고도로 날며 숨을 고르는 중입니다.
망했다고 생각한 저의 청춘도
어쩌면 꽤 괜찮게 펼쳐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비행은 아직 멈추지 않았으니까요.
다가오는 날들엔
조금 더 겸허히, 낮은 자세로,
천천히 날아보고자 합니다.
수요일 오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비행에도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