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파견근무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를 쓸까합니다.
2016년 3월, 중국 저장성 린하이시로 파견근무를 갔다. 출발 전, 중국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는 솔직히 좋지 않았다. ‘지저분하고 시끌벅적한 나라’라는 편견이 머릿속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태어나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중국이라는 나라에 설마 죽지는 않겠지
그러나 항주 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그 생각은 빠르게 균열을 일으켰다.
이번 일정은 항저우, 린하이시, 후쩌우, 상하이를 잇는 바쁜 여정이었다. 린하이 영호 내 ‘홍보시설물’ 설치를 위한 실무 협의를 시작으로, 2016년 한·중 교류계획 조율, 파견 논의, 대양경제개발구역의 첨단 공장 시찰까지 이어졌다. 서호, 저장성박물관, 장도공원, 도영생태문화습지문화원 등 다양한 역사·문화 현장도 직접 발로 누볐다.
중국어 실력 부족은 작은 난관이었다. 특히 린하이 방언은 표준어와 달라, 대화를 어렵게 만들었다. 현지인들이 웃으며 알려준 몇몇 단어 — 음까문까(괜찮아요), 쌰께(대단하다), 떠(좋다) — 는 그곳에서 가장 먼저 익힌 ‘생존 중국어’였다.
평일 저녁에는 외사반 직원들과 운동을 하고, 주말이면 야유회와 체육활동에 참여했다. 공용자전거를 타고 린하이시 골목을 누비며 지역을 익혔다. 현지 TV프로와 온라인 강의를 통해 중국어와 문화를 배우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린하이시의 첫인상은 ‘크다’였다. 도시 곳곳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공사, 급속한 도시화,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깔끔한 거리 풍경. 항주는 9월 G20 정상회의 준비로 분주했고, 중국은 이를 국가 리더십을 세계에 보여줄 기회로 삼고 있었다.
중국은 ‘일대일로(新絲綢之路戰略)’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60여 개국 30억 인구를 잇는 길 위에 경제권을 구축하려 하고 있었다. 2049년 완성을 목표로, 대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현대판이다.
또한 ‘신창타이(新常態)’라는 이름으로 7% 성장 시대를 마감하고, 소비·서비스 중심의 중속성장 체제로 전환 중이었다. 수출 중심 성장에서 내수 강화로의 변화는 한국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장 놀라운 발견은 문화의 힘이었다. 태양의 후예가 중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며, 송중기·송혜교의 이름은 린하이시 거리에서도 들려왔다. 드라마 촬영지는 SNS를 타고 ‘가봐야 할 곳’으로 떠오른다. 이런 공동제작과 문화교류가 한 나라의 이미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현장에서 확인했다.
중국의 ICT·콘텐츠 기업들 — 알리바바, 텐센트, 아이치이 — 도 눈부신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강력한 내수기반과 정부의 보호정책은 그들의 경쟁력을 해외까지 밀어냈다.
린하이시는 교통난 해결을 위해 전기오토바이와 공용자전거를 적극 도입했다. 50개소에 거치대를 설치해, 시민카드만 있으면 20분 이내 원하는 곳에 이동할 수 있다. 향후 120개소로 확대 계획도 진행 중이었다.
도시 곳곳에는 조경시설과 꽃, 음악분수가 시민의 여가를 품었다. 환경미화원들의 부지런한 손길 덕분에 거리는 깨끗했다. 그러나 농촌 외곽에는 쓰레기 방치와 하천 오염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외사반 업무 속에서 ‘화교 네트워크’의 힘을 느꼈다. 해외 화교가 지역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했다. 린하이·태주 지역에서 홍콩·마카오 출신 화교 정보를 전수 조사하고, 향후 미국·이탈리아·영국·일본으로 확대하는 계획은 단순한 행정이 아니었다. 이것은 ‘사람’의 경제적 가치를 이해하는 작업이었다.
린하이시 도저고성에는 최부 선생의 우호비가 서 있다. 1488년 표류 끝에 중국에 도착한 그는 경항대운하를 따라 북경까지 여행하며 ‘금남표해록’을 남겼다. 현지에서는 이를 세계 3대 중국 여행기로 평가했다. 린하이는 이 역사적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작은 비석 하나도 정성스레 관리하고 있었다.
시진핑 정부 이후, 중국은 부패를 강하게 통제하고 친환경 정책을 강조했다. ‘오염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는 대기·수질·토양까지 관리하며 관료에게 종신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청명절 산불예방 근무는 우리나라와 달랐다. 순찰이 아니라 주요 입산 지역을 통제하고 화기를 직접 검사하는 방식이었다. 철저함 속에 안전이 있었다.
며칠간의 일정이 끝났을 때, 중국은 더 이상 ‘막연히 크고 시끄러운 나라’가 아니었다. 린하이는 사람의 온기와 빠르게 뛰는 도시의 심장을 모두 품고 있었다. 이곳에서 배운 것들은 단순한 출장 기록을 넘어, 앞으로의 한·중 관계와 우리 지역의 PR 전략에도 깊은 영감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