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세 살, 아직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아

나의 10대에게 보내는 편지

by 에린남

나의 10대에게.


안녕!

나는 서른세 살의 너야.

먼저 사과부터 할게. 나, 네가 상상했던 30대처럼 꿈꿨던 모든 것을 이루고, 성공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해.

그냥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어. 게다가 네가 지금 꾸고 있는 꿈은 얼마 전에 포기했어.

어른이 돼가지고 꿈을 포기하기나 하고 되게 별로지?


너도 어른이 되면 보면 알겠지만, 어른이 돼도 달라지는 건 없어.

편식하고, 하기 싫은 거 안 하는, 끈기 없는 네가 여전히 내 안에 있어.

나 그때 그대로야. 키만 더 크고, 얼굴만 조금 늙었어. 아, 살도 안 빠졌어. 미안.

그저 나이만 많이 먹은 것뿐이야.

그러니까 30대의 나를 너무 기대하지는 마.


넌 참 그림을 잘 그렸어.

너도 기억하겠지만 우리 어릴 때부터 상도 많이 받고, 친구들이나 친구들 부모님의 부러움도 많이 받았잖아.

그래서 가끔은 천재라고 생각했고. 하지만 지금쯤 너도 네가 천재가 아니란 것은 잘 알고 있겠지?


세상에는 왜 그렇게 그림 잘 그리는 애들이 많은지.

나는 그냥, 그릴 줄 아는 애일 뿐이더라.

그래도 남이랑 너무 널 비교하지 마.

어차피 가는 길이 달라. 같은 길에 서 있는 것 같아도, 다 달라.

그놈의 입시가 등수라는 걸로, 점수라는 걸로 너를 평가하겠지만, 아주 잠깐이야.


아.. 그리고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

너 재수해. 고3 때 건방 떨다가 대학교에서 다 떨어질 거야.

그리고 몇 달 동안 깊은 어둠 속을 헤매게 될 거야.

재밌는 것은, 절대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들 이겨내.

그래서 결국 원하던 대학교에 갈 거야.

그렇다고 대학교에서 대단한 걸 배울 거라는 것은 기대하지 마. 대학교에 다닌다고 자동으로 대단한 사람이 된다고 착각해서도 안돼. 대학교는 그저 대학교일 뿐이야.


그래도 후회는 안 해.

대학교에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고, 재밌는 일도 많이 일어날 거야.

그리고 조금, 아주 조금 성장이란 걸 하게 되거든.


아주 조금만 지나면 알게 될 텐데, 너는 너만의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그건 정말 확실해. 그런데 왜 그러고 사냐고?

그건 말이야, 아직 그 재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성공하지 못한 것뿐이야. 정말이야.


선택 앞에서 후회하는 일도 많이 생겨. 하지만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 마.

우리는 그 순간에서는 언제든 또 그 선택을 할 거야. 그러니까, 돌아보지 말고 계속 가.

혼란스러운 길이 계속 이어질지도 모르지만, 너를 믿어봐. 너 생각보다 영리하게 모든 상황을 빠져나갈 거야.

나쁜 길은 거의 없었어. 그러니까 지금의 내가 있는 걸 거야.


고마워. 잘 견뎌내 줘서.


그런 너에게 나는 참 잘못만 한 것 같기도 해.

미안해.

사실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려왔어.

조금 더 멋진 삶을 살게 해 주고 싶었는데...

이런 삶 밖에 주지 못해서.


나 노력했어.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했는데.

생각보다 잘 안돼 뭐가.

아마 우리가 능력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아.

세상을 너무 쉽게 보고 막살았나 봐.


있지. 그런데 나 불행하지는 않아.

별 볼 일 없는 어른이 되었는데도 괜찮아. 어떤 누구의 삶과 비교하면 마음이 엉망이 돼버리겠지만,

그냥 내가 걸어가는 길을 내 멋대로 걸어가고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행복해.


아, 너 멋대로 행동하던 거 나이 먹어도 안 고쳐지더라.

누군가에겐 미움도 받을 거니까. 각오하고 이 길 조심히 따라와.

오는 길이 외로울 수도 있겠지만, 절대 혼자가 아니니까 나쁜 생각은 하지 말고.

그리고 네가 걷는 그 길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길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돼.

그 은혜 갚으려면 너랑 나랑 힘을 좀 합해야 할 거야.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몰라.

한 가지 확실한 건, 나 여전히 잘 지낸다는 거야.

잘 자고, 잘 먹고, 사랑하며 그렇게 살아가.


너 지금 투정 부리고 있지?

별 볼일 없다고, 입 잔뜩 튀어나왔지?

네가 지금 하는 노력의 결과가 겨우 그 정도냐면서 다 때려치운다고 말하고 있지?

그렇게 노력해서 겨우 얻어낸 게 그만큼이냐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충분하더라고.


물론! 그게 삶의 전부는 아니야.

인생이 계속되는 한, 나는 계속 나아갈 거야.

네가 앞으로 보낼 시간들로 배웠어.

노력하면, 조금씩 달라지고 나아져.


꽤 괜찮지 않아?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거 말이야.

그게 바로, 내가 아직 성공하지 못했지만 괜찮은 이유야.


글이 너무 길어졌네.

아무튼, 십 대의 나야.

때때로 힘든 순간들이 많이 찾아올 거야.

내가 살아갈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

지금은 행복해도 내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니까.

그래도 우리 잘해보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정성을 다해서.


힘내.

우리 곁에는 삶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나를 사랑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과,

누구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

그리고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는 내가 있어.


추신.

넌 언제나 알록달록한 인생을 살 거야.

그것이 예쁘기만 하지는 않겠지만.


2019년 4월.

그립고 미안한 나에게, 내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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