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딸과 아이의 엄마 없이 찾은 바닷가

어떤 휴일의 바닷가에서

by 에린남



“아빠, 우리 내일 바다 가는 거 맞지?”


얼마 전, 생일이 지나 이제 막 6살 된 애슐리는 하루 종일 들떠 있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바다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애슐리는 자연을 좋아했다. 높은 산에 오르는 것도, 구경할 거리가 없어 심심할지도 모르는 넓은 들판에 가는 것도, 바다에 가는 것도 좋아했다. 애슐리는 그중에 바다를 가장 좋아했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바다에 가지 못했다. 계속되는 차가운 날씨 탓도 있었지만, 내가 데려가지 못했던 내 탓이 컸다. 자신이 없었다. 애슐리를 아내 없이 홀로 바다에 데려가는 일이 말이다.



바다에는 언제나 아내 나탈리와 나, 그리고 딸 애슐리까지 꼭 셋이 함께였다. 아빠인 나의 역할은 나탈리에 비해 턱없이 작았다. 나는 고작 운전을 하거나, 백사장 위에서 짐을 지키는 일을 했다. 간혹 애슐리를 안아 들고 애슐리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깊은 바닷속까지 들어가는 걸 할 뿐이었다. 애슐리 곁에는 아빠인 나보다 엄마인 나탈리가 함께 인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수영복으로 갈아입히고, 선크림을 꼼꼼히 발라주고, 모래사장에서 모래성 쌓기 놀이를 하고, 물놀이를 마친 뒤 샤워실에 들어가 씻기는 일도 그랬다. 하지만 아내가 떠난 지금, 애슐리와 단 둘이 바다에 가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되새겨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였다.



평생 사랑하며 살아갈 줄 알았던 나탈리와 나는 세 달 전 헤어졌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나탈리를 사랑했고, 나탈리도 나를 사랑했다. 거기다 우리에게는 사랑스럽고 소중한 딸인 애슐리까지 있었으니까 말이다.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사랑은 애슐리가 5살이 되던 해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 직장 때문에 본래 살던 곳에서 몇 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곳으로 오게 된 그때부터였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내 시간은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른다.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많은 돈을 벌게 되었지만 회사 일이 항상 바빠 시간에 쫓겼다. 그 핑계로 나탈리에게 소홀했던 탓일까. 나탈리에게 애슐리를 맡겨두고서는 집안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탓일까. 우리들의 시간이 아닌 나의 시간에만 온 신경을 써 온 탓일까. 지금 이 순간 뒤를 돌아보며 이유를 떠올리며 후회해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결과적으로는 나탈리가 떠났고, 여기에는 나와 애슐리만이 남았다.




“도대체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이 곳으로 이사 온 뒤 자신의 인생이 여기에는 없다며 힘들어했다. 대학 졸업 후 계속해오던 일도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했고, 육아를 함께 나눠야 할 남편이란 놈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집안일에는 손도 대지 않아, 매일같이 모든 것을 홀로 해치워야 했다. 주말에 함께 나들이 가며 시간을 보냈던 지난날과는 달리, 나는 주말 내내 잠을 잤다. 결국 나탈리는 하루도 나탈리 본인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나탈리가 힘들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나도 힘들어서 무시했다. '나탈리는 엄마니까. 내 아내니까'라는 식으로 스스로 타협했다. 나탈리는 엄마 이기전에 한 사람이었고, 나의 아내 이기전에 한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나탈리의 삶을 송두리째 뺏어와서는 방치했다. 나탈리가 떠난 현실을 마주한 뒤에 알게 됐다. 아내도, 아이의 엄마도 아닌,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냈다는 걸.



"나,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아. 애슐리는 내가 데려갈게."


떠나려는 나탈리를 붙잡고 싶어서 애슐리를 방패로 썼다. 제대로 돌본 적도 없으면서 애슐리는 내가 키우겠다고 생떼를 피웠다. 애슐리 때문에라도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나탈리는 떠났다. 내가 진심으로 나탈리를 잡으려고 했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됐다. 미안하다고 말해야 했고, 함께 가야 했다. 우리가 살던 곳이든, 어디든 나탈리가 가려고 하는 곳에 말이다.




이제는 나와 내 딸 애슐리 단 둘만 남았다. 나탈리가 떠나고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그리고 나탈리와 온 시간을 함께 보냈다. 처음 한 달, 애슐리는 오랜만에 나와 보내는 시간에 낯설어했지만 이내 적응한듯했다. 하지만 나와 시간을 보내는 내내 엄마를 기다렸다.


"아빠, 엄마는 언제 와?"


애슐리는 가끔 현관 쪽을 바라보고, 문득 창 밖에 큰길을 내다보면서 내게 말했다. 엄마는 오지 않을 거라고 계속 설명해주었지만 한 번도 엄마랑 떨어져 본 적 없던 애슐리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노력해야 했다. 내가 나탈리의 몫까지 채워야 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났다. 애슐리는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한 듯했다. 더 이상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주 얼굴에서 그리움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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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가 없는 삶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어느 정도 안정된 듯했다. 그래서 애슐리가 그렇게도 고대하던 바다에 가기로 결정했다. 바다에 가기 정한 날부터 몇 날 며칠 나탈리가 애슐리에게 해주었던 모든 것들을 되뇌며 많은 준비를 했다. 날씨 좋은 바닷가에 오니 애슐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나탈리가 애슐리에게 했던 것처럼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을 갈아입히고 선크림을 발라주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뒤 물놀이를 했다. 이렇게 걱정 없이 애슐리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고민 걱정 가득했던 시간들이 아닌, 즐거움으로 가득 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애슐리도 천진난만한 얼굴로 소리 내며 웃었다. 다행이다. 기뻐해 줘서.



한참을 놀다 배가 고플 것 같아 애슐리를 데리고 물밖로 나왔다. 자리에 돌아와 엉성하기 짝이 없는 도시락을 꺼냈다. 동영상 레시피를 보며 심혈을 기울여 만든 도시락이지만 맛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애슐리는 고맙게도 그 도시락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아빠 맛있다!"


애슐리는 도시락을 잘 먹다가 옆 자리에 있던 다른 가족들을 힐끔 거리기도 했다. 어떤 엄마가 애슐리 또래의 아이에게 머리를 땋아 주고 있었다. 애슐리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머리 모양이었다. 부러운 듯 시선이 자꾸 저 쪽으로 향하지만 애써 외면하려 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가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해가 바다 너머로 사라지자 날이 제법 쌀쌀해졌다. 더 추워지기 전에 외부에 있는 샤워장 치로 가볍게 물 샤워를 시켰다. 두툼한 타월로 애슐리의 몸을 닦고 둘둘 감싸주고 차에 태웠다. 안전벨트까지 채운 뒤에 집으로 향했다.


"애슐리, 오늘 재밌었어?"

"응! 진짜 재밌었어. 아빠 우리 또 오자! 맨날 오자! 응?"


밝게 웃으며 말하는 애슐리를 보니 마음이 아파왔다. 나는 그간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애슐리가 이렇게나 좋아하는 바다에 데려가지 못했을까. 나탈리가 떠난 빈자리였을까. 애슐리를 혼자 돌보는 것이었을까. 애슐리가 상처 받는 것이었을까. 어떤 것이든 결국 이겨내야 하는 것들이었다. 애슐리가 상처 받는 것은 어떤 것보다 힘들지만 내가 더 노력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다 곧 허탈함이 나를 감쌌다. 애슐리를 데리고 바다로 데려오는 일, 애슐리를 키우는 일, 애슐리를 기쁘게 하는 일. 진작에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조금 더 우리를 생각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것들이었다. 나탈리가 지치기 전에만 알았더라도, 아마 나탈리는 떠나지 않았을 거다.



다시는 내 인생에서 후회가 찾아오지 않으면 좋겠다. 애슐리와 함께할 모든 순간 중 한 순간도 무심하게 스쳐 보내지 않을 거다. 혼자서는 부족할지 모르겠지만, 노력해보겠다. 나를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딸 애슐리를 위해서, 내가 여전히 사랑하는 여자 나탈리를 위해서.




글/그림 에린남






어떤 휴일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담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