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선택을 한다. 그게 나다워서
이 세상에 같은 색은 없다고 말하며 형형색색의 매니큐어를 사 모으고, 며칠에 한 번씩 손톱의 색을 바꾸며 즐거워하던 나는 이제 아무 색도 없는 밋밋한 맨손톱을 좋아하는 사람이 됐다.
가벼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던 4년 전, 손톱만 한 손톱을 채우기 위한 물건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매니큐어를 바르는 게 거추장스러웠고, 즐겁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해온 좋아하는 물건은 한순간에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매니큐어와 네일리무버 같은 손톱용품들을 비워냈다. 나는 맨손톱이 된 채로 좋아했던 순간과 좋아했던 물건과의 쉬운 이별을 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빈 공간을 얻었다. 실질적으로 있으나 없으나 한 작은 빈 공간이었으나 나는 큰 개운함을 느꼈다. 그때 내가 비워낸 것은 작은 공간뿐 아니라 어떤 색을 바르면 좋을지 고민하는 시간, 색을 바꾸고 손톱을 말리는 시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그토록 좋아하고 즐거워하던 시간은 삶의 방식을 바꾸자 금세 비워내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 대신에 나는 건조해진 손톱에 오일이나 핸드크림을 꼼꼼하게 바르는 데에 시간을 썼고, 손톱이 보일 때마다 잘 살펴보는 데에 시간을 썼다. 손톱이 매니큐어의 색으로 가려져 있을 때는 오로지 매니큐어의 상태만을 살폈지만, 지금은 진짜 내 손톱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 덕분에 거칠고 건조했던 손톱은 반질반질해졌고, 잃었던 생기를 되찾았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했던 아무 색 없는 손톱이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맨손톱인 상태가 나와 꽤 잘 어울렸다.
나는 천천히 내가 좋아하던 장식들을 하나둘씩 덜어냈다. 매니큐어 다음에는 귀걸이였다. 몇 년 동안 내 몸처럼 장착하고 다니던 작은 링귀걸이 한쪽을 잃어버린 뒤에 대체할 만한 여러 귀걸이를 착용해 보았지만,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피부처럼 매일 끼고 다닐 새로운 귀걸이를 찾지 못해 귀걸이 없는 일상을 보냈다. 귀걸이를 하루라도 빼고 다니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없어도 괜찮았다. 신기하게도 새 귀걸이를 원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대체품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어졌다. 없는 채로 살아보기로 했다. 싫증을 쉽게 내는 나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없으면 질릴 일도 싫증이 날 일도 없으니까.
화려한 옷이나 액세서리가 어울리지 않아 불만이었던 때가 있었다. 예쁘기만 한 물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내가 밉기도 했다. 지금은 무조건 예쁜 것보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을 발견하고 나에게 적용해 보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억지로 나를 꽉꽉 채워 넣으려 했던 욕심을 비워내고 머리부터 발까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장식을 하나둘씩 덜어냈다. 빈 자리에는 나에게 어울리고 나다울 수 있는 걸로 채웠다. 거울 속 나는 점점 편안해졌다. 내가 더 잘 보였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은 장식을 덜어냈더니 아무 장식이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게 마음에 든다. 나에게 옳은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