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린남 Apr 27. 2021

건강한 마음과 일상을 만드는 일

사소하지만 절대 사소하지 않은

내 하루는 단순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비슷한 시간에 잔다. 깨어 있는 시간에는 일을 하거나 놀거나, 일상을 돌본다. 일상을 돌보는 일도 단순하다. 하루 두 번 식사를 준비한다. 맛있게 먹고, 뒷정리를 한다. 입었던 옷을 세탁한 뒤에 옷장에 넣는다. 집안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정리하고 청소한다. 


마음과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도 일상을 돌보는 시간을 갖는다.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책상을 본다. 혹시나 지금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이 내 작업공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핀다. 그다음에는 집안을 둘러본다. 신경 쓰지 못한 사이에 자리를 잃은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아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내가 하루를 보내는 공간을 가지런히 정돈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 몸과 마음 어딘가에 약간의 여유가 찾아온다. 어느새 나도 정돈된 상태가 된다. 


일상을 돌보는 일은 대체로 당연하고 익숙하고 사소하다. 사소하다고 해서 내 삶에서도 사소한 것은 아니다. 집안을 정돈하는 것부터, 의식주를 해내기 위해 오늘과 내일, 이번 주, 이번 달을 계획하는 일, 생활비 안에서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일, 비워낼 물건을 살펴보거나 채울 물건을 생각하는 일은 분명 나에게 충분한 쓸모가 있다. 


사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 사소한 일들에 내 소중한 시간이 소모되는 게 아까웠다. 시시하고 하찮게만 느껴지는 일들 때문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시간에 나의 발전을 위한 일을 하나라도 더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쉽게 지쳤고 쉽게 불안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나는 이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안다. 일상의 모습은 나를 그대로 비추고 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집안도 복잡하다. 마음이 엉망이 됐을 때는 집안의 모습도 엉망이다. 내 마음과 머릿속이 복잡했던 이유는 일상을 지켜내지 못한 시간 때문이었다. 


일상을 돌보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과 같다. 나는 내 일상을 위해 가장 먼저 물건을 비워냈다. 그리고 쉽게 물건을 들이지 않았다. 이 생활이 좋아져서 계속 유지하면서 더 비워내려고 했다. 나의 주변이 단순해지고 가벼워졌다. 일상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사소한 일들을 사소하게 받아들이고 사소하게 해낼 수 있게 됐다.


당연하고 사소한 일은 일상을 가꾸고 돌보고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일상은 내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든든한 뿌리가 되어준다. 그 뿌리를 돌보는 일을 중요한 일로 여기게 됐다. 내가 돌보는 시간 동안 단단해진 뿌리는 결국 내가 하는 일에 힘을 보탠다. 건강한 마음과 일상은 내가 가꾼 시간들에서 시작되고 회복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면 우리를 만족시킬 완벽한 물건은 없을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