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물건이 있다면
1년 전에 나는, 아무것도 없는 집에 매일을 살아가기 위한 물건들을 채웠다. 그동안 그 물건들은 나와 함께 살아가면서 좋은 시간과 평화로운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대체로 고마운 물건들이었다. 어떤 물건에게는 약간의 아쉬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거실 한편에 있는 옷장이 그중 하나였다. 적당한 크기의 오픈형 옷장은 우리의 옷을 수납해놓기 딱 좋았지만, 이유모를 아쉬움이 느껴져 옷장에게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체품을 찾아보기도 했다. 행거로 바꿔볼까, 서랍장으로 바꿔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다 이 옷장을 구입할 때 했던 생각과 고민들을 떠올렸다.
남편과 나는 쓰임새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을 원했다. 무거운 것보다 가벼운 것을 선호했고, 오픈형 옷장이더라도 원하는 형태의 가리개를 달아줄 수 있는 것을 원했다. 이 옷장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옷장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쉬워했다. 더 나은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다. 하지만 더 나은 물건이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다. 지난날의 오랜 고민이 다시 빛을 발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최선이었다!
조금 더 내 마음에 들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쉬움을 조금 덜어내고 싶었다. 그러고보니 거실에 있는 가구와 옷장의 톤이 맞지 않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테이블과 소파를 사고 그다음 테이블 톤에 맞춰 티비장을 구입했다. 그래서 세 개의 가구의 나무 색은 비슷한 색이다. 그와 달리 옷장은 밝은 원목이다. 있는 그대로 예쁘지만 다른 가구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당연했다. 다른 가구들과의 조화를 생각하기보다 옷장 자체만을 보고 구입한 것이라서 조금은 튀어 보였다. 조화를 맞춘다면 거실에 전체적인 안정감도 생길 것 같다. 더 마음에 드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옷장에 색을 입혀 통일감을 주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마음 한편에 가진 채로 작업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작업시간에 괜히 시작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완성을 하고 보니 기대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굳이 힘들게 그럴 필요 있을까 하고 말했던 남편도 마음에 들어했다. 거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가구의 톤을 맞추고 나니 거실이 더 아늑하게 느껴진다. 멀리서 보면 꽤 그럴싸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구석구석 신경 쓰지 못한 공기 방울이 남아있고, 우드 스테인이 흘러내린 자국도 보인다. 처음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저 좋게 봐준다. 옷장 옆면의 가리개도 손을 봐주기로 한다. 전에는 지저분한 부분을 가리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내 마음에 드는 것으로 만들어 본다. 삐뚤빼뚤 하지만 내 손길이 닿은 귀여운 가리개를 만들었다. 옷장에 대한 아쉬움은 사라졌고, 자꾸만 눈길이 가는 옷장으로 재탄생했다.
물건을 집에 들일 때 신중하게 고민을 하지만 막상 집에 들였을 때 내 기대와는 다를 때가 많다. 기대에 못 미치는 전자제품, 생각한 것과 다른 느낌을 가진 가구. 기쁜 마음으로 구입했지만 손이가지 않는 물건들이 집안에 있다. 그럴 때마다 물건을 새로운 물건으로 바꿔줄 수는 없다. 더 나은 물건을 기대하고 바꾼다 해도 만족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거의 대부분 나는 내가 오랜 시간 고민한 물건들에게도 완벽히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를 만족시킬 완벽한 물건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 사는 것이 완벽한 해결책이 되어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사지 않는 쪽을 택한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물건을 마주하게 될 때면, 비워낼 것은 비워내고, 새로운 대체품 대신 이미 가진 것을 이왕이면 내 마음에 들게 가꿔주고 싶다. 삐뚤빼뚤 허술한 손길이더라도 괜찮다는 관대한 마음으로.
<에필로그>
옷장에 칠을 하는 동안 옷장에 있는 물건들을 침실로 옮겨 두었다. 침대 위로 옷이 쌓였고, 방바닥에는 수납함으로 채워졌다. 작은 방이 더 작아 보였다. 옷장에 수납되어있을 때는 몰랐다. 물건이 밖으로 나와있으니 물건의 양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물건이 많았다. 남편과 나란히 침실 문 앞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우리는 그 광경을 보고 같은 생각을 했다. 물건을 더 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