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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린남 Dec 29. 2020

그들 각자의 미니멀 라이프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만 해도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적은 양의 물건과, 단출한 살림살이, 텅 빈 공간을 가지게 될 거라고 상상했다. 상상했던 것과 달리 2년 뒤에 나는 여전히 많은 물건과 함께 살고 있다. 있을 것은 다 있고, 아직도 충분하다고 느낄 만큼의 물건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아쉬운 것은 아니다. 나는 더 가벼워지길 바라지만, 줄여지지 않는 물건들을 억지로 비워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안락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물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언제든지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지면 비워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더 이상 물건 비우기에 조급해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꿈꾸던 나는 빈 공간 보다도 내가 가진 물건들과 공간의 활용도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에는 소파가 있다. 소파를 바라보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도 읽을 수 있고, 티브이도 볼 수 있고,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에 집중한다. 커다란 테이블이 거실에 비해 너무 크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일도 할 수 있고, 끼니마다 식사도 할 수 있고, 다양한 작업들을 해낼 수 있는 든든한 공간을 갖게 되었다는 것에 집중한다. 가진 물건들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찾다 보면 오히려 나에게 고마운 존재라는 생각이 피어오른다. 내가 가진 물건들이 없다면 내 일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굴러가기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물건은 우리 집에서 떠나보내도 되는 물건이다. 그래서 몇 달 전에는 서랍장을 비워냈다. 협탁으로 사용하던 용도를 상실했고, 몸집에 비해 수납되는 물건의 양은 적었다. 집안 여기저기로 위치를 옮겨 다니다가 결국에는 우리 집안 어디에서도 좋은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 새로운 주인을 찾아 주었다.  


혼란스러웠던 때도 있었다. 미니멀리스트인데 이런 걸 가져도 되나 싶고, 미니멀리스트의 집에 이런 큰 물건이 있어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것마저도 결국에는 내가 만든 미니멀리스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었다. 내가 만든 고정관념을 버리고 나를 위한 미니멀 라이프를 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물건 비우기에 강박적이었던 마음도 비워졌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이 되어서야 나는 나의 미니멀 라이프를 갖게 되었다. 


물건에 관심을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부러 새로운 물건을 구경하지도 않고, 새 옷을 가지고 싶을까 봐서 옷 구경도 하지 않았던 미니멀 라이프 초반부가 떠오른다. 처음에는 소비 앞에서 나를 단단하게 만들 강력한 훈련이 필요했다. 그 훈련으로 물건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었다. 가방은 가방이 가진 용도로서 바라보게 되었다. 옷을 외적인 모습을 꾸며주는 용도보다는 입는 것으로서 바라보게 되었다. 집은 잘 꾸며진 예쁜 공간보다는 생활하기에 편안한 공간으로서 바라보게 되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사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이삿짐을 줄이기 위해, 또는 집의 크기를 줄이면서 가진 물건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거나, 그저 가벼운 삶을 살고 싶어서 시작한 사람도 있을 거다. 어떤 이유를 가졌든 간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물건을 비우는 것으로 첫 발을 뗀다. 그렇게 시작된 미니멀 라이프는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에게 맞는 모습을 찾아간다. 사람들은 그들 각자의 미니멀 라이프를 갖게 된다. 가진 물건의 개수가 몇 개인지, 어떤 모습을 한 미니멀 라이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 잘 맞는 삶을 꾸려나가는 것 아닐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좋아하는 물건과 마음에 드는 일상을 갖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의 시작이 미니멀 라이프라면 조금은 반가운 마음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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